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도박 기업' 마사회와의 5년 싸움, 승리했다

용산 화상경마도박장 폐쇄 약속 받았지만...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등록 2017.08.28 21:18수정 2017.08.28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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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서울 용산구 화상경마장 추방농성장 앞에서 열린 '용산 화상경마장 폐쇄를 위한 협약식'과 승리대회 현장 모습. ⓒ 이원영


<용산 장외발매소 협약서>

용산화상경마도박장추방대책위원회와 한국마사회는 용산 장외발매소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협약한다.

하나, 한국마사회는 용산장외발매소를 2017.12.31.까지 폐쇄한다.
하나, 한국마사회는 용산장외발매소 건물 매각을 원칙으로 하며 장외발매소 용도로 활용하지 아니한다.

2017년 8월 27일
용산화상결마도박장추방대책위원회 공동대표 김율옥 / 을지로 위원회 위원장 이학영 / 농정개혁위원회 위원장 정현찬 / 한국마사회 회장 이양호

8월 27일, 주민들이 승리한 역사적인 날

2017년 8월 27일은 매우 역사적인 날입니다. 용산주민들과 마사회의 화상경마도박장을 둘러싼 기나긴 싸움이 종지부를 찍었기 때문입니다. 5년 동안 학교 앞 200m 도박장을 반대한 주민들이 승리했습니다.

용산화상경마도박장추방대책위(아래 주민대책위)와 한국마사회는 지난 27일 오전 11시에 주민들과 여러 정치인들, 언론사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용산화상경마장을 폐쇄할 것을 공표하고 약속하는 협약식을 체결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성장현 용산구청장과 진영·유은혜·진선미·제윤경·박주민 의원, 김광진 전 의원 등 국회의원들도 여럿 참석했습니다. 이런 협약식은 우리나라 주민·시민운동, 정치사에 매우 이례적이고 획기적인 사례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도박장 반대 투쟁 기림비 설치를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5년간 학교 앞, 주거지 앞 화상경마도박장 추방을 위해 한여름의 폭염과 한겨울의 사나운 강바람 속에서 주말을 희생하고 설과 추석 명절을 희생하고 천막을 지키며 1인 시위와 집회, 문화제와 기도회, 미사에 함께 해주신 학부모님, 선생님, 지역주민, 시민단체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주민대책위 공동대표이며 가톨릭 수녀인 김율옥 성심여고 교장은 도박장 폐쇄 협약서에 서명한 뒤 눈물을 흘리며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이 싸움을 시작할 때 저희는 단순히 학교 앞 교육환경을 지키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마사회가 얼마나 큰 조직인지, 얼마나 무도한 싸움이 될 것인지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우리 아이들이 오가는 길목이 경마도박장이 뿜어내는 죽음의 기운으로 덮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교사·학부모·주민이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김율옥 성심여고 교장과 교사·학부모·주민들이 이 싸움을 시작한 이유입니다. 학교 앞 도박장 반대 싸움의 시작은 2013년 5월로 한참 거슬러 올라갑니다.

용산구 원효로에 위치한 성심여중고 앞에 완공된 초대형 건축물이 '화상경마도박장'이라는 사실을 용산구의원을 통해 알게 된 교사·학부모·지역주민들은 2013년 5월 1일 주민대책위를 구성했고 활동을 줄기차게 이어왔습니다.

요약하기 어려운 길고 긴 투쟁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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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7월 2일, '용산 화상경마도박장 추방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청와대 부근인 종로구 청운효자주민센터앞에서 '화상경마도박장 강제·기습·폭력 개장 시도 규탄 및 반대 주민 서명 청와대 전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이희훈


이렇게 시작된 싸움, 말이 5년이지 교사와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자라 학교를 졸업하고 새 학교를 입학하는 일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이 과정은 험난했습니다.

용산 화상경마장이 위치한 자리는 여름에는 비바람이 거세고 겨울에는 바람이 휘몰아치는 그런 곳입니다. 집에서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왔다가는 집회 내내 심하게 추위에 떨어야 합니다. 도박장 앞 천막은 거센 비바람에 버티기 위해 몇 차례 재건축을 했습니다. 그래서 집회 참석자들은 우스개 소리로 "마사회 도박장보다 무더위, 땡볕과 찬바람이 더 무섭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처음 용산 화상경마장 앞에서 용산 주민들이 기자회견을 했을 때, 이곳을 방문한 기자들과 정치인들은 '도박장이 이 건물 몇 층에 있냐'고 물었습니다. 지상 18층, 지하 7층 초대형 건물이 모두 화상경마장으로 쓰인다고 했더니 대부분 깜짝 놀랐습니다. 용산 경마장은 마사회가 소유한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화상경마장입니다. 1200억 원이 넘는 돈이 건물에 들어갔습니다.

