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젓과 추억

젓갈을 담는 것은 쉬워졌지만 추억의 냄새는 사라지고 있다.

검토 완료

이경모(lgmo)등록 2017.07.12 11:33

생멸치 위에 소금을 두껍께 덮고 밀봉한 젓갈 통 ⓒ 이경모


항아리 대신 멸치젓을 담근 프라스틱 통 ⓒ 이경모


"아주머니 김치 한 접시만 더 주세요."
요즘 우리 식당에서는 겉절이배추김치가 인기다.
맛에 비결은 단맛이 나는 배추와 양념이다.
양념 중에 소금 고추 새우젓 멸치젓을 최상품으로 쓴다.

며칠 전.
매니저가 멸치젓을 담그자고 했다.
직접 젓갈을 담그면 맛은 있겠지만 어릴 적에 추억을 더듬어 보면 젓갈 담는 것이 번거롭고 비린내가 심해서 처음에는 망설였다.
"사장님 비린내 안 나죠?"
시장 보러 갔다 오는 나한테 매니저가 하는 말이다.

멸치젓 담는 작업이 끝났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생멸치에 천일염을 고루 섞여 담아 놓은 것을 주문해서 받아 창고에 보관한 것이다.
3개월 숙성시켜 육젓을 만들어 양념으로 쓰려고 한다.
참 편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적에 시골에서 멸치젓 담는 날은 요란하다.
비린내가 집안 가득 찬다.
그래도 나에게는 기다려지는 날이다.

생멸치를 몇 마리 손질해서 조림을 해먹으면 별미였다.
또 어머니가 나무상자에 담겨져 있는 멸치를 물로 깨끗이 씻고 소쿠리에 건져 물기를 뺀 다음 천일염을 고루 섞고 항아리에 꼭꼭 눌러 담을 때까지 쪼그리고 앉아 기다린다.
그 상자는 나에게 큰 선물이다.

여름 땡볕에 비린내를 맡으며 며칠 동안 나무상자를 말린다.
아무리 말려도 비린내는 가시지 않지만 나무상자가 마르면 우선 상자를 가지런히 분해한다.
그 상자에서 나오는 못 하나도 소중하게 모은다.

지금은 철물점에서 못 한주먹에 500원 정도 받으니까 정말 싸지만 그때는 못 자체가 귀한 시대여서 구부러진 못도 펴서 사용했다.

준비가 다 되면 작업시작.
작업은 토끼집을 만드는 것이다.
어린 목수의 서툰 손끝에서 만든 집이 튼튼하지는 않았지만 1년은 토끼를 키울 만하다.
키운 토끼를 시장에 팔기도 했던 아련한 생각이 떠오른다.

지금도 젓갈은 김치와 더불어 한국음식 가운데 매우 뛰어난 저장 발효식품이다.
새우젓·멸치젓·조기젓 등은 김장할 때 주로 쓰고, 창난젓·어리굴젓·조개젓 등 나머지는 고춧가루, 마늘 다진 것 등 양념에 무쳐 밥반찬으로 쓴다.

어리굴젓·게젓·새우젓·조기젓·밴댕이젓·꼴뚜기젓·멸치젓·연어알젓·명란젓·어리굴젓·조개젓·창난젓·방게젓 등 매우 다양한 종류의 젓갈이 개발되면서 젓갈 문화는 발달하지만 백화점이나 시장에 가면 언제든지 젓갈을 구입할 수 있어 젓갈을 담는 추억은 사라지고 있다.

액젓은 봄 멸치로 담는데, 살이 부드러워 발효와 함께 액체 상태가 된다.
주로 2월 중순부터 5월까지 잡는 멸치를 사용하는데, 새우를 많이 먹고 알을 밴 상태의 3~4월 멸치가 맛있는 젓갈이 된다.

육젓은 육질이 단단한 가을 멸치(추젓)를 쓰는데, 제대로 다 자란 탓에 몸집이 크고 굵다. 그래서 대멸이라고 하며 주로 3개월 정도 숙성시켜 밥반찬이나 김치 담는데 갈아서 사용된다.멸치젓의 기본은 멸치와 소금의 절묘한 배합에 있다. 소금간이 싱거우면 꼬리하고 역한 냄새가 나고, 소금간이 짜면 멸치젓이 가지는 구수한 냄새와 깊은 맛이 없어진다.

곰삭은 냄새가 창고에 가득 찬 멸치젓으로 담근 김치가 맛있어 손님들이
"여기 김치 추가요."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으면 좋겠다.
100리터 통 세 개에서 맛있게 익어가는 3개월을 기다리고 있다.

덧붙이는 글 월간잡지 첨단정보라인 8월호에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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