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강사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그대에게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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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진(rusia1020)등록 2017.07.28 15:34
학교 비정규직 강사들의 정규직화 요구와 관련하여 교대생들이 입장문을 발표하고 거리로 나섰다. 영전강과 스포츠 강사로 대표되는 비정규직 강사 제도가 교육의 질을 저해하고 교대와 임용고시라는 기존의 교사 선발 체제를 위협한다는 주장이었다. 교대련과 교육공무직본부의 간담회를 정리한 카드 뉴스에는 '왜 교대생들이 강사직종들의 상황까지 살펴야하냐'며 '다 잘라버리고 미발령 인원부터 처리해야한다'는 날선 비난들이 댓글로 달렸다.

이와 같은 반응들은 그간 최소한의 고용안정을 보장해달라는 강사들의 주장에 '임고나 보라'거나 '비정규직인거 알고 들어갔으면서 날로 먹으려든다'는 댓글들과 크게 결을 달리 하지 않았다. 이미 수년간 수업을 해온 이들을 무능력자로 매도하거나, '교장 빽으로 들어와 정교사 TO 갉아먹는 정유라'로 부르는 취급에 비하면 이는 상대적으로 점잖아 보이기도 한다.

이들의 거침없는 비난의 중심에는 교대와 임용고시로 연결된 일련의 선발과정에 대한 맹신과 그 치열한 경쟁에서 조금도 밀려서는 안 된다는 불안감이 깔려있다. 예비교사들의 절박감에는 현재의 임용고시가 교육 전문성을 증명하는 시험이 아니라 무한 경쟁을 통해 소수의 사람만을 선발하는 시험이라는 사실, 그리고 다수의 임고생들이 결국 임용고시에서 탈락하게 된다는 현실에 대한 인식은 들어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이 상황을 지켜보며 내가 놀랐던 점은 교대, 사대가 '실업자 양성소'라는 소리를 듣는 오늘날까지도 집단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던 예비교사들이 학교 내 비정규직들의 요구에 섬뜩하리만치 성마른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교대, 사범대를 졸업해 정교사 자격증을 취득하고도 턱없이 부족한 TO로 인해 많은 예비교사들이 교실이 아닌 독서실과 학원을 전전해야하고, 높은 경쟁률로 인해 임용고시가 한 줄 세우기식 경쟁에서 승리하는 극소수의 사람을 선발하는 시험이 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왜 그들은 자신들이 선생이 되는 것을 가로막는 '임용고시'를 옹호하며, 그 시험을 이유로 비정규직 강사들의 고용안정과 처우 개선 요구를 비난하는걸까. 그들의 '절박함'은 왜 자신들을 약자의 위치에 서게 한 체제가 아닌, 또 다른 약자를 끌어내리는 방향으로만 작동하는 걸까.

오찬호,<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개마고원) ⓒ 윤혜진


사회학자 오찬호는 2013년에 출간된 책,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를 통해 체제의 피해자인 동시에 자신을 억압하는 체제를 고스란히 재생산하는 가해자인 청년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파헤쳤다. 대입경쟁을 거치면서 경쟁과 위계를 내면화 한 청년들은 대학 서열뿐만 아니라 학과별로, 입학 전형별로 그들 안에서 더 촘촘한 계단을 만들어 위아래를 구분 짓는다. 수능 점수가 한 개인의 능력을 나타내는 유일한 지표라고 믿는 이들에게 대학의 서열로 사람을 평가하고 구분 짓는 일은 불합리한 편견이 아닌 '객관적 판단'이다.

절대다수의 청년들이 발 디딛고 서있기 힘들만큼 세분화된 위계에 짓눌리고 편견에 근거한 저평가로 차별 받는 입장이지만, 내 아래에는 나보다 더 열악한 이들이 있기에 '절대 저렇게 되지는 않겠다'고 마음을 다지며 애써 나와 그다지 다를 것 없는 타인의 고통과 선을 긋는다.

저자는 이러한 경향의 기반에는 자기계발담론이 있다고 분석한다. 사회적으로 해결해야할 문제들의 하중을 모두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힘들어도 한 계단이라도 더 올라가려면 죽을 때까지 노력해야한다는 것이 그 내용의 핵심이다. 10명 중 1명만 정규직이 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왜 한 명만 정규직이 되어야하냐고 질문하기 보단 그 한명이 내가 될 수 있다는 희미한 희망을 가지고 노력하라는 것이다.

철저하게 파편화된 개인으로 경쟁을 치루는 과정이 괴로우면 괴로울수록, 그 괴로움의 강도는 더 노력해야하는 증거이자 연료로 작용해 끊임없는 시간관리와 스펙 쌓기에 몰두하게 한다. 자기계발담론의 문제점은 그 노력에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질 수 없는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을 계속해서 스스로 더 절박한 상황으로 몰아가는 미로에 갇히게 한다는데 있다.