용산 주민들은 지난 5년 동안 단식·삭발·고공농성을 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습니다. 기자회견, 문화제, 행진, 국정감사 방청, 국회 방문, 주민 서명, 기도회, 미사, 현수막 게시, 홍보물 배포, 사진전, 명절 제사 등 이 투쟁 과정을 요약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혹시 싸움에 지더라도 후회없이 하자"는 게 주민대책위의 공통된 의견이었습니다. 

불법·탈법으로 공기업임을 포기한 마사회

시작부터 어설펐던 주민들의 싸움 상대인 마사회는 연 매출 8조 원에 이르는 거대한 공기업입니다. 일제시대 경마구락부에서 출발해 오늘날 전국에 화상경마장 29개, 말이 뛰는 본장 3개를 소유한 재벌기업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이 배경은 무엇이었을까요. 천문학적인 금액의 마사회 연 매출은 안타깝게도 서민들이 어렵게 번 돈을 도박에 탕진해 벌어들인 수입입니다. 이런 마사회의 본래 기업 목적은 뜻밖에도 '말 산업 육성'이랍니다. 

용산주민들은 마사회와 싸우면서 마사회의 본질을 '사행산업(합법도박업)에 혈안이 돼 도박장 확대에 혈안이 된 회사'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사회는 용산 화상경마장 이전 승인 과정에서 문서에 학교와의 거리를 350m로 거짓 기재하고, 첨부한 지도에는 학교를 누락했습니다. 민원 발생의 개연성이 없다고 보고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의 화상경마장 비율 축소와 사전협의 규정도 위반했습니다.

게다가 경비원으로 채용할 수 없는 성범죄 및 폭력 전과자를 채용해 이들을 경마장 입점 찬성 집회에 참석시키는 등 경비업법을 위반하기도 했으며, 2014년 6월 기습 개장할 때는 마사회 소속 유도부·탁구부 그리고 다른 지역 경마장 이용객을 동원하는 행위를 자행하기도 했습니다. 마사회의 불법과 탈법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고 대부분 언론에 자세하게 보도가 됐습니다. 마사회는 감사원 감사와 국회 국정감사에 지속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2016년 9월 서울경찰청은 마사회가 찬성 여론을 조작하기 위해 이른바 '카드깡'으로 불법 비자금을 조성해 그 비자금으로 찬성집회를 열고 일당 10만 원을 지급하고 찬성 집회 주도자의 외상 식비를 내줬으며 찬성집회 동원자의 폭행죄 벌금도 대납해줬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습니다. 파면 팔수록 가관인 마사회의 이런 행위들은 마사회가 공기업임을 포기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습니다.

그럼에도 마사회는 용산화상경마장이 '법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앵무새처럼 반복했습니다. 그런데 왜 마사회는 불법적으로 찬성집회에 사람을 동원하고, 카드깡을 하고, 각종 절차를 위반하면서 거짓을 일삼았을까요? 도박장 확대는 사회적 상식(합의), 도덕적 명분에서 밀리기 때문이었습니다. '도박장 확대'라는 마사회의 또다른 본질 자체가 너무나도 커다란 약점이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4년 7월 7일, 서울 용산 마권장외발매소(화상경마장) 개장 당시 모습. 성심여고 학부모가 화상경마도박장 개설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도박장 반대에 대한 각계각층의 응원과 연대가 큰 힘이 됐습니다.

마사회가 궁지에 몰렸다고 하지만 마사회는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졌습니다. 엄청난 돈과 정치력이 있음을 용산주민들은 모르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정부를 상대로 한 투쟁 경험, 시민운동 경험이 전무한 용산주민들은 도박장 반대 싸움이 힘겨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학생들의 교육환경과 안전을 지키고, 도박으로부터 가족의 행복을 침해당할 수 없다는 주민들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용산주민들의 도박장 반대 싸움은 언론에 지속적으로 자주 보도됐습니다. 학교 앞 주택가 등 도심에 도박장이 들어서는 것에 대한 반대 여론이 85.1%에 달하고 화상경마장을 규제하는 법안이 국회에는 11건이나 발의됐습니다.

서울시, 서울시교육청, 서울시의회, 용산구의회에서도 일관되게 반대 입장을 발표했으며 국민권익위도 도박장 이전에 문제가 있다고 권고했습니다. 국회 농림위 국정감사에서도 해마다 용산화상경마장 문제가 강하게 지적됐습니다. 용산구 주민 17만 명이 반대서명에 참여했으며 용산구 관내 34개 초·중·고 교장단, 학운위 위원장, 학부모 대표가 도박장 반대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성직자들도 매주·매월 도박장 앞에서 도박장 추방을 염원하는 미사와 기도회를 이어갔습니다. 농민단체·교육시민단체와 아동인권 복지단체에서도 학교 앞 도박장과 도박장 안 키즈카페 설치를 반대하는 등 각계각층의 지지와 응원은 시간이 흐를수록 지쳐가는 주민들에게 커다란 힘이 됐습니다. 힘없는 주민들은 압도적으로 여론전에서 승리했습니다.

