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의 5년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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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현(jsh4245)등록 2017.05.10 09:33
"이번에 선거권이 처음 생겨서 부재자투표를 했고, 또 이번 학기에 언론학개론과 미디어사회문화의이해, 또 통계학입문 수업을 같이 들어서 그런지 어느 때보다도 대통령 선거 과정과 결과에 대한 관심이 컸다.

지금 개표 결과로는 박 후보가 당선이 확실하다고 나오고 있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문재인 후보나 강지원 후보 김순자 후보 등에게 나름대로 개인의 소신에 따라 투표권을 행사한 사람들의 표가 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말 많은 국민이 다른 후보들에게도 표를 던졌다.

당선되는 후보는 자신을 믿고 뽑아 준 지지층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5년동안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다른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까지도 돌려놓을 수 있도록 공약의 부족한 부분을 점검하고, 임기 동안 신중했으면 좋겠다."


성인으로서 첫 선거권을 행사했던 18대 대선 때 짤막하게 써 놓은 글을 보니 지난 5년 동안 이래저래 참 많은 일을 겪었다는 생각이 든다.

부산에 살았던 19년 동안은 '정치', '선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이유 없이 지냈다. 어느 당에서, 누가 당선되든 국가와 사회는 뭐 어쨌든 돌아갈 테고. 뉴스에서 어렴풋이 봤던 정치인들의 모습은 아웅다웅 다투고, 자기 이권만 챙기기 바쁜 사람들만 같았다. 누가 뽑히고, 어떤 정치를 해도 그냥 나 하나 정도는 무난하게 살 만하겠지. 소위 PK 출신에 제도권 교육 경쟁에서도 상위권에 있었던 나는 그래서 고민도, 걱정도 별로 없이 속 편하게 살아왔다.

수능 공부 열심히 해서 SKY 대학에 왔다고 자랑하는 게 때로는 바람직하지 않은 구조를 스스로 재생산해 내는 것일 수도 있는 걸, 대학에 와서야 조금씩 반성했다. 그동안 '내가 다 열심히 하고 잘 해서 이 정도까지 온 거야'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도 최근에서야 진지하게 고민하는 부분이다. 사실 이 두 가지는 아직 현실과 적절히 타협중이다.

내가 93년에 태어났으니 우리나라는 이미 제도적으로 민주화가 이뤄져 있었고, 학교에서도 '민주주의'가 일상적이었다. 학급 대표는 반 친구들의 투표로 뽑았다. 대표는 매달 반 친구들의 고민거리를 모아 간부 회의에 가서 개선방안을 논의했다. 두발 규정 같은 것들이 종종 바뀔 때도 있었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닐 때 부조리하다고 느꼈던 걸 읊어보자면 없지는 않지만 어쨌든 정치적 효능감은 지금보다 훨씬 높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지난 5년 동안은 점점 내가 한없이 작아지고 무기력해지는 게 느껴졌다. 2014년 생때같은 아이들을 비롯해 제주도로 여행을 가던 이들이 죽어가는 걸 실시간으로 보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이들의 죽음과 유가족, 미수습자 가족들을 대하는 국가의 태도는 냉정하고 참담했다. 당사자들의 아픔에 대한 공감 없이, 속전속결로 이뤄진 위안부 합의를 보면서 '말로만 민주주의, 내가 뭘 할 수 있는 거지' 하고 체념했다.

그리고 2015년 말 영문도 모른 채 청와대에서 함께 일하기에 '부적격한' 당사자로 통보받으면서, 자아 효능감은 거의 바닥을 쳤다. 나한텐 '이게 나라냐'의 직접 경험판 사건이었다. '정치' 없이도 혼자 잘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던 내가 '정의'로운 정치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될 줄이야. 2012년 대선이 끝나고 이 글을 쓸 때엔 상상도 못 할 일이었지.

정유라씨 특혜 입학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보면서 '정말 갈 데까지 갔구나' 하고 생각했다. 주변 친구들과 '역시 헬조선', '이민이나 가자'고 자조 섞인 농담을 많이 했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설 때도, 이래갖고 뭐가 해결이 되겠나 싶었다. 근데 신기하게도 몇천 명이 몇만 명이 되더니 230여 만명이 모였을 땐 나도 그 광장에 있었다. 국회 탄핵 발의, 헌재의 최종 판결에 5월 장미대선까지. 정치적 효능감이 바닥을 쳤다가 다시 '뭔가 할 수 있겠다'는 힘을 얻기도 한 5년이었다.

5년 전 겨울, '당선되는 후보는 지지층이 실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다른 후보를 지지했던 이들의 마음을 돌려놓았으면 좋겠다'고 써 놨다. TV토론을 보면서 느낀 건데 이번 정권은 지난 정권보다 그러기 더 힘들 것 같다. 지난 번엔 대통령이 무려 과반수 당선이었는데, 이번엔 저번보다 사표가 훨씬 많다. 후보들 간 네거티브와 기사에 달리는 비방 댓글은 일일이 언급하기 민망할 정도다.

탄핵 가결 이후 권한대행 체제로 나라가 운영되면서 간신히 버티고 있긴 한 것 같은데 대내외로 풀어야 할 큼지막한 과제들도 많다고 한다. 국회에도 과반수 정당이 없으니 유세 기간 동안 정당들이 야심차게 내놓은 공약들이 얼마나 통과되고 법제화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뭘 해야 할까. 촛불이든 뭐든,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또 퇴행을 반복하게 되는 게 아닐까.

5년 동안 내가 너무 비관적으로 변했는지, 어려움 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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