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청년네트워크 도전기

청년들을 위한 중간매체, 미디어, 방송국, 소통창구, 그리고 플랫폼 -청년네트워크/청년미디어플랫폼

검토 완료

백민규(rkemals12)등록 2017.09.19 11:09
: 청년네트워크를 위한 시도들   

처음부터 청년공동체를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공동체에 대해서 크게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남들과 조금 다른 작가를 지망하고 있는 20대에 불과했던 나였다. 그렇게 살던 어느 날, 25살 나는 마침내 공동체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어느 때와 다른 없었던 그러던 어느 날 공동체의식이라는 것을 우연히 느끼게 되면서 본래 원래 알고 있는 정보들을 남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하는 기질이 있어 이런 모험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라는 작은 사람이 사회적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2015년 말부터였다. 내가 막 방송작가 일을 그만두었을 때였다. 막내작가로 일하면서 '집에 가면 일안하나보다?'라는 말에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버틴 게 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못난 처우들이 내가 정작 방송작가를 하고 있을 때는 혹시라도 나에게 불편한 일이 생길까봐 아무 말 못했지만 일이 끝나자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던 어느 날이었다. 사실 내가 만난 사람(선배)들은 시스템에 대한 문제는 인식했지만 사람자체는 좋은 분들이었기에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그렇지만 방송프로그램이 끝나자 내 생각은 바뀐다. 이걸 이대로 두면 안 된다는 생각이 떠올라서 방송작가의 처우를 제보하면서부터 나의 사회적 활동은 시작된다.    

제보는 하긴 했어도 막상 이뤄질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엇비슷하게 방송작가 처우 개선이라는 이름하에 프로젝트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아직까지 그 결실을 맺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런 움직임은 비록 나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한 문제가 있었고 그런 문제를 의식한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던 시점이었다.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많은 단체들이 있었고 그 중에는 '청년'을 주제로 한 수많은 단체들이 있었다. 그런데서 활동을 시작하기 시작한 것은 2016년 초쯤이었다. 여러 단체가 있었지만 함께 움직이지는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활동하는 것도 아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우리에게는 아직은 모두가 동감할만한 '내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활동을 시작함으로 이런 일들이 '나'의 일, 내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고 이런 활동자체가 활발히 더욱더 활발히 된다면 더 좋은 세상이 만들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많은 문제, 청년들의 노동문제, 주거문제, 대학문제 등을 다루는 단체들이 있었지만 솔직히 고백하면 주축 활동회원들은 비슷비슷했다. 한 회원이 여러 단체에서 여러 활동을 하는 게 일상다반사였다. 무언가 매우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활동을 알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활동 자체도 재미가 추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재미가 있어야 그래서 즐거워야만 지속성이 있다고 생각했고 충분히 이런 활동도 즐겁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미디어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청년미디어네트워크, 중간자의 역할을 통해서 활동단체를 소개하기도 하고 연대를 꾀하는 거미줄(웹)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새로운 플랫폼을 개발해 (TV 예능 프로그램처럼) 재미를 주면서 즐거움과 행복을 통해 발전해 가는 사회에 이바지하는 역할을 생각해보았다.    

재미를 통해 사회적 연대를 꾀하고 문제를 함께 고민하여 해결해 갈 수 있는 연대를 꿈꾼 것이다. 그렇게 청년네트워크 1박 2일 워크숍이라는 기획을 처음하게 되었다.    

내용은 이렇다. 모든 가지각색의 청년, 좌우, 남북, 다른 청년들이 모여서 콘서트처럼 즐기면서 토론하고 토의하는 소통을 통해, 지속 가능성한 내일을 함께 열어가는 자리, 매년 열려서 브라질의 삼바축제처럼, 청년축제가 열리는 그런 시대를 꿈꿨고 조금씩 이뤄갈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집필을 하게 된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청년의 문제를 해결해 가기위한 첫걸음은 정치적 투신이었다. '청년당당'이라는 청년의 문제 해결을 위한 단체가 출범한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곳인가,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으로 찾아가보았다.    

   

청년당당 선포식 청년당당 선포식 ⓒ 백민규


청년당당 선포식

그곳에는 청소년부터 정치적인 입지를 이미 다진 분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청년'이라는 이름하에 함께 문제를 해결해 가고자 모인 것이었다.    

우연한 계기로 청년당당의 문화정책 팀장역할을 자처해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은 미흡한 단체이다 보니 여러 가지 부족한 게 많았다. 함께 문제를 해결해 가면 좋았겠지만 나에게 소통의 부재가 너무 큰 것이 아쉬움이 남았다.    

대표의 선출의 문제에서 실지적으로 나는 관련되어 있지 않았지만 대표 후보자로 나선 인물에게 일방적인 통보 느낌을 받고 문제해결보다는 기존 정치적인 억압을 느껴 팀장 역할을 내려놓고 단체도 탈퇴하게 되었다.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답답함이었다.   

그러면서 내 진로를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던 중에 당시 몸을 담고 있던 정당차원에서 20대 총선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청년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 워크숍을 개최했고 나는 거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참여하게 되었는데, 청년당당을 통해 우연히 만난 인물이 나에게 선뜻 함께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받아, 20대 총선을 그와 함께 보내게 되었다.         

