'가장 작은 방에 깃든 다양한 삶', 서울역 옆 쪽방생태계

[인터뷰] 박정아 동자동사랑방 대표

검토 완료

박이상(green2013)등록 2017.05.08 18:01
녹색전환연구소(www.igt.or.kr)는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녹색 전환의 다양한 상을 그려보고자 합니다.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녹색의 시각으로 새롭게 보고, 더 나은 방향으로 전환하고자 노력하는 목소리를 들어봅니다. 이번 시간에는 '동자동사랑방'의 박정아 대표를 만났습니다. 인터뷰는 <녹색전환연구소>사이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 기자 말

박정아 '동자동사랑방' 대표 '동자동사랑방' 사무실에서 ⓒ 녹색전환연구소


5월은 흔히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처럼 가정과 관련한 기념일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특별한 시즌에는 각종 지자체와 기업, 종교단체들은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생필품을 보급하는 나눔 행사를 많이 벌인다. 한 두평 남짓한 작은 쪽방이 밀집된 쪽방촌은 이러한 "불우이웃돕기" 대상으로 자주 언급되는 도시 빈민 지역이다. 가난을 이야기 할 때 쪽방촌은 자주 소환되는 이름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단순히 빈민이란 이름으로 뭉뚱그려질 수 없는 다양한 삶도 함께 존재한다.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에는 일제 강점기 때부터 만들어졌다고 하는 오래된 마을 "동자동 쪽방촌"이 있다. 거대기업들의 고층 빌딩 사이에 둘러싸여 있다. 빌딩촌과 대조적인 모습의 낡고 오래된 건물들인 쪽방촌은 처음엔 쉽게 눈에 띄지 않을지 모른다. '동자동사랑방'은 그 쪽방촌 골목 한 편에 자리 잡고 쪽방 주민들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만들어가는 곳이다. 2008년 비영리민간단체로 시작해 2010년 협동조합도 창립했다. 현재는 민간단체인 '동자동사랑방'과 협동조합인 '동자동사랑방마을공제협동조합'이 나란히 한 사무실을 쓰며 쪽방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

2016년 12월31일, '동자동사랑방'의 박정아 대표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가까이서 들어 보았다. 공룡이라는 별명을 쓰고 있는 박정아 대표는 귀농이 꿈이지만 게을러서 도시에 남게 되었다고 했다. 빌딩숲의 생태계 속에서 쪽방촌이라는 전혀 다른 생태계를 만들어가게 된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진짜 공룡의 귀환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덩치부터 서로 너무 다른 두 존재가 동자동마을 안에서 사이좋게 터를 잡고 있다. 하나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방 쪽방이고 또 하나는 세상에서 가장 큰 생명체 공룡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또 다른 녹색전환의 상상력을 만날 수 있었다.

빈집에서 짓던 농사가 동자동사랑방으로

식도락에서 식사하는 주민들과 활동가 동자동사랑방 제공 ⓒ 녹색전환연구소


- "동자동사랑방(이하 '사랑방')" 활동은 언제부터 시작한 건가?
"2010년 무렵에 사랑방을 처음 알았다. "빈집(해방촌 주거공동체)"이라고 공동체 생활을 할 때였다. 농사를 짓고 싶어서 "빈농"이라는 농사팀을 꾸려 외지에 텃밭을 빌렸다. 그 텃밭에서 사랑방 팀을 만난 거다. 매주 같이 주말농사를 짓다보니 친해졌다. 

그 때 사랑방은 "동자동사랑방마을공제협동조합(이하, '조합')"과 함께 행정안전부(현 행정자치부) 자립형지역공동체사업의 일환이었던 "마을기업"으로 선정되었다. 사랑방마을기업에서는 쪽방촌의 일자리창출에 기여하기 위해 2011년부터 밥집(밥이보약 낙지쿡)과 농장(두루농농장)을 열었다.
주민들이 직접 농장에서 농사를 지어 밥집에 친환경 식재료를 납품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농사를 짓고 싶었던 나는 농장 일에 솔깃하여 같이 합류하게 됐다. 하지만 막상 시작해 보니 사업을 지속하기가 어려웠다. 집중적으로 결합해서 일할 수 있는 주민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 주민들을 위한 사업이었는데 왜 주민들이 결합하기 힘들었는가?
"취지는 좋았지만 현실적인 여건과 충돌했다. 여기 쪽방촌 주민은 기초생활수급자가 50프로 이상이다. 수급자는 일단 수입이 생기면 수급비나 의료비 지원 등 수급혜택이 깎인다. 그래서 적은 현금 수입의 일자리를 선호한다.
또 수급자라는 것 자체가 지병이 있거나 몸이 불편해서 해당되는 경우가 많다보니 일을 꾸준히 하기 어려운 분들도 많았다. 결국 주민들도 이것저것 고민을 하다가 가끔 와서 도왔다. 이런 건 해줘도 정규적인 일자리에는 지원하지 못했다.

