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가 유태인을 증오한 진짜 이유

폴란드의 아우쉬비츠 수용소를 찾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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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유(drjoh)등록 2017.10.31 10:11
지난 10월12일부터 21일까지 열흘 동안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이번엔 전에 이미 가본 적이 있는 서부유럽은 재외하고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항가리, 오스트리아만 둘러보았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폴란드의 아우쉬비츠(Auschwitz) 유태인 수용소였다.

2차 세계대전(1939-45)을 일으킨 나치 독일 독재자 히틀러가 유태인 멸종을 시도하다 실패한 얘기는 TV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이미 많이 보았지만, 가장 악명 높은 아우쉬비츠 수용소에서 학살되기 전 유태인들이 사용한 안경, 신발, 식기, 심지어 그들의 머리텉까지 실물로 보니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나는 유태인들은 불쌍하고 히틀러는 악독했다는 생각을 굳힌게 아니라 왜 히틀러가 그렇게 지독하게 유태인 멸종을 획책했을까 하는 의문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Holocaust(홀러코스트/유태인 대학살) 영화를 보아왔다. 그런 것을 볼 때마다 우리는 히틀러와 나치스는 나쁘고 유태인은 불쌍하다는 생각만 했지, "유태인이 독일인의 미움을 살만한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 아닌가?"라고 생각해본 적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아직 유태인 학살 이유를 다룬 영화를 본 일이 없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우리가 본 영화는 전부 히틀러는 나쁘고 유태인은 억울한 피해자라고 생각하도록 영화가 만들어져 있었고, 그런 영화를 제작한 영화사들은 대개 유태인 돈줄과 연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Why did Hitler hate Jews so much? (히틀러는 왜 그렇게 유태인을 증오했는가?)라는 검색어로 Google에 들어가 보니 엄청나게 많은 글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 가장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것은 독일의 역사학자 랄프 게오르게 로이트(Ralf-George Reuth)가 6년 전에 쓴 책이었다.
이 책의 독일어 타이틀을 영어로 번역한 것은 Jewish Hatred; Cliché and Reality인데 우리말로는 "유태인 증오: 통설과 실체"쯤 될 것이다. 이 책에 의하면 히틀러가 유태인을 증오한 진짜 이유는 다음과 같다고 영국 Daily Mail 신문이 소개했다.

지금까지는 청소년 시절의 히틀러가 빈(Wien-지금의 오스트리아 수도)에서 살 때 여러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유태인을 증오하게 되었다는 설이 유력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히틀러 모친이 유태인 의사의 실수로 죽었기 때문이라는 설이다. 심지어 그 의사가 유방암 환자인 히틀러 모친을 성폭행까지 했다는 설도 있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히틀러가 빈(비엔나)에서 미술학교에 다닐 때 짝사랑한 독일 여자가 나중에 돈 많은 유태인 남자와 결혼하는 것을 보고 격분, 유태인을 증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유태인들이 부자가 되면 독일 여성과 결혼하여 아리안(독일 민족)의 피를 흐려놓기 때문에 히틀러가 유태인 멸종을 기획했다는 설도 있다.

물론 이런 개인 감정적인 요소도 어느 정도 작용했겠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경제적, 정치적 이유였다. 히틀러는 유태인 때문에 1차 세계대전(1914-18) 후 독일 경제가 붕괴했고 또 유태인들이 러시아 공산혁명을 일으켰다고 생각했다. 1차 세계대전에 하사관으로 참전한 히틀러는 패전 독일 경제를 재건하는데 유태인들이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해를 끼쳤다고 보았다. 종전 직후인 1919년 당시 독일의 민간은행의 약 절반이 유태인 소유였으며 증권시장도 유태인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독일 신문의 약 절반이 유태인 소유였으며 연쇄백화점의 80%도 유태인 소유였다. 한마디로 독일 경제와 언론은 유태인이 좌지우지했다고 볼수있다. 그래서 독일의 패전을 유태인 탓으로 돌리는 풍조가 팽배했다는 것이다. 히틀러는 주식시장이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자본주의를 싫어했다.

히틀러는 또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도 유태인이 주축이 되어 일어났다고 보았다. 공산주의 이론 창시자 카알 마르크스(Karl Marx), 러시아혁명 지도자 레닌과 트로츠키가 모두 유태인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의 정치적 초기 기반지였던 독일 뮌헨에서 1919년 공산주의 정권이 잠깐 등장한 일이 있었는데 이 때 부터 히틀러는 공산주의자들을 증오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로이트는 나치시대 인물 연구에 권위자로 알려진 역사가인데, 선전과 선동의 귀재라는 요셉 괴벨스 선전상의 전기도 썼다. 유태계 독일 소설가 토마스 만(노벨상수상자)도 러시아 혁명 주도 세력은 유태인이었다고 쓴 기록이 있다고 로이트는 말했다.

덧붙이는 글 조화유 기자는 미국 거주 작가이며 영어교재 저술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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