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만기 출소자의 환영식

아직도 끝나지 않은 내란 음모 조작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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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봉춘(cusdamato)등록 2017.08.29 08:26

씁쓸한 그 날의 기억 '이상호 석방환영모임'에 온 강필상씨가 2013년 8월 27일 저녁을 이야기하며 술 잔을 내려놓고 있다. ⓒ 강봉춘


"내가 분명히 기억하는데 그 때 그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있잖아. 원세훈이랑 김용판까지 뒤집고 난리 났었지. 그 날 동지들과 작정하고 내가 여기 팔달산 앞에서 그 걸 주제로 자유발언대를 열었거든. 근데 시민들의 참여가 너무 좋은 거야. 그래서 기분이 너무 좋아서 끝나고 한 잔하고 있었지."

강필상씨는 2013년 8월 27일, 이상호씨가 국정원에게 잡혀갈 당시,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시민사회활동을 하고 있었다.

" 전화가 온 줄도 몰랐어. 취해서 전화를 걸어 보니 형 여기 난리났어요. 난 그때야 안거지."

국정원은 수사권을 가지고 있었다. 특이했던 것은 이상호씨 집에 수색영장을 가지고 요원들이 오기가 무섭게 언론사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필상씨보다 먼저 도착했다는 것이다.

"뭔 기자들이 그렇게 많이 왔는지 참. 내가 그 때 한 기자랑 다툼이 있었어. 아무곳 아무나 막 찍어대길레 찍지 말라고 소리쳤었거든."

"그 놈들, 늘 하던 버릇대로, 국면 전환용으로 이용하려고 했던게지."

두 분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4년 만기 출소한 이상호씨와 부인 윤소영씨가 동료들의 축하 꽃다발을 받고 서 있다. 윤소영씨의 표정에 만감이 교차한다. ⓒ 강봉춘


그렇게 내란음모 조작사건으로 4년형을 받았던 이상호씨가 지난 8월 27일 만기 복역하고 출소했다. 수원 팔달문 안동 삼황 삼계탕집에서는 그의 석방환영식이 열렸다. 함께한 동료들과 이웃들, 가족들이 대거 함께 했다. 축하 공연과 축하 인사가 이어졌다.

" 얼떨떨합니다. 4년간 독방에 있었던지라 누가 면회를 오지 않으면 말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늘 그 때 2년 치 말을 다 한 거 같습니다. 목이 쉬었어요. "

흰머리가 제법 쌓인, 깡마른 체격의 출소자는 무척 맑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 구속의 패닉은 얼마가지 않았습니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내가 알던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가 상실되는 것이었습니다. "

삼계탕 집을 꽉 채운 동료와 이웃과 친구들은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 그러나 사실 저는 감동과 기쁨을 느끼는 시간들이 계속 되었습니다. 동지들 덕분에 상실감을 느낄 새가 없었어요. 알지도 못했던 어르신들과 친구들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하루하루가 학습의 연속이었습니다. 감옥에 있던 내가 밖에서 당을 탄압하는 총알을 맞고 있는 동지들의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감동이 컸는지 모릅니다. "

슬픔과 기쁨이 함께 있는 듯한 보라색깔의 통합진보당은 대법원 판결을 받기도 전에 헌법재판소에 의해 강제해산당했다. 이번 국정농단이 밝혀지며 통합진보당 해산과정에서 김기춘씨의 개입이 있었음이 밝혀졌음에도 그들의 명예와 상처는 여전히 복구되지 않았다.

이제 제 자리로 돌아갑니다! 4년 만기 출소한 이상호씨가 석방환영대회에서 함께 한 동지들에게 소감과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다. ⓒ 강봉춘


" 내가 갇혀있었기에 더 잘보였을지도 모릅니다. 목사님,신부님,스님들께서 저에게 힘을 주셔서 제가 오늘 이렇게 다시 나올 수 있었나봅니다. 여기에, 또 이자리에 안계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목에 꽃다발을 걸고 선, 밝은 표정을 띤 양심수는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이야기했다.

" 저의 자리로 돌아와 다시 살겠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받은 사랑을 돌려주며 살아야죠. 그리고 아직 남아 있는 양심수들의 석방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

뜨거운 박수가 흘러 나왔다. 그리고 누구보다 가장 힘들었을, 가장 가까운 사람 부인 윤소영씨의 말씀이 이어졌다.