그러다 쪽방에 부엌이 없어서 밥을 해먹기 불편하다 보니 공동 마을부엌 "식도락"을 만들었다. "식도락"의 운영 목적은 이윤을 남기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게 어쩌면 내가 하고 싶었던 활동이랑 더 맞을 수 있겠다 싶어 끼워달라고 했다."

추위에 얼어붙은 동자동사랑방 간판 동자동사랑방 제공 ⓒ 녹색전환연구소


- 원래는 어떤 활동을 하고 싶었나?
"돈 안 되는 활동?(웃음) 어떤 대가나 성과를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닌 걸 하고 싶다. 그런 게 주어지면 오히려 재미가 없어지더라. 성격인 것 같다. 쓸데없는 일이 하고 싶다.(웃음)"

사회 시스템을 바꿔야 삶도 바껴

- 단체도 그렇고 모든 일이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관이나 신념이 적용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공룡님이 구상한 사랑방의 기본 뼈대는 어떤 모습인가?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바꾸는 거다. 쪽방촌 주민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고 여러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도움을 주는 것이 다가 아니다. 주민들이 스스로 "왜 열악한가?", "왜 이런 상황이 됐는가?"를 알게 돕는 것이 가장 큰 역할이라고 본다. 그렇게 해서 구조를 바꾸는 거다. 국가가 할 일을 당연히 해라, 복지는 시혜가 아니다, 이런 구호들로 생각을 바꿔야 한다."

- 인식이 바뀌면 삶도 바뀌고, 태도가 바뀌면 몸도 바뀐다. 시스템이 바뀌면 그 안에 사는 사람들도 달라질텐데.
"인식의 변화, 사실 그게 가장 중요하다. 주민들을 보면 외부에서 자꾸 길을 들인다. 종교단체나 외부단체가 주민들한테 자꾸 뭔가를 주고, 불쌍히 여겨주고. 공무원조차 당연히 받아야 할 수급권을 가지고 마치 잘 봐줘서 해주는 것처럼 시혜를 내려주는 식이다. 이거에 하루 이틀 길들여지다 보면 쪽방이 넘치도록 물품이 가득 차는 상태가 되는 거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이 있을 자리는 없어진다. 살아가기 위해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잘 보이고 비위를 맞춰야 하고. 그런 것들부터 계속 비뚤어지자, 엇나가자, 왜 그런지 질문을 던져보자, 하고 있다."

- 기존에 자원을 갖고 있어도 삐딱하게 노선을 트는 순간, 그 자원들이 사라질 수 있다. 자원이 없는 상태에서라면 더 힘들지 않나?
"기존 구조를 삐딱하게 보기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 더 힘든 상황이 된다. 구조를 부정하려면 맞서 싸워서 하니까. 자원도 없으니 오죽하겠나. 정말 생존을 걸고 하는 거다. 그래도 보람을 느낄 때가 많다. 소소하게는, 작년 한해 시설이나 거리에서 이곳 쪽방촌으로 오신 분들이 정착을 참 잘했다. 어디서도 지원받지 못한 분들이 여기로 오신다. 그런데 우리는 심사 같은 걸 안 한다. 그 사람이 지금 힘들다는 건 분명하니까.

일단 지원(긴급대출)을 하고 "갚아!" 한다.(웃음) 그렇게 하면서 꾸준하게 주민활동가들이 붙어준다. 잘 지내고 있는지, 뭐가 필요한지. 자기 방에서 옷도 갖다 주고 라면도 갖다 주고. 그렇게 한명 한명이 여기 동자동에 정착해서 거리나 시설생활에서 벗어나 내 삶을 시작해보는 거다. 그 시작을 하신 분 중에서 정착을 잘 이루신 분들이 살살 주민활동도 하고, 돈도 좀 모으고 하면서 적응을 한다. 그런 경우가 참 보기 좋더라. 이웃이 되는 거다. 서로 알아가는 것. 이렇게 이웃이 살아있는 쪽방촌이 없다고 들었다."

