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 라이프(A Simple Life, 2011) : 늙은이의 과거는 젊은이였음을

'심플 라이프' 영화를 보고

검토 완료

정누리(asp835)등록 2017.05.17 17:49




​내 나이 스물. 성인이 되자마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하나였다. "네 나이가 제일 좋을 때야." 모두가 가장 부러워하는 나이.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저질러보는 일탈. 젊음이 넘치는 시기, 스물. 나는 어제까지만 해도 이 젊음이 영원할거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이 'A Simple Life'라는 영화는 그런 나에게 "꿈 깨!"라고 말 해주는 작품이었다.




(60년간 량 씨 가문에서 일했던 가정부 '아타오'와 집 주인 '로저')

2011년에 제작 된 심플 라이프(A Simple Life)라는 작품은 허안화 감독이 제작하였으며, 배우 유덕화가 '로저'를, 엽덕한이 '아타오' 역을 맡았다. 아타오는 아버지가 일제 침략기 때 죽었고, 어머니의 무능력 탓에 태어나자마자 가정부로 팔려가는데, 그 집이 바로 로저가 있는 '량씨 가문'이다. 아타오는 60년간 이 집안에서 식모가 되어 그들을 보살피는 데, 어느 날 노령으로 인해 중풍에 걸리고 만다. 집에 혼자 남아있던 로저는 자연스레 아타오의 간병인을 맡게 되었고, 그 때부터 단순한 가정부와 고용주 사이였던 둘 사이에 깊은 연대감이 생기게 된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아타오는 로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요양병원에 자진 입원한다. 밥을 스스로 먹지 못하고 탁상에 밥알을 질질 흘리는 할아버지, 직업병이 있어 남들을 자꾸 가르치려드는 전직 교장 할아버지, 가끔씩 찾아오는 딸에게 항상 구박 받는 할머니. 그 안에서 희망은 조금도 찾아 볼 수 없다. 때문인지 초반의 아타오는 굉장히 예민해 보인다. 남이 건네는 말 한 마디에도 귀를 닫아버리고, 타인과 옷깃만 스쳐도 굉장히 불쾌한 듯 몸을 웅크린다. 하지만 로저, 그가 찾아 올 때 만큼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천진난만한 소녀처럼 방긋 웃는다. 로저는 이미 그녀에게 가족과도 다름이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로저는 영화에서 가정부였던 아타오를 극진히 간호한다. 그녀를 침대에 앉혀놓고 자기가 빗자루 질을 하고, 몸에 좋다는 온갖 차를 달여서 온다. 또한 남에게 그녀를 '양어머니'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그 모습을 보며 아타오는 굉장히 행복해한다. 웃음이 많아진 그녀는 서서히 요양병원 식구들에게도 마음을 열게 되는데, 그 태도가 굉장히 담담하면서도 따뜻하다. 매번 진료비를 빌려달라고 하는 킨 할아버지의 돈이 사실은 사창가를 가기 위한 것임을 알면서도 캐묻지 않고 항상 돈을 빌려주고, 또 선물로 받은 제비집 차를 독차지 하지 않고 여럿 노인들과 함께 나눠 마신다. 또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의 옷에서 떨어진 단추를 직접 꿰어주려고도 한다. 이 '요양병원'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만큼은, 아타오를 비롯한 노인 모두가 서로를 가족으로 생각하며 의지해나간다.
 