그러나 기뻐하리라 환영대회를 마친 이상호씨 부인 윤서영씨가 깊은 눈으로, 함께 한 이웃들을 바라보고 있다. ⓒ 강봉춘


" 이심전심이라고, 제가 할 말 남편이 다해준거 같아요. 저도 바깥에서 많이 배웠어요. 제가 소설을 봐도 영화를 봐도 공감을 잘 못하는 하자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남편이 없는 동안 내이웃과 친구들이 보내온 마음 하나하나가 그제야 느껴지는 거에요. 제가 남편보다 더 큰 사랑을 받은 시간이었습니다. "

꽃다발을 안은 양심수의 부인은 촉촉한 눈빛에 웃음을 잃지 않고 말을 이었다.

" 아이들도 덕분에 빨리 철들었어요. 다들 그 힘든 시간을, 값진 선물의 시간으로 바꾸려고 했어요. 그런데 어쩌죠? 제가 가끔 남편없는 사람이 봐달라고 핑계대고 다녔는데 이젠 핑계댈 게 없네요. "

단발머리 짙은 눈썹의 윤소영씨는 듣는 이들의 눈물과 콧물이 섞여가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이야기를 더했다.

" 제가 하나, 여러분들께 일러주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서울구치소에 있을 때는 매일 면회갔거든요. 대구 구치소로 간 뒤로는 매주 갔어요. 대구를 100번은 넘게 간 거 같아요. 근데 제가 마지막 13주를 남겨놓고 매일 편지쓰겠다는 약속을 했다가 그만 못지켰어요. 그랬더니 남편이 저더러 호적을 파래요.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자긴 이제 대구 오빠로 남겠다고. "

함께 한 사람들과 이상호씨의 웃음이 함께 터졌다.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다 이상호씨 수감 후 힘들어 하던 가족을 곁에서 지켜본 지인들이 모여 지난 시간들을 얘기하고 있다. ⓒ 강봉춘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테이블에 앉은 이웃들을 찾아갔다.

" 저는 소영씨(이상호씨 아내분)과 함께 영화동 지역아동센터에서 일했어요. 누가 이런 일이 벌어질지 상상이나 했겠어요? 소영씨 딸이 악몽을 자주 꿨어요. 누가 감시했던 거에요. 무서운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어요. 어느날은 물건이 없어지고, 전화기 녹취당하는 것도 기본이고, 언제는 누가 차에다 빨갱이라고 낙서를 하고 갔다니까요. "

국정원의 내란음모조작을 꼼꼼히 지켜본 이웃인 한국녀씨는 알고 있는 내용을 소상히 전했다.

"죄가 그 뭐라고? 폭탄을 만들어 KT를 폭파시키겠다고 했다고? 하이고.. 남자들 툭하면 국회폭파시켜야한다 이런말 하는구만 그럼 그 사람들 다 내란음모한 건가? 그것도 어디 녹취해온걸 조잡하게 짜깁기해놓은걸 증거라고 내놓고는 정말.. "

" 그런데 소영샘과 가족들이 정말 힘들어 한 건 그걸 제보했다는 사람이 정말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었다는거였어요. 근근히 없이 살던 그 사람이었는데 어느날 오스트리아 유학을 식구들이 다 간다는 말이 들려왔어요. 그래서 그 말을 듣고 다들 이상하잖어. 그래서 괜히 의심하지 않게 확인하려고 찾아갔는데 전화도 안받고 한발 빠르게 움직이더니 가버렸어요. 그 뒤로도 연락이 안돼요. 그러니 국정원이 뒤에서 봐준거라도 다들 생각했죠. "

" 아이고, 그런데 소영샘네 식구가 명절때 갔다오면 같은 식구들 얼굴보기도 힘들었던가봐요. 아들도 친구들 사이에서 눈총받다보니 싸움도 하고 그랬어요. 그래도 1주에 한번 꼭 대구로 같이 면회가고, 소영샘은 양심수 석방하자는 운동하면서 동서로 뛰어다니셨죠."

