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AI(인공지능)가 도래하는 사회에 대한 짧은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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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누리(asp835)등록 2017.05.17 11:16
"푸른 요정님, 제발 저를 인간으로 만들어주세요." 
 
 인공지능을 지닌 어린이 로봇인 데이비드는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난 후, 피노키오를 인간으로 만들어 준 동화 속 요정에게 소원을 빈다. 자신도 엄마에게 사랑 받을 수 있도록 진짜 사람으로 만들어달라고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동화가 아니었고, 요정은 없었고, 데이비드는 사람이 될 수 없었다. 이 슬프고도 잔인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가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001년 작 'AI(에이 아이)'다. 
 AI란 풀어서 쓰면 'artificial intelligence'로, 한국말로는 '인공지능'이다. 귀에 닳도록 들어본 말이지만 사실 그 뜻을 물어보면 쉽게 대답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지금도 아주 빠른 속도로 우리의 생활 속으로 들어오고 있는 존재가 바로 인공지능이다. 우리는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막연히 '미래에는 이렇겠지' 라며 로봇사회를 상상하곤 했다. 집에 돌아오면 로봇이 다림질을 해주고 있는 소소한 일상을 꿈꾼다던가, 인간 대 로봇의 전쟁처럼 거대한 인류 멸망의 세상 등을 상상해왔다. 몇 십 년이 지난 지금, 인공지능은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더 촘촘하게 우리 생활에 들어왔다. 그렇다면 앞으로 미래에는 얼마나 더 인공지능이 인류 사회를 바꿔 놓을까? 
 
학자들은 영화에서 나오는 인공지능의 단계까지 도달하기에는 아직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말한다. 허나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우리가 상상하는 수준의 '진짜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AI가 만들어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변할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크게 두 갈래의 입장에서 주장을 펼친다. 하나는 긍정론, 하나는 부정론이다. 전자는 로봇이 반복적 노동을 대신하여 사람들이 좀 더 창의적인 업무를 할 수 있다는 점, 불필요한 노동시간을 줄여 여가시간을 늘일 수 있다는 점 등을 대며 로봇이 인류 사회를 윤택하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후자는 로봇이 만들어지면 일자리가 줄어들게 되고, 경제는 좋아질지 몰라도 국민 소득은 늘어나지 않는 디커플링(decoupling)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우려한다. 나는 이 두 가지의 입장 중 무엇이 옳은 가를 생각하기 전에, 먼저 짚어야 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라는 문제이다. 

17살 때 'AI'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불치병에 걸려 식물인간이 된 아들 '마틴'을 냉동캡슐에 넣은 한 부부가 슬픔을 잊기 위해서 남자 아이 로봇을 입양하는 것으로부터 영화는 시작 된다. '데이빗'이라는 이름을 가진 로봇은 자신이 인간이라고 의심치 않으며 '무조건적으로 가족을 사랑할 것'이라는 데이터 값을 충실하게 이행한다. 처음에는 이에 어색함을 느끼던 부부도 이내 마음을 열고 데이빗을 진짜 아들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친아들 '마틴'이 깨어나게 되면서 데이빗은 점점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되고, 결국 그는 집에서 쫓겨나 자신을 인간으로 만들어 줄 동화 속 파란 요정을 찾아 긴 여정을 떠난다. 
 이 영화에서 볼 수 있듯 사람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인공지능이 등장하면 가장 먼저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은 사람 간의 관계이다. 이 작품에서 로봇은 아들의 자리를 대신하였고, 진짜 사람인 아들은 깨어나 보니 자신이 있을 자리가 없어졌다. 이제 여기서 자신이 아들이라 의심치 않는 로봇과, 실제 친아들인 사람의 갈등이 시작 된다. 