동자동사랑방의 힘은 주민들 간의 연결에서 나와

사랑방공제조합에서 열린 조합원교육 동자동사랑방 제공 ⓒ 녹색전환연구소


- "갚아"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시혜라는 건 말 그대로 은혜를 내려주면 끝인 거지 어떤 관계가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갚으라는 말은, 비록 채무관계라 할지라도 그로 인해 계속 연결이 된다는 의미다. 함께 살아가고 싶다는 의지가 너와 내가 맺은 관계에서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인 것 같다. 쓸모가 없어서 방에 쌓아두기만 하는 물품 지원보다 긴급대출이 훨씬 요긴해 보인다.
"이것을 다시 갚아 주셔야 또 다른 사람이 이 돈으로 또 올 수 있다. 소중한 것이다, 라고 말씀드리면 다 안다. 긴급대출 같은 경우는 사랑방에서 진행해서 급한 불을 끄고, 그 다음 동자동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수순은 조합에 가입하는 거다. 그럼 훨씬 더 관계가 끈끈해진다.

물론 상환기일을 넘긴다던지 약간의 민폐가 생기는 일도 있다. 그럼 끊임없이 따라가서 돈 달라고 조른다.(웃음) 총 상환율은 80프로가 넘는다. 주민들이 그게 얼마나 소중한 돈인지도 잘 알고 있고, 무엇보다 상환 안 하면 자꾸 귀찮게 하니까. 그러면서 또 친해진다."

- 귀찮게 하는 일 자체가 손이 많이 가지 않나? 노동력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
"그래서 이런 게 다 주민활동으로 이뤄진다. 활동가와 주민들이 함께 하니까 가능하다. 서로 서로 귀찮게 하기, 계속 끌어내기, 방에 찾아가기. 이런 일들을 주로 한다.

- 사랑방과 공제협동조합은 출발점이 같지만 단체와 조합이라는 구분이 분명히 있다. 지금도 같은 사무실을 쓰지만 서로의 공간은 분리된 것처럼. 활동영역도 많이 다른가?
"차이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또 긴밀히 연결돼 있기도 하다. 사랑방은 비영리단체니까 주로 단체가 해야 하는 활동들을 한다. 일상사와 관련된 각종 상담부터 임의동행(경찰서에 연행), 의료복지, 주거문제, 법률문제 관련된 일들을 처리하고 해결을 돕는다. 그리고 정책 문제, 인권 문제 이런 사회구조의 문제제기를 하는 일들을 주로 한다. 

조합은 경제사업체다. 가장 큰 사업은 소액대출이다. 이걸 하려면 조합원들을 일일이 다 잘 알아야 한다. 또 협동조합이라 임원이 필요한데 주민활동을 활발히 하시는 주민활동가들이 직접 이사를 맡고 있어서 직접적으로 조직운영에 결합하고 있다. 사랑방도 운영위원회에 주민들이 들어와 있긴 하지만 단체이다 보니 활동가의 역할이 좀 더 큰 것 같다."

주민들의 삶을 알아가는 것이 어떤 활동보다 우선

만다라색칠하기 소모임 동자동사랑방 제공 ⓒ 녹색전환연구소


- 조합과 사랑방의 역할은 담당했던 행사를 봐도 크게 분리되는 것 같다. 사랑방에서 했던 주요 활동은 문화행사들도 많았다. "홈리스추모제"나 "동자동공원문화제", "쪽방신문발행"처럼.
"홈리스추모제는 반빈곤연대에서 다 함께 하는 거라 우리의 독립적인 행사는 아니다. 연대사업이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치르는 가장 큰 행사이긴 하다. 일 년 동안 우리가 어떤 활동을 했는지 보여주고, 앞으로는 어떤 활동을 할지 이야기한다. 우리는 추모제에 쪽방 문제를 자꾸 들이밀고 있다.(웃음)

쪽방신문과 공원문화제는 내가 들어오기 전에 했던 사업이라 세부사정은 잘 모른다. 지자체의 지원을 받은 프로젝트 사업이다 보니 취지는 좋았지만 사업을 위한 사업이 되는 한계가 작용한 것 같다. 정작 주민들이 그 안에서 얼마나 즐겁게 즐겼는가 이런 것들이 중요한 건데. 그런 것들은 대외적으로 보여주기 어렵지 않나. 그러니 외부인들의 눈높이에 맞춘 행사들로 만들어지기 쉽다.