내가 이상호다. 대구구치소에서 나온 이상호씨가 동료시민들에게 마이크를 잡고 인사하고 있다. ⓒ 김태일


수원 마을 만들기로 크게 활동하고 계시는 하정호 선생님도 이상호씨를 알고 계셨다.

" 나도 그 지역아동센터에 1주에 3번정도 근무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상호씨는 애들하고 농구도 하고 같이 참 잘 놀아요. 한부모 가정이 많았던 지역 아동센터 아이들에겐 아빠같은 존재에요. 그 분은 비정규직 센터에서 일했었는데, 자기 아는 사람들한테 쌀을 걷어서 아이들 지원하고 그럴 정도로 사람이 얼마나 좋았는데...... "

짧은 머리에 탄탄한 체격을 가진 마을만들기 활동가는 좀 더 얘기하고 싶은게 있었다.

" 내가 정말 책에서 보던 이야기가 이웃에서 벌어지는 걸보고... 아, 국가가 한 가정을 이렇게 망가뜨리는구나. 아니 그걸 보고 있는 어느 누가 가만히 있겠어요? 국가보안법 문제에 관심을 갖고 보다보니 아니 무너진 가정이 한 둘이 아니야. 그렇지 무너지지 않은 게 대단한거지. "

" 우리 사실 아직도 나 스스로를 검열하고 살잖아요. 나도 문득문득 나를 보고 놀랄 때가 있어요. 우리가 먹고 사는 것은 선진화 되었어도 생각하는 것은 아직 아니에요. 국가보안법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이게 자유를 속박하고 있는게 보이더라니까요. 그 법대로라면 국민이 개돼지로 살기를 바라는거지. "

빛나는 사람, 이상호 대표님을 사랑합니다! 대구 구치소 앞에 모인 시민들은 이상호씨 환영식을 열고 축하 공연까지 해주었다. ⓒ 김태일


이런 사정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이상호씨 맞이하기 위해, 동지들과 이웃들 식구들 300여명은 27일 새벽 5시에 대구구치소 앞에 모였다. 그리고 정말 행복한 기쁨이 넘치는 표정으로 그를 맞이했다. 함께 그를 응원해왔던 친구들은 시와 노래를 준비하고 꽃다발도 준비했다. 그 축하행사가 수원에서도 밤늦게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이 자리에 함께한 많은 사람들이 소감과 이야기를 전했다.

지금의 양심수들이 마지막 양심수이길 바란다고 말한 이종철 목사는 박노해의 시,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를 낭송했고, 장문하 경기민주언론상을 받은 뉴스Q편집장 장명구씨는 감옥에 간 그에게 지역 소식을 편지로 전해주었던 이야기를 나눴다. 또 수원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서지연 이사장은, 풀과 벌레를 잘 말려두었다가 그림과 글을 담은 이상호씨가 보내준 편지답장을 모두에게 자랑했다. 그 편지 하나 쓰는데 공이 얼마나 들었을까란 말을 곁들이며.

오늘 축하공연을 준비했던 강새별씨는 이상호씨를 이야기로만 알고 있다 오늘 처음 만났다고 했다. '바다속 뚜르듯뜨르'로 시작하는 동요 상어가족을 지금 정당활동을 하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로 개사해서 상호씨에게 율동과 함께 선사했다. 이상호씨의 희생으로 이렇게 잘 살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기획이라다고 했다.

이상호씨의 815 특사를 외치며 다녔던 동지들 촛불로 만들어낸 정부가 양심수 석방을 가장 먼저 해주길 바랬던 동지들은 8월 15일까지 계속 줄기차게 알려왔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임미숙


그러나 촛불로 탄생시킨 현 문재인 정부에서, 무엇보다 가장 먼저 이뤄지길 바랬던 양심수들의 특별사면은 이뤄지지 않았고 가족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일부 언론들은 36명의 양심수들에게 이적단체, 보안사범, 불법노동운동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지만, 오늘 행사에 참여했던 시민들은 그 딱지가 붙은 사람들이 누구보다 먼저 이 땅에 촛불을 든 사람이라고 말했다.

한편 오늘 행사에는 내란 음모 사건을 다룬 다큐 영화 '지록위마' 경순 감독이 함께했다. 스스로 적폐가 된 국정원의, 내란음모 조작사건이 남긴 상처들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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