여기서 사람들은 자신의 자아에 대한 혼동을 느낄 것이다. 로봇에 의해 나의 자리를 빼앗겼을 때, 내 존재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한다는 것은 현재는 상상도 하지 못 할 일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도입되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이다. 오늘날 대다수 아버지의 역할을 생각해보자. 대개 우리가 떠올리는 아버지의 역할은 가족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고, 밖에서 생활비를 벌어오고, 집안 중대사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차지하는 하는 사람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 역할을 더 확실하게 수행하는 로봇이 있다면 어떨까? 집안일을 모두 완벽하게 해내고, 더 많은 수입을 창출하고, 여러 가지 데이터를 분석해 사람이 생각하지 못 한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또 다른 아빠. 그리고 결정적으로 24시간 풀가동을 해도 지치지 않는, 사람이랑 똑같이 생긴 로봇 아빠라면 말이다. 그렇다면 대다수의 아버지는 심한 상실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가정에서의 존재감이 사라지는 것. 그것은 곧 내가 유지해왔던 '나'라는 존재 자체가 흔들리는 문제이다. 

물론 인공지능이 이렇게 부정적인 영향만 끼치는 것은 아니다. 너무 바쁜데 몸은 하나여서 힘들 때, '내 몸이 다섯 개였으면 좋겠다.'라고 한번쯤은 상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도입 되면 이러한 얘기도 현실이 될 수 있다. 나의 데이터를 넣은 인공지능은 나보다 더 빠르게 숙제를 도와주고, 업무를 처리하고, 가정 일을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에게 남편의 데이터를 넣어 똑같이 구현한 로봇 남편을 제공한다면 아내의 정서적 안정에 좀 더 도움을 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애완견을 키우고 싶지만 많은 시간과 정성을 할애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에게는 밥도 덜 먹고, 외로움도 타지 않는 로봇 애완견이 꼭 필요할 지도 모른다. 인간의 숙명인 '죽음'이라는 것이 미래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과제가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에서 치명적인 단점은 '나'가 누구인지 모호해진다는 것이다. AI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 중 대부분이 인공지능이 불러올 나태함을 얘기한다. 일자리가 없어지고, 신체 활동을 할 필요가 없어지고, 단순한 노동을 할 필요가 없어지면 사람들은 곧 나태해지고 게을러질 것이라는 얘기이다. 허나 이것보다 더 문제인 것은 정신적인 나태함이 생긴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나'보다 잘 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곧 '나'의 존재 이유를 상실하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사람은 일을 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자아 존중감을 느끼고 행복함을 느끼는 사회적 존재이다. 허나 인공지능이 도입 되면 이 중요한 과정조차도 로봇이 대체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곧 사람들은 생명력을 잃을 것이고, 그것이 곧 로봇들이 모든 것을 하게 되는 무기력한 사회를 낳게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곧 '나'가 누군지에 대해 더욱 고민하고 답을 찾으려 노력할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철학의 부상'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것을 찾기 시작할 것이다. 로봇은 '나'가 누구인지 사고하지 않는다. AI에서 나오는 데이빗 조차도 엄마에게 사랑 받기 위하여 막연히 인간이 되고 싶을 뿐, 본래의 '나'가 누구인지를 알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나의 존재 의미를 찾고, 자아를 실현하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가능한 활동이다. 현재의 인류 사회는 이러한 활동을 그리 중요시 생각하지 않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나를 탐색하기 전에 생계유지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기계처럼 반복적인 노동을 하고, 돈을 벌며,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전쟁에 뛰어들기 바쁘다. 때문에 '인문학은 돈 많은 사람이 하는 공부다'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허나 로봇이 이러한 반복적인 노동을 대신하면 기업은 더 이상 사람들에게 이러한 역할을 요구하지 않으며, 이제는 누가 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느냐라는 상상력의 싸움이 될 것이다. 그것은 곧 사고를 넓혀야 한다는 뜻이요, 그러기 위해서 '철학'은 필수 과제가 되는 셈이다. 