공원문화제에서 영화를 상영한 것도, 단순히 영화 틀어서 보여주면 그거 보고, 끝나고 국수 주면 그거 먹고. 뭔가 주민들과 함께 준비하고 함께 하는 개념이 아니었다. 영화야 집에서 하루종일 케이블 TV 켜 놓고 볼 수 있는데 굳이 밖에 나가서 술 취한 사람들 실랑이 들으면서 보고 싶겠나. 공원이라는 환경, 상영 시간대 등 주민들을 고려한 부분이 부족했던 거다. 주민입장에서 만든 사업들이 아니다 보니 외부 지원이 끊기면서 자연스레 끝났다."

동자동사랑방 어버이날 행사 동자동사랑방 제공 ⓒ 녹색전환연구소


- 행사의 주인공이 누군지를 먼저 알고자 했다면 어땠을까? 어떤 기준을 정해놓고 모든 사람들이 그 기준에 맞을 거라 생각하는 건 큰 착각이다. 문화예술 행사가 더 활발히 이뤄져서 주민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면 좋았을텐데 아쉽다. 자원이 부족한 곳일수록 삶의 어려움이 드러나기 쉽다. 이럴 때 문화예술은 더 큰 힘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주민들과 무얼 하려면 주민들이 실제로 어떻게 사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것부터 시작이다. 정부에서 수급자에게 지급하는 문화누리카드라는 게 있다. 1인당 연간 5만원을 쓸 수 있다. 주민들이 그걸 다 못 써서 사무실로 카드를 갖다 준다. 필요한 데 쓰라고. 책을 사거나 영화 보기, 기차표 구입 등에 쓸 수 있지만 주민들은 거의 잘 쓰지 못한다. 앞으로는 이를 활용할 방안도 계획 중이다.

사랑방에서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소모임 활동을 통해 나름의 문화예술 활동을 계속 하고 있다. 손으로 뭔가 만들거나 색칠하면서 힐링을 한다. 그렇게 하다가 만다라 명상, 색칠 명상까지 왔다. 이걸 통해 마음을 푸는 거다. 

무엇보다 사랑방이 주체가 되는 문화 활동으로는 어버이날 행사와 추석 행사를 꼽을 수 있다. 이런 행사들은 기본적으로 400인분의 밥을 차리는 마을잔치다. 주민들이 함께 밤을 새 가면서 행사 준비를 한다. 주민들이 직접 청량리시장 가서 장 봐오고, 밥 짓고, 세팅하고, 마지막 설거지까지 다 끝마쳤을 때. 뭔가 해소가 되는 기분이다.

일 년에 2번 그렇게 한다. 이 행사들은 자원봉사도 안 받고 동네 안에서 다 한다. 후원도 외부에서 안 받는다. 후원을 주민들에게 돈 통 들고 다니면서 받는다. 추석 잔치하는데, 이러면 보태라고 돈을 준다. 요즘엔 거의 그렇게 모은 돈으로 행사를 치르면 똑 떨어진다. 그렇게 주민들이 이건 우리가 하는 잔치, 라고 하는 자부심이 있다.

장례도 일종의 행사다. 무연고이거나 가족이 포기한 경우, 사랑방에서 주민들께 부고를 띄우면 찾아와서 장례상을 차리고, 장지에도 같이 가고, 영결식 치르고 화장해서 보내드린다. 같이 서로 힘을 보탠다. 올해 25명이 그렇게 가셨다. 문화라는 게 예술, 이런 거창한 것도 있겠지만 마을 안에 있는 이런 행사를 치르는 마음들, 마을 살림의 힘에서도 피어난다."

해바라기 꽃 한 송이가 불러온 파란

꺾인 해바라기 꽃 동자동사랑방 제공 ⓒ 녹색전환연구소


- 그런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 자체가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사랑방이 즐기고 놀 수 있는 판이 많아지면 좋겠다. 최근엔 어떤 즐거움이 있나?
"최근엔 촛불집회가 큰 즐거움을 주고 있다.(웃음) 촛불집회 다녀온 주민들이 가지 않은 주민들에게 막 설명해주기도 하고 서로 정치적인 의견을 나누기도 하고 그렇게 이야기의 장이 되었다. 