힘없는 주민들이 승리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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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서울 용산구 화상경마장 추방농성장 앞에서 열린 '용산 화상경마장 폐쇄를 위한 협약식'과 승리대회 현장 모습. ⓒ 이원영


도박장 반대 투쟁을 이어가면서 주민들의 시민의식 역시 성장했습니다. 단순한 동네 문제가 아니라 오랜기간 이어져 온 사회 적폐 문제임을 깨달았고, 국민을 존중하지 않는 권력의 문제,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민주주의의 문제임을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학교 앞 도박장 문제 해결이 왜 이렇게 어려웠는지 사람들은 알게 됐습니다.

지난해 11월 거대한 촛불항쟁이 한국 사회를 변화시켰습니다. 불의한 권력을 끌어내렸고 새로 선출된 새로운 정부가 구성됐습니다. 용산주민들은 새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크게 기대했지만 이렇게 쉽게 풀릴 것으로 예상하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접한 도박장 폐쇄 협약식 소식에 5년간 싸움에 참여한 주민들은 "이렇게 간단하게 풀릴 일이었는데 5년이나 그렇게 고생을 했다니!" 허탈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명백한 것은 한국 사회의 거대한 변화의 흐름, 5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싸워온 주민들의 노력과 각계각층의 연대와 응원이 있었기에 주민들이 승리한 것입니다.

곱씹어 볼수록 역사는 엄중합니다. 영원히 권세를 누릴 것 같은 불의는 언젠가는 시민들의 심판을 받고 역사의 평가를 받게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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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서울 용산구 화상경마장 추방농성장 앞에서 열린 '용산 화상경마장 폐쇄를 위한 협약식'과 승리대회 현장 모습. ⓒ 이원영


"국민을 책임지는 것이 국가라고 할 때 오늘 이 협약식이 전국의 화상경마도박장으로 인한 문제에 대해 국가적 차원의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해결책이 마련되는 시발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에 우리 대책위는 지난 5년의 싸움 과정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용산 화상경마도박장이 실질적으로 폐쇄되기까지 이 자리를 지키며 국가의 사행산업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것입니다.

나아가 아이들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부끄럽지 않을 어른으로 살기 위해 오늘의 자리를 시작으로 우리는 또다시 한 걸음 나아갈 것입니다. 이 땅 곳곳에서 생명과 안전이 위협당하는 이들과 연대하며 함께할 것입니다. 지난 5년의 싸움에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난 27일 폐쇄 협약식에서 김율옥 교장은 끝으로 새로운 다짐을 전했습니다.

정부의 사행산업에 대한 규제는 고삐가 풀려있는 상태이고 도박중독자, 도박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현재 국회에 발의돼 있는 마사회법,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법, 학교보건법 등 도박 규제 관련 법안은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도박 관련 정치와 시민운동이 풀어야할 숙제는 여전히 산적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용산화상경마장 문제의 해결은 끝이 아닌, 출발점입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집회·농성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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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서울 용산구 화상경마장 추방농성장 앞에서 열린 '용산 화상경마장 폐쇄를 위한 협약식'과 승리대회 현장 모습. ⓒ 이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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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서울 용산구 화상경마장 추방농성장 앞에서 열린 '용산 화상경마장 폐쇄를 위한 협약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양호 한국마사회장, 더불어민주당 이학영 의원, 김율옥 용산화상경마도박장 추방대책위원회 공동대표, 정현찬 농정개혁위원회 위원장. ⓒ 연합뉴스


거대 공기업 마사회와 5년간 맞서 싸워 용산주민이 승리한 사례는 앞으로 한국 사회가 나아갈 시민 권력의 길에 중요하고 값진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협약식을 끝으로 주민들의 싸움은 끝났을까요? 도박장 앞 주말 집회는 다음 주부터는 없고 천막 농성장은 바로 정리할까요? 어찌해야 될지, 고민됐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어제(8월 27일) 마사회와의 협약식이 잘 마무리돼 감사드립니다. 마사회가 12월 31일까지 폐쇄한다고 약속했는데 농성과 집회는 어떻게 할까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 공지합니다. '끝날 때 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우리는 마사회보다 더 일찍 철수할 수 없기에 농성과 집회를 계속합니다.

9월부터는 경마를 다시 오전 10시 40분에 시작하니 집회는 매주 토·일 오전10시부터 11시까지 하겠습니다. 농성장 지킴이도 농성장을 철거할 때까지 지속해주시길 바랍니다."

마사회의 용산화상경마도박장이 올해 12월 31일 철수할 때까지 용산주민들의 집회와 농성은 계속된다고 대책위 소통방에 28일 바로 공지됐습니다. 그래도 집회 시간은 2시간에서 1시간으로 줄었습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요.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이원영 시민기자는 현재 용산시민연대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난 5년간 용산화상경마도박장추방대책위 공동대표로 활동했습니다.
#화상경마장 #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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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참여의 지역공동체 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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