명함사진 20대 총선 중구성동구갑 청년후보 명함 ⓒ 백민규


20대 총선 중구성동갑 국회의원 후보 명함

'답을 묻던 청년, 답을 찾아 나서다.' 사실 20대 총선에서 거의 제 역할을 못했던 나였지만 그나마 한 일이 있다면 저 문구를 뽑아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청년'의 문제를 직접 해결 나가는 '청년'이었다.    

20대 총선이 끝나고 서울시의 뉴딜일자리 정책으로 지역혁신 청년활동가로서 서울시 마을공동체 업무를 담당하는 지역공동체담당관에서 홍보활동을 하게 되었다.

서울시청 2층 지역공동체담당관 마지막 퇴근 직전 ⓒ 백민규


서울시청 2층 지역공동체담당관 사무실 & 지역혁신 청년활동가 명함

마을의 홍보활동을 하면서 여러 가지를 느꼈다. 공동체의식과 도시마을에 대한 이해타산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쉬웠던 것은 사실 마을에 청년의 자리는 없었다. 있었다고 해도 소모품일 뿐이었고 이용가치에 충실한 그저 그런 존재, 어차피 떠날 존재이거나 마을에 남지 않을 사람들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서 청년마을을 꿈꾸던 나는 대안적으로 온라인상에 청년 마을을 만들어 보고자 청년네트워크(온라인청년마을)<https://www.facebook.com/groups/onlineyoungtown/>을 만들었지만 아쉽게도 그렇게 뜨거운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솔직히 나 같아도 아무것도 얻을 게 없는데 뭐 하러 그런 귀찮은데 일부러 가입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하지 못하다 보니 확장성이 형편없다는 문제에 봉착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청년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이름이 조금 다른 청년정책네트워크부터 416대학생연대, 청년유니온, 청년예술가네트워크를 비롯해 청년을 주체로 한 축제 등 할 수 있는 대부분의 단체와 축제에 참여해보았으며 그러다보니 이런 단체들이, 이런 축제들이 하나로 한 번에 모여서 일어나는 날, 그리고 이런 소식들을 오늘의미디어 같은 매체처럼 한 번에 모아주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점점 강렬해졌다. 청년매체를 위해서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많은 고민을 통해 청년참여연대에서 미디어분과를 만들어서 우선적으로 해보면 좋지 않을까라는 결론 끝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TF 인원모집 TF 활동사항 안내 ⓒ 백민규


청년참여연대에서 청년미디어분과&TF를 만들기위한 노력

미디어분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길게 보면서 TF 활동을 통해 입지를 다져야 했다. 미디어 팀을 우선적으로 만들어 시범사업을 진행하려고 했지만 가장 중요한 동료들을 얻지 못했다. 추진력이 떨어진 내 잘못이 클지도 모르겠지만 적극적으로 함께해보고자 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있었지만 부분적으로 시기별로 떨어져 있어서 그들을 한데 모으는데 내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 컸다. 그래서 미디어 팀을 통해 미디어사업을 해보려는 내 전략은 결과론적으로 실패했다.    

그렇지만 우습게도 나는 청년매체를 포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큰 실패가 사실상 확실한 방법을 저질렀다. 스케일도 보다 훨씬 커졌다. 청년네트워크 1박 2일 워크숍에 대한 나의 생각을 어느 정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박원순 서울시장님에게 보낸 것이다.    

사실 별반 기대하지 않았는데 생각 이상의 답변을 받았다. 재밌을 것 같다는 답변을 받았다.    

서울시장 답변 이때까지만해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 백민규


서울시장에게 온 답변

박원순 시장님에게 보낸 메일을 통해서 나는 한껏 기대치가 부풀어 올랐다. 정말로 진행하는 건가? 와우! 내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높아졌다. 포기하지 않으면 꿈은 이루어지는 구나!! 그런 생각들로 가득 찼다. 실제로 담당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당시 지역공동체담당관에서 일하고 있던 나는 서울혁신기획관 소속이었는데 서울시장님이 만나서 디벨롭해보라고 시킨 분이 나의 바로 직계상사급 전효관 국장님이었다. 그래서 약간 내가 괜한 짓을 했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국장님과의 만남은 좋은 자리였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해한다고 하셨고 잘 이야기 해보자고 하였다. 그 후 담당주무관과 연락 후에 직접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청년네트워크 1박 2일 워크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청년정책네트워크 실무자와 만나서 이야기하는데 내 꿈은 거기서 꺾여버리고 말았다.    

우선적으로 청년네트워크 1박 2일 워크숍에 대한 생각이 좋고 하면 좋겠지만 실지적인 예산편성에 있어서 어렵고 또 비슷한 '서울시청년주간'이 있기에 여기에 섞어서 해보면 어떻겠냐는 생각을 전달받았지만 내 생각은 좀 달랐기에 무산되었다. 그렇게 한 풀이 꺾인 채 내 도전은 무로 돌아가는 듯 했다.     

그러나 밟을수록 자라난다는 풀떼기처럼 나는 그렇게 쉽게 내 꿈을 포기하지 않은 채 다른 방법으로 다시 도전해 갈 것이고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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