주민들은 마을 곳곳에서 즐거움을 찾기도 한다. 사무실 앞 작은 화단에 해바라기씨를 심었더니 잘 자라나 꽃이 폈다. 해바라기 꽃이 참 예뻤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주민들이 화단 앞에 서서 웅성거리며 난리가 났다. 뭔가 싶어 봤더니 누가 그 꽃을 똑 자른 거다. 다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며 분개해 했다. 마침 그 근방에 CCTV가 있었는데 주민들이 CCTV를 돌려서라도 범인을 잡으라고 성화였다. 그래서 정말로 CCTV를 통해 범인을 잡았다.

그 때 처음 알았다. 우리 주민들이 이렇게 소소한 것 속에서도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는 걸. 내년엔 이 화단에 골프장을 만들자고 그러고 있다. 작년엔 거기서 멧돼지가 나왔다는 소리도 들었다.(웃음)

가까운 곳에 흙이 있고 만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화분을 만들어서 쪽방마다 돌릴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빛이 잘 안 들어오는 방 구조 상 결국 못 했다. 쪽방 생활이라는 것이 제약이 많다. 물도 쓰기 불편하고 화장실, 샤워장, 부엌 등 보통 집에서 쓸 수 있는 편의시설이란 게 없이 달랑 좁은 방만 있으니까. 그래서 공용 편의시설에 대해서도 계속 서울시 측에 건의하고 있다."

촛불집회로 나서는 동자동사랑방 주민들 동자동사랑방 제공 ⓒ 녹색전환연구소


- 사랑방 활동이 기존의 복지 정책과 가장 다른 점은 어떤 걸까?
"눈높이가 다르다. 우리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려고 한다. 우리 활동이 여기 분들과 살림을 같이 하는 거다 보니 소소한 일들이 정말 많다. 어떤 어르신은 기저귀 사다드려야 하고, 어떤 어르신은 밥도 떠먹여 드려야 하고, 병원에 모시고 다니고. 주민들은 동사무소에 가서 기초생활수급자 신청하는 것도 어려워한다. 그럴 때 같이 가서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주민들에게 힘이 된다. 외부의 시선과 잣대로부터 감시의 눈이 되어주는 거다. "이 사람한테 함부로 하지 마!" 일종의 자식 역할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 자식 역할, 부모 역할이란 말처럼 한국 사회는 가족이 떠맡은 역할이 참 많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복지 영역이 가족 구성원에게 떠맡겨지면서 돌봄 노동을 수행할 정상 가족이 없는 국민들은 의지할 곳이 없는 상황이다. 장기적인 경제 불황과 가족 해체는 이런 상황을 가속화시키고 있음에도 정책은 바뀐 현실을 반영하기엔 너무 더디다. 공룡님은 사랑방의 정체성이 사회 시스템을 바꾸는 거라고도 하셨다. 어떻게 하면 이런 구조적인 문제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일단 이게 부당하다는 걸 주민들이 아셔야 한다. 수급권은 나의 당연한 권리고 모든 국민에게 국가가 당연히 해줘야 한다는 의무라는 걸. 홈리스건, 거리에 계신 분이건, 치워지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안고 가야 하는 분들이라고 말한다.

장애인 운동 같은 경우, 장애인들이 얼마나 피나게 싸웠는가. 덕분에 지하철역마다 휠체어 리프트와 엘리베이터가 생겼고 그 혜택을 모든 시민들이 공평하게 누리게 되었다. 여기도 마찬가지다. 쪽방 주민이나 홈리스가 인권, 주거권, 의료권, 노동권 등을 위해서 투쟁을 해서 권리를 쟁취하면 결국 모든 시민들이 그 혜택을 받게 되는 거다.

동자동만 해도 작지만 변화가 있었다. 주민들도 다른 쪽방촌과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한다. 동자동 9-20번지가 철거 위기에 처했을 때 다른 쪽방 같으면 뿔뿔이 흩어졌을 거라고. 근데 우리는 거기서 끝까지 남아 싸웠다. 우리가 마땅한 권리라고 주장하고 함께 싸울 수 있는 분위기가 마을 안에 조성되고 있다는 거다. 이건 분명히 우리가 함께 활동해온 시간들이 쌓이면서 생긴 변화라고 할 수 있다."

