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청산과 문재인 정부

-관료제 개혁 없이 신 정부 성공 없다.

검토 완료

이재선(paulus98)등록 2017.06.22 11:25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적폐청산을 둘러싸고, 청산의 대상과 방식에 대해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 가운데 최순실의 국정 농단, 문체부 블랙리스트 등은 이미 법의 준엄한 심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이 적폐라고 생각하면서도 청산과 처벌이 쉽지 않은 것이 MB정권의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 비리다.

특히 자원외교 비리는, MB정권 5년간 80개 사업에 31조 6천억원이 투입되어,  4대강의 22조를 훨씬 능가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석유공사 16조 5천억,가스공사 10조, 광물자원공사 4조, 한전과 발전자회사 1조 6천억 등을 집행했다.

이 중 2014년 말 기준으로도 약 4조원 가량의 손실이 난 것으로 추정되고, 그 이후로도 해외 자원개발을 위해 에너지 공기업이 조달한 자금의 금융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MB정권이 끝나자, 박근혜 정부는 자원비리에 대해 대대적 수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많은 국민들을 실망시켰다.

엄청난 혈세가 해외로 헛되이 빠져 나갔음에도, 2014년 검찰 수사에서 기소된 사람은 겨우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 김신종 전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장 등 3명인데, 이마저도 김신종 사장은 1심, 강영원 사장은 1,2심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따라서 자원외교비리와 관련하여 실제로 처벌받은 사람은 사실상 없는 것이다.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일까?

자원개발이 갖고 있는 매우 복잡다기한 성격과 그 대상지가 대부분 해외라는 점에서,시시비비를 가린다는 점은 사실 쉬운 것이 아니다.(필자는 한동안은 자원분야에 종사한 적이 있다.  그래서 자원사업이 얼마나 복잡한지 잘 알고 있다.)

공기업은 공무원 조직과 유사한 듯 하면서도, 사업을 진행하는 사기업적 성격이 있어서, 항시 이권에 노출되어 있다.

과거에는 몇몇 공기업이 3대 복마전 4대 복마전 등등의 오명을 듣기도 했고, 일부 직원들이 비리혐의로  매스컴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그로 인해 최근 공기업들은 철저한 내부 결제 프로세스와  감사시스템을 정비하여, 이제는 그 집행과정의 절차적 투명성이  공무원 조직을 능가할 뿐더러, 의사결정과 집행과정에서의 오류는 거의 찾아내기 힘들 만큼 정교하다.

즉 사업의 최종 결과야 어찌되었든 ,절차적 과정의 무결점, 무오류가 공기업의 가장 큰 특징이다.

MB정권은 바로 이러한 관료제 시스템을 선택한 것이다.

관료제 이야기가 나왔다.

먼저 역사적으로 관료제가 얼마나 강고한 시스템인지 알아보자.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관료제가 갖는 의미를 간략히 살펴보고 난 후, 문재인 정부가 직면한 관료제 문제를 검토해보자.

영국의 유명한 문명사학자 토인비는 그의 위대한 저서 [역사의 연구]에서, 한국에 관한 독자적 내용을 전혀 다루고 있지 않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토인비는 왕조가  500년씩 지속된 조선사회에 대해 정체되고, 활력이 상실된 사회라는 시각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을 기술한 내용을 보면, 두 사회의  역동성에 많은 내용을 할애하고 있다. 왜 이러한 견해를 지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조선에 관한 판단은 명백히 오류다.

조선왕조가  500년을 지속한 것은, 활력이 없거나 정체된 것이 주된 이유가 아니라, 그만큼 정교한 국가유지 시스템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활력이나 동력이 없는 사회였다면, 두 차례에 걸친 군부 쿠테타(중종반정,인조반정)로 왕을 교체할 수가 없었고, 두차례에 걸친 대전란(임진왜란,병자호란) 에서 왕조가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조선왕조 국가시스템 즉 관료제가 얼마나 정교했는가는 1575년의 이조전랑(吏曹銓郞) 사태로 잘 알 수있다.

주지하다시피 이조전랑은 조선시대 18품계 관직에서, 정5-6품계의 낭관직이다. 정3품 이상을 당상관, 이하를 당하관이라고 하니,  이조전랑은 중앙부서의 하위관직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조전랑이 중앙부서 인사추천권을 행사하는 막강한 자리였다는 것이다.

왜 이조전랑에게 그러한 권한을 부여했는가는 차치하고라도, 봉건국가가 중앙부서 하위 관직에게 막강한 인사추천권을 갖게 하는 시스템을 갖추었다는 자체가 우수한 관료제를 대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가 실질적으로 인사추천권을 행사하였기에, 권력자들이 그 자리에 자신의 심복을 심으려는 엄청난 암투가 벌어지고, 당대의 실력자인 심의겸, 김효원의 다툼으로 마침내 동인과 서인이라는 붕당이 나오게 된다.