또한 성(性)윤리에 대한 여러 논란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간 우리는 매춘이 합법인가 아닌가라는 논점을 두고 끊임없이 토론해왔다. 매춘이 불법이라는 주장은 매춘이 곧 인간의 윤리성에 어긋나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 자리를 로봇이 대체하게 되면 성매매가 인격을 무시하는 행위라는 주장은 더 이상 들어맞지 않는다. 실제로 AI(에이 아이) 영화에서는 여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애인대행로봇인 지골로 조(주드 로 역)가 등장한다. 그는 자아 정체성에 대한 의문도, 성매매에 대한 회의감도 없이 그저 주어진 데이터 값을 충실히 이행하는 로봇이다. 데이빗이 푸른 요정을 찾아 떠난다고 할 때 지골로 조는 얘기한다. "푸른 요정이 여자라고 했지? 좋아, 그녀는 널 진짜 소년으로 만들어주고, 난 그녀를 진짜 여자로 만들어 주는 거야." 그는 그저 자신에게 입력된 프로그래밍 된 목적에 충실 하는 로봇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성(性) 로봇이 도입된다면 우리가 그간 지니고 있던 성 윤리에 대한 의식이 다시 뒤집어질 가능성이 있다. 로봇을 도입함으로써 더 이상 인간의 도덕의식을 해치지 않고 인간의 성적 욕망을 실현 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올 것이고, 한편으로는 쾌락의 대상이 로봇으로 바뀌었다고 하여 인도적인 문제가 해결이 되었는가는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라는 의견이 나올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인공지능이 도입 되면 다방면으로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문화적 논쟁이 일어날 것이다. 

마지막으로 '심리상담의 확대'를 예상해보았다. 로봇보다 사람이 더 잘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상담'이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말한 여러 문제들은 모두 인간 본질에 대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문제점들이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심리학이 발달할 것이다. 심리상담은 그 무엇보다 공감과 이해를 필요로 하는 학문이다. 로봇은 기계적인 분석을 해줄 수는 있으나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에는 어렵다. 또한 마음의 공허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로봇의 한 마디와 사람의 한 마디 중 치료에는 무엇이 더 효과적일까? 나는 나와 같은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후자가 더 효과적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격변하는 혼란기에 심리적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치료해줄 상담 분야가 크게 각광을 받을 것이라는 예측을 해본다. 

인공지능이 도입 된 인류사회에 대하여 총 세 가지의 변화를 예상해보았다. 앞의 주장에는 모두 공통점이 있다. 바로 '나'에 대한 물음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나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내 자부심과도 같았던 일들을 모두 '로봇'이 대체할 때. 심지어 나의 생활 모두를 '로봇'이 대신할 때. 우리는 과연 그것을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것에 대한 답은 아직 미지수이다. 실제 AI가 도입되었을 때는 이 예상을 뛰어넘은 더 많은 사회적 변화가 있을 것이다. 

미국의 장수 퀴즈쇼인 제퍼디(Jeopardy)에서 최장 우승자였던 켄 제닝스(Ken Jennings)는 인공지능과의 퀴즈 대결에서 패한 후 이런 말을 하였다. "저는 컴퓨터가 생각하는 시대의 첫 희생양이예요. 문제는 제가 끝이 아니라는 거죠." 이 말은 앞으로 인공지능으로 인해 변할 인류 사회의 핵심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21세기의 인류 사회는 '나'가 누군지를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시대였다. 생계에 치여서, 목숨을 보존하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기계적으로 일하였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처럼 기계 같은 삶을 살다가는 급격하게 다가오는 인공지능의 사회에서는 진정 '나'의 존재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이러한 예상으로 볼 때 우리는 로봇을 활용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떠나서 로봇과 '나'의 차이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자아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것이 곧 인공지능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 진정 인간의 로봇의 조화를 이룩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지금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생각해보자. '나'는 누구인가? [출처] '나'는 누구인가? - 정누리|작성자 김포대두 정왕룡

덧붙이는 글 위 내용은 김포신문에 요약 발췌하여 게재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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