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히딩크, 대한축구협회 중심이 되는 것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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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승(lkssky0203)등록 2017.09.11 10:04
거스 히딩크 감독이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 사퇴 이후 한국 대표팀을 맡고 싶다는 입장을 표명했었다. 하지만 지나간 일이다. 신태용 감독이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성공적인 업적을 이뤄낼 수 있기를 기원한다."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입장을 전한다면, 폭발한 민심은 수그러들 수 있을까.

민심이 바닥을 치고 있다. 대표팀 입장에서는 서운한 감정이 들 정도로 불신이 가득하다. 상식과 원칙을 무너뜨려서라도 히딩크 감독을 데려와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친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넘겨버리기 어려운 수준이다.

오는 10월 유럽 원정 평가전(튀니지·러시아)과 11월 국내 평가전, 12월 동아시안컵에서 결과를 뒤로한 실험이 가능할지 걱정이다. 브라질이나 스페인 등 전력 차가 심한 상대가 아닌 튀니지, 러시아, 일본(동아시안컵) 등에 무너질 경우, 신태용호가 감당해야 할 비판과 비난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도대체 무엇이 축구팬들을 분노하게 만든 걸까.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올림픽 8강, U-20 월드컵 16강 등을 이뤄낸 신태용 감독의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한국 축구의 근간인 붉은악마가 화난 이유는 무엇일까 ⓒ 이근승


신태용 감독과 대표팀, 팬들에 서운할 수 있는 이유

지난 3월, 우리 대표팀은 중국 원정(0-1)에서 패했고, 시리아와 홈경기에서는 골대 행운을 앞세워 1-0 승리를 따냈다. 지난 6월에는 카타르 원정에서 2-3으로 무너지며, 33년(32년 6개월) 만에 쓰라린 아픔을 맛봤다. 슈틸리케호에 더 이상의 희망은 없었고, 사령탑 교체를 피할 수 없었다.  

지난 7월, 치열한 논의 끝에 신태용 감독이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이하 최종예선) 마지막 2연전과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을 책임질 '소방수'로 선택됐다. 조기소집 카드를 다시 한 번 꺼내 들었고, 우여곡절 끝에 2018 러시아행 티켓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홈에서 열린 이란전(0-0)과 최종전이었던 우즈베키스탄 원정(0-0)에서 승리를 따내지는 못했지만, 목표는 이뤄냈다.

신태용 감독과 선수들이 서운하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여기에 있다. 한국 축구의 현실을 냉정하게 평가하면, 이란과 우즈베키스탄전 무승부는 성공적인 결과라고 봐야 한다.

한국 축구의 '전설' 박지성이 있었을 때도 이란은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한국은 지난 2004년 중국에서 열린 아시안컵 8강전에서 이란과 맞붙었다. 조 본프레레 감독이 이끌던 한국의 중심은 박지성이었고, 이란은 알리 카리미를 중심으로 세대교체가 진행 중이던 팀이었다.

결과는 3-4 패배였다. 이영표와 김진규 등 우리 수비진은 카리미와 메디 마다비키아의 빠른 발을 제어하지 못했다. 설기현과 이동국, 김남일이 득점포를 가동하며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지만, 해트트릭을 기록한 카리미의 이란을 넘어서지 못했다.

박지성이 '이란 킬러'라는 별명을 얻었던 2010 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에서도 이란을 이기지는 못했다.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첫 번째 맞대결에서는 자바드 네쿠남에게 프리킥 선제골을 내줬지만, 박지성의 극적인 동점골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본선행을 확정 지은 뒤 치러진 이란과 홈경기에서도 박지성의 동점골로 승점 1점을 따내는 데 만족했다.