오늘날 청와대의 인사수석비서관실이 중앙부처 1-3급 상당의 고위공무원들로 이루어진 것을 감안한다면, 조선의 관료시스템이 얼마나 잘 정비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중국의 경우 당 태종 이세민이, 형이자 세자인 이건민을 죽이고 집권하면서도 통치를 자신한 것이, 관료시스템에 의한 통치 조직이 정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세민은 이것을 "천하의 인재가 내 손아귀에 있다"라고 표현했다.

즉 수나라 이래 정착된 과거제를 통한 관료의 충원과, 그 시스템을 통한 국가 통치가 가능한 제도가 존재했기에, 왕위 계승 서열을 파괴한 정통성의 결여에도, 이세민이 집권하고 당 왕조는 계속 이어진 것이다.

당이 완성한 3성6부제의 관료시스템이 얼마나 우수한가는, 18세기 유럽의 계몽시기에, 프랑스 당대 최고의 지성 볼테르와 저명한 경제학자 케네의 극찬으로 알 수 있다.

볼테르는 과거제에 기반한 중국의 관료시스템을 유럽의 앙시앙레짐 즉 구 체제를 대체할 수 있는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했고, 케네 역시 중국식 정치,경제시스템을 모델로 삼자고 주장하였다.

이제 현실의 얘기로 돌아가 보자.

근대적 의미의 관료제를 이해하고 그 장점을 잘 설파한 학자는 막스 베버다.

베버는 관료제야 말로 근대성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말했다.

베버는 관료제를 "가장 합리적이며 효율적인 조직의 형태"라고 특징지운다.

이 말이 관료제의 장점일 것이다.

그러나 베버가 말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형태의 조직은, 역으로 사회발전에서 요구되는 창의와 능력을 죽이는 단점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막스베버 자신도 관료제의 이러한 한계를 인식해서 Iron cage 철밥통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다.

한 국가가 쇠퇴할 때 반드시 선행되는 것이 관료사회의 부패이다.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문체부의 블랙리스트는 관료제의 가장 약한 고리인 인사권과 관료사회의 복지부동을 극단으로 악용한 생생한 사례다.

사인에 의한 공직 임용, 인권침해적 블랙리스트라는 봉건적 요소가, 현대의 관료시스템을 무너뜨린 것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인사권을 무기로 관료사회를 강압적으로 몰아세운 몰지각한 세력이 있고, 그 시류에 편승한 일부 관료들 때문이다.

반면에 MB정부의 해외자원개발은 인사권을 통한 관료시스템의 근대적 합리성을 최대한 이용한 사례다.

전문화,분업화,위계화,그리고 문서화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 관료시스템이 오작동된 것이다.

MB자원외교에 동원된 에너지 공기업들의 기관장 인사권은 정부가 쥐고 있다.

직원 인사권은 기관장이 행사한다.

이러한 점을 이용하여, MB 정부는 에너지공기업의 관료시스템을 총동원해서 막대한 혈세를 자원외교라는 명분으로 해외에 쏟아부은 것이다.

동원된 에너지 공기업들의 관료시스템은, 결과는 도외시한채, 모든 역량을 기울여 절차적 정당성 확보, 책임 분산 및 철저한 문서화를 통해 순치된 도구로의 역할을 수행한다.

검찰 수사가 전진할 수 없던 이유는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해외자원 외교의 목표는 MB정부 차원에서 설정한 것이다.

에너지 공기업들은 정부가 제시한 목표를 수행하기 위한 절차를, 공공기관 운영 규정대로 수행하고 그 과정을 철저하게, 분업화, 전문화, 문서화시킨다.

그럼으로 검찰은 도대체 누구에게 어느 정도의 책임을 물어야 할지 알 수가 없고, 설령 심증은 간다고 해도 법적으로는 추궁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석유공사가 진행한 하베스트 건이다.

당시 신문보도를 보면

새정치연합 '엠비(MB)정부 국부유출 자원외교 진상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 노영민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하베스트의 정유회사인 '날'이 미국계 상업은행인 실버레인지에 사실상 200억 안팎으로 매각된다"고 말했다. 석유공사는 2009년 매입 당시 1조1000억원에 '날'을 인수했으며, 이어 5년 동안 인수 후 추가 시설 투자에 4763억원, 운영비 손실 5830억원 등 총 1조56억원의 추가 손실이 발생했다. 이번 매각대금은 인수금액 기준으로는 2%, 투자 기준으로는 1% 수준의 가격에 팔리는 셈이다.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매각 과정에서 석유공사는 '날'이 보유한 땅(191만4천㎡, 58만평)과 기존 시설물에 대한 가치가 0원으로 평가됐다고 노 위원장은 전했다........... 또 '날'의 부채 6억6000만달러(약 7233억원)도 떠안기로 했다고 새정치연합은 밝혔다. 노 위원장은 "매입 이후에도 4억달러 이상의 투자를 추가한 시설물에 대한 가치가 고철덩어리보다 못하다는 것을 매각•매입 양쪽이 인정했다는 것으로, 충격적"이라고 비판했다.(한겨레,2015,9,18일자)

게다가 여기에 수상스런 자문계약도 끼어든다.

