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스토리텔링

골목답사기

검토 완료

손안나(arabianna)등록 2017.05.18 16:00
삶의 터전을 시골로 옮긴 후 요즘 주변을 알아가는 재미를 즐기고 있습니다. 특히 집근처의 골목을 산책하며 흩어져 있는 이야기와 예쁜 건물들을 보는 기쁨이 쏠쏠합니다. 친구들의 추천으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신와교회입니다. 교회에 들어가며 깜짝 놀랐는데 어릴 적 뛰어 놀던 교회마당과 이젠 다 사라져버린 교회의 종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너무 반가워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언제부턴가 교회에서 종탑이 사라져 이젠 통 종탑을 볼 수 없는 데 이곳엔 종탑이 남아 있었고 교회 내부도 옛날의 전형적인 교회였습니다. 아직도 오래된 교회의 모습이 남아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이런 오래된 교회들이 원형 그대로 보존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하리교회인데 순교자를 기념하는 비석이 서 있었습니다. 순교자의 피 값으로 세워진 교회는 반석처럼 단단하여 웬만한 바람에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믿기에 하리교회의 역사와 누가, 왜, 어떻게 순교 하였는지 궁금하여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하리교회의 순교자는 임광호 전도사님이다. 임광호 전도사님은 황해도 신천 출신입니다. 황해도 신천은 한국의 예루살렘이라 불리는 평양을 능가할 정도로 기독교가 부흥하였고 경제적으로도 중산층이 두껍게 형성되어 있어 민족주의 운동이 활발했던 곳입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전도사님은 만주에서 신학을 공부하였습니다. 해방이 되면서 공산당의 박해를 피해 자유로운 신앙생활이 가능한 남한으로 내려와 삼례 와리교회에 부임 하였습니다.

그러나 와리는 공산당 활동이 강하였고 전도사님의 활발한 포교활동은 교회를 부흥시킵니다. 교회의 부흥은 공산당원들에겐 못마땅한 일이었고 갈등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전도사님은 와리교회를 포기하고 하리에 교회를 개척합니다. 교회를 개척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전쟁이 터졌고 공산당과의 갈등은 전도사님의 구금으로 나타났습니다. 공산당은 신앙을 부인할 것을 요구하였고 전도사님은 거절하였습니다. 악에 받힌 공산당은 총알도 아깝다며 전도사님을 몽둥이와 곡괭이로 때려 죽였습니다. 이데올로기와 신앙이 대립하며 만들어진 비극적인 일입니다.

이렇게 순교한 터에 교회 건축이 진행되었지만 가난한 성도들의 힘으로 건축은 지지부진 진도가 나가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하리교회의 문형우 집사님은 자신의 눈을 팔아서라도 교회 건축을 완성 시키겠다 결심하고 전주예수병원에 찾아갑니다. 병원에서 눈을 사줄 리가 없었습니다. 이런 사연을 전해들은 미국 선교사님이 기고문 형식으로 미국기독교계 신문에 기사를 실었습니다. 이 기사를 읽은 미국의 신자들이 헌금을 보내주어 교회가 완공이 되었답니다. 아름다운 헌신이 있는 교회는 섬김의 모습이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하게 합니다.

교회 건물 또한 50여년의 연륜이 느껴지는 미래유산감입니다. 외국의 많은 관광지의 주요 관람목록에 교회가 들어 있듯이 우리나라도 오래된 교회들이 잘 보존되어서 50년 뒤에는 교회들이 관광자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 순교비 앞에는 커다란 노거수가 있습니다. 노거수란 오래된 커다란 나무를 이야기 하는데요, 선정기준은 어른 가슴높이의 나무둘레가 3m, 수령이 200년 이상입니다. 순교비 앞의 노거수는 버드나무입니다. 원래 버드나무가 있는 땅은 사유지인데요, 땅 주인이 버드나무는 마을 공동의 것이라며 버드나무가 있는 땅을 남겨 놓고 울타리를 둘렀다고 해요.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는 게 즐겁습니다.