박지성이 이끌던 한국이 이란을 무너뜨렸던 것은 2011 카타르 아시안컵 8강전이 유일(친선 경기 제외)하다. 당시에도 팽팽한 접전이 이어지면서, 90분 안에는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교체 투입된 윤빛가람이 연장전에서 극적인 결승골을 뽑아내면서, 힘겹게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승리에 큰 의미가 없는 친선 경기를 돌아봐도, 이란은 어려운 상대가 틀림없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과 조원희의 데뷔전(58초 만에 선제 결승골 기록)으로 인상 깊었던 2005년 홈 친선 경기(2-0), 이영표의 실수로 패했던 2010년 홈 친선 경기(0-1) 등 박지성이 있었을 때도 이란에 승리를 거두기란 매우 어려웠다.

우즈베키스탄 원정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1998 프랑스 월드컵 최종예선(5-1) 이후 우즈베키스탄 원정에서 승리를 따낸 기억이 없다. 2006 독일 월드컵 최종예선 맞대결에서는 A매치 데뷔전을 치른 박주영의 극적인 동점골로 1-1 무승부를 거뒀고, 2014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2-2)에서도 승리는 없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마지막 2연전이 나쁘지 않았던 이유다. 박지성 은퇴 이후 이란전 4연패의 사슬을 끊어냈고, 우즈베키스탄 원정에서 패하지 않으며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란 금자탑을 쌓았다. 중국과 카타르에 무너졌던 불과 얼마 전을 돌아본다면, 비판과 비난보다는 격려가 어울린다.

폭발한 민심, 핵심은 대한축구협회

그런데도 비판과 비난은 멈추지 않는다. 현재도 같은 입장을 고수하는지 알 수 없는 히딩크의 과거 발언이 알려지면서, 그 강도가 점차 강해진다. 청와대 웹사이트에는 '히딩크 감독님이 한국 원합니다! 월드컵 대표팀을 맡아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원이 등장했다. 일각에서는 촛불 집회를 진행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원인은 간단하다. 팬들은 매번 반복되는 똑같은 문제에 지쳤다. 지난 2014 브라질 월드컵 준비 과정은 현재와 매우 판박이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이후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조광래 감독은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레바논 원정(1-2) 패배와 일본 원정(친선) 대참사(0-3) 등으로 인해 일찌감치 물러났다.

전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시한부 감독이 등장했다. 전북 현대를 떠날 수 없었고,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거부했던 최강희가 3차 예선 마지막 경기인 쿠웨이트전과 최종예선을 지휘했다. 이란전 2연패, 레바논 원정 졸전(1-1), 기성용 SNS 사건 등 내외적으로 시끄러웠지만, 본선행 티켓은 따냈다.

선수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로 온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은 홍명보가 구원투수로 나섰다. 결과는 처참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이후 홍명보란 이름 자체가 '금기어'가 됐다. 2014 브라질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홍명보 감독에게 주어진 시간은 1년이 채 안 됐지만, 책임은 그만의 몫이었다. 조광래와 최강희 등을 거치며 낭비한 시간, 감독을 보는 안목, 장기적인 계획 수립 실패 등에 대한 책임과 반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움베르투 코엘류와 본프레레를 거쳐 아드보카트가 나섰던 2006 독일 월드컵 준비 과정도 2014 브라질,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 2010 남아공 월드컵 허정무호가 탄생하기 이전의 핌 베어벡 체재, 그보다 훨씬 이전의 역사를 돌아보더라도 똑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세계 여섯 번째로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게 됐지만, 성공이라 칭할 수 있는 대회가 단 두 번(2002·2010)뿐인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지도자와 선수들의 능력 부족 때문일까. 절대 아니다. 우리는 월드컵 실패가 감독 교체 외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돌아봐야 한다. 실패한 지도자를 양산해내는 결정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지도자를 선택하는 이들의 안목이 한국 축구의 미래에 적합한지 고민해야 한다. 

히딩크 감독이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해 헌신하기로 했다면, 대한축구협회로 들어오는 것을 추천한다. 히딩크 중심의 대한축구협회라면, 반복되는 한국 축구의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고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상황에서 히딩크 감독의 이야기가 나와 불쾌하고 어처구니가 없다"라는 목소리 대신 팬들이 분노한 원인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반성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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