MB가신으로 불리는 김백준 총무비서관의 아들이 팀장으로 근무한 메릴린치가, 자문계약을 통해 수십억에 이르는 막대한 자문수수료를 가져간 것이다.(2015년, 3월 12일자 뉴스타파)

석유공사는 정부의 에너지자주개발율 시책을 맞추기 위해 절차를 밟는다.

이사회를 소집해서, 이사들의 의결을 구하고(책임의 분산 및 절차의 정당화), 메릴린치라는 유명한 자문회사에게 투자자문을 의뢰하고, 그 보고서를 바탕으로 투자를 집행한다.

과연 여기에서 누구에게 투자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정부?
에너지 빈국이라 에너지자원 자주개발 차원에서 한 것이다.

석유공사?
공기업임으로 정부의 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정당한 자문을 통해 집행을 한 것이다.

메릴린치?
자문의뢰를 받아서, 자문을 대행해 주고 계약에 따른 수수료를 받은 것뿐이다.

참으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현대 사회는 관료제 사회이다.

국가든 사회든 관료시스템이 구조를 지탱하고 있다.

대규모 주식회사의 경우 엄연히 수많은 소액 주주가 있음에도, 경영은 인사권을 쥔 소수의 대주주와 그들을 보좌하는 공채 관료집단이 떠받치고 있다.

미국 GE의 전설 잭 웰치도 그러한 관료시스템을 통해 성공을 거둔 대표적 경영자다.
그는 창업자도 아니고, 대주주도 아니었다.

현대 국가의 군사조직은 관료시스템이 가장 극대화된 조직이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분업화, 전문화, 서열화, 철저한 문서화의 시스템으로 이루어 져 있다.

따라서 천안함 침몰, 비무장지대 목함지뢰 사건, 북한 무인기의 남한 월경 및 군사시설 촬영 같은, 적과 대치중인 군조직에서는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 일어나도, 누가 책임을 졌다는 기사는 거의 없다.

사드배치도 한 예이다.

사기업에서 대표이사 승인 없이 물품이나 용역을 거래할 수는 없다.
그럴 경우, 사문서 위조나 사기에 해당하는 중범죄가 된다.

그런데 정교한 관료시스템을 지닌 대한민국에서, 사드라는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무기가, 현직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속에서, 그리고 엄청난 논란 속에 배치되었는데, 누가 언제 어디서 그러한 결정을 내렸는지가 아직도 밝혀지고 있지 않고 있다.

물론 끝까지 추적한다면야 최종 결정권자나 그룹이 밝혀지겠지만, 한미간의 문제, 전직 대통령의 구속이라는 사안이 뒤엉켜서 그러한 조사를 하기가 쉽지가 않다.

광범위한 책임의 분산, 수많은 절차 뒤에 모두가 숨어 버린 것이다.

관료 시스템의 도움없이 국가를 유지하고 통치해 나갈 수는 없다.

관료시스템은 현대국가 조직의 시작이자 끝이다.

선거에서 아무리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도, 관료시스템이 인사권자에게 무언으로 저항하면서 엎드려 있으면, 그 정권은 무능력하게 시간만 보내다가 끝나고 만다.

선출된 권력이, 개방직 공무원제도를 도입하고, 공공기관장을 임명하는 것은 이러한 관료시스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방책이다.

그리고 어공,늘공이라는 단어가 버젓이 나오는 것은 막강한 관료시스템이, 선출된 권력의 한계를 비웃는 것이자, 선출된 권력과 관료사회 사이의 불신을 보여주는 단어다.

국민의 여망 속에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시민의 자유가 부정되고, 사인이 공직임명에 개입하고, 권력이 사기업 재산을 강탈하는  황당한
봉건질서가 그동안 국민의 가슴을 짓눌렀다.

지난 보수정권 9년을 통해 망가진 시민사회 시스템 – 언론 출판의 자유, 사회 정의, 보편적 복지의 제도화 –을 다시 복구하고, 촛불의 여망이 이루어 지려면 , 반드시 현재의 관료시스템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이 동반되어야 한다.

적폐청산이 첫걸음이다.

그 속에 한국 관료시스템의 "복지부동,면종복배, 기회주의"라는 민낯이 모두 들어 있다.

"정의를 아끼면 불법이 자란다 Sparing justice feeds iniquity"
-세익스피어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이재선은 국회정책연구위원과 에너지공기업 감사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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