하지만 이 울타리 밖에서는 그들의 외로움이 적나라하게 표현 된다. 새해가 되자, 로저는 친척들과 북적거리며 화려한 설 파티를 보낸다. 하지만 설 명절에 갈 곳이 없어 요양병원에 남아있는 아타오는 텔레비전에서 터지는 화려한 폭죽을 바라본다. 그것은 슬프게도 늙은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캄 할머니는 아들이 자신을 데리러 와주기를 기다리지만, 결국 아들은 연락이 오질 않고 항상 짜증 투성이인 딸만이 할머니를 데리고 간다. 요양병원 최고령 할머니는 자신을 데리러 오는 가족이 아무도 없어 휠체어에 앉아 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이 영화에서 젊은이와 늙은이는 극명하게 대비 된다. 젊은이는 매일이 화려하고 바쁘다. 늙은이들은 그들에게 있어 인생의 우선 순위에서 뒤로 밀려나는 존재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이 순위가 바뀐다는 것이다. 매일 캄 할머니를 구박하던 딸은 결국 할머니가 죽자 병실의 짐을 정리 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녀에게 좀 더 잘해주지 못 했다는 후회 때문에 병실을 떠나지 못 하고 하염 없이 운다. 로저도 마찬가지다. 아타오가 건강할 때 까지만 해도 둘은 전혀 일상적인 수다를 하지 않았다.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타오의 병세가 점점 악화되자 로저는 그간 해주지 못한 것들을 하기 위해 애쓴다. '죽음'은 이렇듯 사람 간의 관계를 180° 뒤집어 놓는다. 그 사람 앞에서 쉽게 하지 못 했던 말들, 숨겼던 감정들. 그 모든 허물을 벗기고, 서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도록 한다. 죽음은 이렇듯 생의 마감을 앞둔 본인 뿐만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까지도 태초, 그 처음으로 돌려놓는다. 죽음은 두려운 존재이지만, 가장 순수하고 경건한 과정인 것이다.


 
아타오는 병세가 점점 악화 되어 결국 죽음의 문턱 앞에 서게 된다. 그녀가 쓰러져 대학병원으로 이송 되어가자, 요양원 안에 있던 모든 노인들이 그녀에게 눈을 떼질 못 한다. 표정은 담담하지만, 눈빛은 슬픔에 차있다. 항상 한 곳만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중증 치매 할아버지도 영화에서 맨 처음으로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결국 아타오는 기적 없이 생을 마감하였고, 로저는 덤덤히 그녀의 장례식을 치룬다. 마지막에 킨 할아버지가 꽃을 들고 아타오의 장례식장에 찾아오는데, 나는 이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그는 국화꽃 몇 송이를 들고 와 진심으로 그녀를 추모한다. 다들 자신을 꺼려했는데도 유일하게 사람으로 대해준 것에 대한 감사함일지도 모른다. 요양병원 안에서 그토록 당당하고 유쾌하던 킨 할아버지는 장례식장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움츠러들어있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나 애처로워보였다. '요양 병원'은 노인들을 가두어놓은 울타리이고, 그것은 사회에서 격리 됨을 의미한다. 그 울타리를 나와 사회 속으로 다시 들어왔을 때, 노인에게 그 곳은 너무나 낯설고 두려운 곳이다. 하지만 킨 할아버지는 그녀를 추모하기 위해 그 공포를 이겨내고 장례식장에 왔다. 결국 그것은 그녀가 베푼 사랑이 만든 결과였다.

 
  

관객들은 이 모든 과정이 나에게도 닥칠 미래라고는 생각하지 못 한다. 내 다리는 언제나 튼튼하고, 영원히 검은 머리칼을 가지고 있을 줄 안다. 하지만 나는 불멸의 존재가 아니며, 내 미래는 생각보다 화려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하루하루가 너무나 외로운 독거노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외로움은 과연 누가 만드는 것일까? 아마 자신의 앞날에 한 번도 신경 쓰지 않았던 지금의 나 때문에, 미래의 내가 더 고독한 건 아닐까?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이 젊음을 더 소중하게 느껴야하고, 미래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또, 우리 주변에 대해서도 말이다.
 
아타오를 극진히 간호하는 로저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 그가 현실에서 보기 드문 캐릭터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먼 훗날엔 그가 너무나 흔한 인물이어서 주인공이 될 수 없는 날이 오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
덧붙이는 글 위 내용은 제라블의 글로그(http://blog.naver.com/asp835)에 본인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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