수능을 잘 보지 못해서, 명문대 학생이 아니어서, 정규직이 아니어서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열등감에 시달리지만, 그 열등감은 나보다 더 밑에 있는 이를 멸시하는 것을 통해 상쇄된다. 이 담론 속에서 비정규직은 무능력과 노력 부족의 결과가 되기 때문에 연대해야할 사회적 약자가 아닌, 멸시하고 더 올라오지 못하도록 짓밟아야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나도 비정규직일 수 있다는 불안을 드러내면 자신을 끊임없이 노력하게 했던 '정규직의 미래'를 스스로 의심하게 되기 때문에 청년들은 취업난으로 인한 불안에 신음하면서도 자신들의 미래일 수 있는 비정규직들의 정규직 전환 요구에 '날로 정규직 되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라는 말을 당당하게 내뱉는다. 그 당당함의 근거는 다시 자기계발담론으로 돌아와 '내가 지금까지 정규직이 되기 위해 했던 노력'이며, 비정규직은 나만큼 노력하지 않은 무능력한 사람이라는 확신이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자신들을 실업자로 만들고 있는 이 체제와 위계의 정당성에 대한 질문은 지워진다.

이는 결코 청년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의 청년들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괴물이 아니듯 이 사회에서 나고 자랐으며 다른 세대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했다. 이들은 위계주의와 자기계발담론, 능력주의에 따른 사회적 편견이 만연한 경쟁 사회 속에서 '사회화'되었을 뿐이다. 모든 책임과 비용을 개인에게 돌리고, 필기시험만이 능력을 증명하는 가장 공정한 시험이라 굳게 믿으며 그 시험결과에 따라 인간이 누려야 할 권리가 구분되어야한다고 믿는 청년들은 다른 세대들과 과연 얼마나 다를까.

사회적 위계로 인해 저평가받는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하고 절대 나처럼은 살지 말라고, 너라도 저 좁은 문을 통과하라고 이들을 경기장으로 몰아넣고, '사람이 먼저 돼야 한다'는 말보다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더 많이 하게 된 어른들, 명문대를 나오지 않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명문대에 들어갈 기회의 평등을 요구한 어른들의 얼굴은 지금 청년들의 모습과 얼마나 다른가.

저자가 그린 청년세대의 모습은 이 사회의 거울일 뿐이며, 그 거울에 비친 지치고 불안하지만 동시에 그악스러운 얼굴은 다른 사회 구성원들의 얼굴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 얼굴들은 앞으로 청년이 될 청소년들이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제는 성인이 된 청년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을 분노케 한 그 절박함은 어떤 절박함이냐고. 힘든 입시 경쟁을 뚫고 교대, 사대에 들어와 4년 동안 교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해왔는데 교실 문턱은커녕 교문에조차 들어서지 못한 불안과 박탈감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나 또한 그랬고, 현재 학교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수많은 강사들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왜 당신들의 그 절박함과 분노는 교원 양성과정을 거친 당신들을 선생으로 일하지 못하게 하는 정부를 향한 것이 아니라, 당신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열악한 환경에 있는 비정규직 강사를 향해서만 작동하는가? 교육 예산을 늘릴 계획도, 학급당 인원수를 줄일 계획도 없이 교대, 사대를 방치하고 비정규직 교원을 양성한 정부에게 속은 당신들은 왜 사기를 친 정부가 아닌, 같이 사기를 당한 피해자를 비난하고 있는가?

저자가 책의 말미에 권한 바와 같이 청년들이 자기계발 신화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섣부른 긍정과 희망을 갖기 전에 현실의 공정성에 대해 돌이켜봐야 한다. 현재와 같은 경쟁 상황 속에서 임용고시는 기회의 균등도, 과정의 공정성도 보장하지 못한다. 다수의 예비교사들이 임용고시를 통과하지 않는 이상 비정규직으로 살아야하는 현실은 결과의 평등도 보장하지 못한다. 더 나아가 무한한 경쟁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 훌륭한 교사임을 증명해주지 않을뿐더러, 다른 사회적 약자를 멸시하고 그들의 처우개선 요구를 조롱할 권리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취준생들의 반대여론에 기대 주춤하는 사이, 청년들이 정규직이 될 확률도 함께 줄어든다. 효율적인 예산 활용을 빌미로 무책임하게 비정규직 강사를 도입한 정부가 이에 따른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을 때, 교대, 사대생들이 또 다시 정부의 기만적인 비정규직 양산 정책에 휘말릴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더 잔인한 현실은 과거와 같이 오늘도, 또 미래에도 다수의 교대, 사대생들은 개개인의 노력과 상관없이 임용고시에 탈락했다는 이유로 교사가 될 수 없고,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고용안정과 복지혜택을 누릴 수 없을 거란 현실이다. 그리고 그 암울한 풍경을 만드는데 그들 스스로가 일조하고 있는 현실이다.

사회와 분리돼 혼자만의 노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개인은 없다. '절박함'을 이유로 모두가 시야를 좁힌 것에 대한 사회적 비용을 우리는 오늘날의 청년세대가 겪는 현실을 통해 치르고 있다. 다시금 청년세대를 괴물로 만드는 그 '절박함'이 과연 청년들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것인지 질문해봐야 할 때이다. 나의 절박함을 이유로 타인을 '잘라내고 내가 그 자리에 들어가야된다'고 말하는 그 모습이 과연 우리가 아이들에게 하고자하는 교육과 닮아있는지는 차치한다하더라도 말이다.

*필자는 올해 2월까지 근무하던 의정부여자중학교에서 내부 감사를 요청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했다(관련 기사 :  의정부여중 학생들 "우리 영어 선생님 돌려주세요"). 해고 이후 복직을 위한 법적투쟁을 이어가면서 학교 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며 만난 책과 사람을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글을 적는다(관련 기사: 혁신학교에서 비정규직으로 살아가기, 그리고 내몰리기 / 노동을 지워버린 '교육'이란 텅 빈 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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