- 그런 변화가 있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과 면대면 관계가 있었겠다. 하지만 공룡님은 여성이고 쪽방 주민들에 비해 젊은 편이어서 활동을 하며 성추행이나 주폭 등 여러 위험에 노출되진 않았는지?
"여기서 항상 듣는 게 성추행이다.(웃음) 막상 이런 말과 행동을 하는 분들은 이게 폭력이라는 자각을 못한다. 그래서 "그런 말과 행동은 안 된다"고 계속 혼내고 있다.

여성 주민들이 여기 사무실로 오는 이유도 이곳을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여성 활동가도 있고. 여성 주민들은 항상 화가 나 있다. 늘 폭력을 들으니까. 그럴 때 나처럼 옆에서 같이 따져주는 이가 있다는 게 그분들에겐 큰 힘이 된다. 그러다 본인이 직접 "싫다", "하지 마라" 그런 말들도 하게 되는 거다."

- 쪽방 주민들과 함께 사는 활동가의 삶을 택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이전에는 어떤 활동을 주로 했는지 궁금하다.
"시골에서 대안학교 교사로 지냈다. 공룡이란 이름도 그 곳에서 아이들이 붙여준 거였다. 산 밑에서 아이들 가르치면서 살다가 이혼과 함께 학교를 그만두고 나왔다. 귀농을 하려다가 "정착과 유목 사이"라는 여성 생태공동체 모임에 합류하게 되면서 위로를 많이 받았다. 거기서 "빈집"이라는 주거 공동체를 알게 돼서 동자동에 오기 전까진 빈집에서 활동을 했다."

- 귀농이라는 꿈을 안고 있으면서 서울이라는 도시, 그것도 빌딩숲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을 텐데 그럼에도 계속 여기 있게 만드는 끌림은 무엇일까?
"게으름이다.(웃음) 지금까지도 삐딱삐딱하게 오긴 했지만 계속 귀농을 향해 가고 있는 것 같다. 동자동 주민 중에서 나중에 한 마을에 모여 같이 살고 싶은 분들이 있다고 하면 같이 가서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귀찮으니까 땅도 안 알아보고 아직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여기가 고향이신 분들은 여기서 지내고, 좀 트인 곳으로 가고 싶다는 분들은 또 연결해서 쪽방에서 지방으로 오시면 좋지 않을까."

빌딩숲에서 농사짓는 새로운 생태계

동자동사랑방 사무실 앞에 놓인 신발들 동자동사랑방 제공 ⓒ 녹색전환연구소


- 사랑방에 오기 위해 서울역에서 내려 걷다 보니 큰 도로변은 정말 빌딩숲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런 빌딩숲의 생태계 속에서 완전히 다른 숨을 쉬고 있는 생태를 만들고 있는 사랑방 활동가의 꿈이 귀농이라니 참 어울린다. 어쩌면 지금 동자동에서도 일종의 농사를 짓고 있는 거 아닐까?
"평소엔 살림이란 말을 많이 쓰는데 내년엔 농사란 말을 많이 해봐야겠다.(웃음)"

- 계속 개발 압박이 들어올 텐데 사랑방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개발이 그리 쉽게 되진 않을 거다. 여기 개발이 들어올 거라면 그 전에 서울시나 지자체가 메뉴얼을 만들어서 기존 거주민들한테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요구 중이다. 그때를 대비한 매뉴얼도 직접 만들고 있다.

같은 평수에도 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나. 사실 이게 힘이다. 우리가 싸울 수 있는. 다른 지역에 쪽방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고, 거기서 쫓겨서 이리로 오고 있는 분들도 있다. 그런 걸 준비하려 한다. 주민들이 그냥 쫓겨나지 않는다는 거. 쫓겨나지 않을 권리를 주장할 거다."

- 끝으로 우리 인터뷰에서 항상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녹색전환연구소에서는 기존의 삶과 다른 녹색전환의 삶을 계속 연구 중이다. 공룡님은 "녹색전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살림의 규모를 줄이는 것이다. 지금 사회는 물질들이 너무 넘친다. 누가 많이 가졌기 때문에 나도 그 수준에 맞추고 싶어 한다. 살면서 내 몸 눕힐 이부자리 하나, 밥그릇 하나, 수저 하나. 이렇게 단순하게 살 수도 있다. 살림을 최소화하면 환경은 더 좋아질 거니 일석이조다. 내가 쓰지도 않을 걸 쟁여놓고 있기만 하면 결국 남도 못 쓰게 되고 나중에 가선 버려질 뿐이다. 쪽방에 가서도 청소해준다 하고선 싹 다 버려 버린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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