우리나라의 버드나무는 주로 왕버들, 능수버들, 수양버들이 있습니다. 버드나무 껍질에는 아스피린을 만드는 살리실산이라는 화학물질이 들어 있습니다. 아스피린으로 유명한 제약회사 바이엘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버드나무에서 살리실산을 추출하여 실험해 본 결과 우리나라의 버드나무에서 추출된 살리실산의 효능이 가장 좋았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이순신 장군이 무과 시험 중 말에서 떨어졌을 때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다리를 묶었다지요. 그 옛날 진통제가 없던 시절 아이를 낳는 산모가 입에 물었던 나뭇가지도 버드나무였답니다. 우리조상들은 버드나무 가지에 진통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리에서 가까운 전와마을에도 노거수가 있습니다. 전와마을의 노거수는 팽나무인데요, 대나무로 만든 딱총에 팽나무의 열매를 넣고 쏘면 '팽' 소리가 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팽나무라고 부른답니다. 이 팽나무는 서낭당 나무였습니다. 서낭은 마을지킴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사당을 짓기 어려운 입지조건일 때 마을 입구에 있는 커다란 나무를 서낭으로 삼아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셨습니다. 어쩌면 가난했던 전와마을도 사당을 지을 형편이 안 되어 마을입구에 있는 이 커다란 팽나무를 서낭으로 모셨을지도 모릅니다.

팽나무 곁에는 비각이 있고 비각 안에는 비석 2개가 있는데 하나는 효자비이고 하나는 열녀비입니다. 두 비석 모두 1932년에 세워졌습니다. 효자비의 주인공은 유영철입니다. 유영철은 유기호와 그의 두 번째 부인인 평양조씨의 양자입니다. 평양조씨도 족보에는 열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평양조씨는 남편이 병을 얻자 자신의 넓적다리를 구워 먹였고 덕분에 남편은 10년을 건강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병이 악화되었고 부인은 자신의 손가락을 절단하여 피를 마시게 하는 등 지극정성으로 남편 병구완을 하여 열녀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부인에게 아들이 없어서 유영철을 양자를 들였습니다. 열녀 어머니를 둔 아들답게 지극한 효자였습니다. 영철의 아내는 전주이씨였는데 아내 역시 효부여서 시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영철과 그의 아내를 하늘의 뜻으로 태어난 대효라 불렀고 이를 기념하여 나라에서는 효자각을 세우도록 하였습니다. 글은 진사 소학규가 지었습니다.

열녀비의 주인공은 남양홍씨입니다. 남양홍씨는 두 살이 어린 남편에게 시집을 왔지만 남편이 허약하여 병수발을 들어야 했습니다. 온갖 정성을 들여 병간호를 하였지만 남편을 여의고 21살에 청상이 되었습니다. 남편을 따라 죽을까도 생각하였지만 자신보다 못한 사람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그리고는 정말 열심히 일을 하여 집안 살림이 늘어가는 보람으로 살았습니다. 아들이 없어 홍근을 양자로 들였고 83세에 돌아가셨습니다. 홍씨부인이 돌아가시자 나라에 추천하여 각을 짓고 비를 세웠어요. 글은 국당 이승욱이 지었습니다.

옛날에는 효자비나 열녀비를 개인적으로 세울 수 없었습니다. 반드시 나라의 허가가 있어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조선의 정절문화는 나라에서 관리 하였다는 뜻입니다. 조선 전기에 열녀는 272명이었지만 조선 후기에는 845명이고 전기에는 단순히 개가를 거절하거나 수절만 하여도 선정될 수 있었지만 후기에는 특이한 이야기가 있어야만 선정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효자의 이야기에는 병이 난 부모님을 위해 엄동설한에 여름과일을 찾아 나섰고 열녀 이야기에는 넓적다리 살을 구워 먹이거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받아 먹인다는 이야기들이 단골로 등장하게 됩니다.

이렇게 조선 후기에 열녀의 수가 증가하는 것은 성리학의 보급으로 백성들이 교화된 것도 있지만 중앙정부의 충성강요가 여성에겐 정절을 지키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열녀로 인정되면 열녀라는 명예는 물론 세금감면과 군역의 면제라는 실질적인 혜택이 주어졌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수절과 자살하라는 압박이 가해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역시나 전와마을의 효자비와 열녀비에서도 같은 패턴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와리가 '유'씨들의 집성촌임을 생각한다면 이 또한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입니다. 노거수 역시 민속학적, 생태적 유산으로 인정되는 요즘의 추세라면 하리의 버드나무와 전와의 팽나무는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습니다. 마을을 거닐며 만나는 이야기들이 골목답사 코스와 연결될 수 있어서 행복한 요즘입니다.

<골목여행 코스>
하리교회- 순교기념비- 용전마을 버드나무- 전와마을 팽나무- 효자, 열녀비- 신와교회- 딸기랜드 체험

<전라북도 교회 순례코스>
익산 두동교회- 삼례 하리교회- 완산교회- 전주서문교회- 전동성당-  김제 금산교회
덧붙이는 글 http://blog.naver.com/wanjugun/221006482142
완주군 공식블로그에 올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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