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주름을 가진 정치인 '노무현입니다'

[리뷰] 운명적 고난, 시기와 질투에 맞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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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yital)등록 2017.06.12 16:24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자는 꼭 누군가의 질투를 받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누군가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사람에게서 진짜 '사람' 냄새가 나기에 그렇다. 영화 「노무현입니다」(이창재 감독, 2017)에는 사람 냄새 나는 대통령이 나온다. 정치 세계에서 4번의 낙선을 하며 꼴찌 후보를 벗어나지 못했던 노무현의 이야기가 주였다. 노무현은 2~3%의 지지율을 가진 채로 2002년 대선에 나갔다. 그리고 한 달 만에 대선후보 1위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노무현의 삶을 보이는 영상 중간 중간 그와 함께 했던 사람들의 인터뷰가 끼어 있었다. 인터뷰 하는 사람 중에는 노무현과 함께 일했던 사람이나, 노무현을 사랑하던 시민들이 있었다. 2002년에는 월드컵 못지않게 노무현 열풍이 불어 닥쳤는데 그 과정이 인터뷰와 영상으로 드라마처럼 소개되었다.

노무현의 곁에는 가방끈 길고, 운동권에 참여했으며, 글 잘 쓰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에 비해 노무현은 고등학교 졸업이 전부였고,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서서히 신분을 올리는 시민에 불과했다. 하지만 가방끈 긴 사람들은 다른 정치인도 아닌 노무현 곁으로 모였다. 노무현을 따르는 이유로는 그의 사람됨 때문이었다.
노무현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몸을 숙이고, 할머니의 발을 주무르고, 사람들에게 허리 굽혀 악수를 하는 대통령이었다. 그를 한 번 본 사람들은 절대 그를 잊지 못했다. 그의 말투는 사투리 억양이 있었지만 정겨웠고, 다른 대선 후보자들에 비해 주름이 많았지만 절대 일그러진 것이 아닌, 인생의 굴곡을 겪어 살아 있는 인품을 드러낸 아름다운 주름이었다.
사람들이 노무현 곁으로 모인 이유

노무현은 인생의 쓴 맛을 아는 사람들만이 찾는다는 담배를 즐겼다. 2001년 8월 13일 대선 도전을 시작으로 이인제, 한화갑 등 위세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노무현은 연설 한 방으로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얻었다. 노무현의 연설은 항상 호탕했다. 국회의원 시절 권력자들이 국민을 무시하거나, 야욕이 보일 때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호통을 치는 것처럼 속 시원한 연설들이었다.
영화는 광주 국민경선 참여 때 노무현이 1위하는 것을 보이며 점점 절정을 향해 나아갔다. 크게 슬픈 장면은 없었지만 마음속에 슬픔이 복받쳐 올랐다. 험난한 길을 걸으며 열매를 맺어가는 그의 삶이 일반 서민들의 삶과 비슷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노무현과 함께 현장에 있는 듯 가슴이 벅찼다. 실은 영화를 보기 전까지 노무현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그저 많은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던 대통령쯤으로 알았지만, 실제로는 그를 잘 모르고 있었다. 누군가를 완벽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의 모든 인생을 봐야한다는 말이 맞았다.
노무현은 색깔론과 음모론에 저항하며 '지역 분열주의를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추구하겠다'는 목표로 진정성을 국민들에게 보였다. 그리고 2003년 2월 25일 16대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이 되고서도, 아이에게 '사이다 한 잔 받아라', 악수하려는 남자에게 '제 손 오래 잡고 있지마시고 꼭 놓아야 합니다'는 둥 농담을 했고, 마을 사람들과 생일잔치 벌이거나, 직접 논을 일구며 한 나라를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었다.

기업인이든 권력자든 그를 기업가로 또 권력가로 만든 것은 돈과 권력이 아니다. 사람이다. 사람이 기업의 제품을 좋아해 사주고, 사람의 신임을 얻어야 권력가로 뽑힌다. 주위에 사람이 없으면 돈과 권력은 없다. 하지만 나와 관련 없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하는 일은 기업가나 권력자가 되는 일보다 훨씬 어렵다. 사람들은 '사람 냄새'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기분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을 찾아다니며 찾은 후에는 그 사람의 곁에 머무르려고 한다.

노무현은 모진 삶을 겪었기에 서민들의 삶을 잘 알았다. 노무현의 진실을 느껴서인지 사람들은 그를 알고 나서는 오래도록 칭송했다. 물론 노무현의 삶 역시 흠이 없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예수나 부처도 삶에는 흠이 있었다. 그 흠은 악이라기보다는 '사람'이 되기 위한 스스로의 고통이자 필연일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진정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

정치권에서는 웬일인지 노무현의 존재를 두려워했다. 많은 국민들이 노무현을 중심으로 뭉치고 단결하는 것을 보며, 일부 정치인들은 자신들을 봐줄 국민이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무서워했다. 그들은 노무현보다 지식이 많았지만 국민들은 그들을 존경하지 않았다. 이성이 부족하고, 공감하는 가슴이 적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정치인들은 단순한 생존과 욕구에 끌려 다니며 노무현을 이방인으로 취급하기에 이르렀다. 권력 욕심과 우러름을 받고 싶은 마음이 국민과 친구가 되려는 마음보다 커진 것이다.
그런 정치인들은 노무현의 인격이 자신들과 너무 차이가 남을 알았지만 차마 그 인격을 본받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권력을 포기하기도 어려워 계속해서 언론을 통해 노무현을 모함했다. 누군가가 싫다고 해하고 괴롭히는 건 가장 단순한 괴롭힘 수법이다. 사람이 덜 된 것이다. 그런 정치인들이 존재하였기에 상대적으로 노무현이 큰 사람으로 느껴진 것도 있었다.
그 당시 우리들의 시야는 크지 못했다. 노무현은 지속적으로 권력자들의 시기를 받고 있었다. 그러면서 탄핵을 당했다가, 검찰 출두를 받았다가, 모욕을 당하기를 반복하며 수모를 겪었다. 노무현은 자신이 고통 받는 것은 잘 참았다. 그러나 지인들이 자신 때문에 힘들어 하는 걸 보는 건 괴로워했다. 노무현은 이 사태를 끝내고 싶었는지 2009년 5월 23일 한 몸을 바치고 말았다. 큰 사람이 죽었다. 진짜 사람이 죽었다.
노무현이 서거하던 날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가족이 죽었을 때보다 더 오래 운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정말 큰 사람을 담을 수 있는 시대는 정해져 있나'라고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우리 국민의 그릇이 크지 못하여 노무현을 담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큰 그릇을 가진 사람들의 시대는 없다. 큰 사람이 생겨야 그 속에서 우리의 인품도 커지게 된다. 노무현은 정말 정신없이 살았다. 정치권에서 운명적인 고난을 겪었고 마침내 스스로 만족하던 큰 사람으로서 살던 중 자신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몸을 내던졌다.
단 2시간 만에 노무현의 사람됨을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세상 살며 한 인간으로써 '사람'이 되어본 인간이 몇이나 될까. 국민을 화합으로 단결시키려 한 노무현을, 신이 되고 싶었던 이들이 두려워했음을 우리들은 알았어야 했다. 특정 순간이 지나야만 그 순간이 보이듯 이제야 우리는 지난 순간을 돌아보며 아쉬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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