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운환 아름다운컨벤션 대표가 지난 10월 25일 광주의 한 호텔에서 <오마이뉴스>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소중한
"광주에서 제일 비싼 아파트 55평형에 살았어"
- 인터뷰 질문이 국제PJ파 사건과 관련해 홍준표를 만난 것부터 시작해 수사와 재판 등으로 구성돼 있다. 그 질문에 맞춰서 인터뷰하다 보면 당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홍준표는 내가 국제PJ파를 만들었고, 관련 있는 것처럼 말하는데 (재판에서는) 나와 관련없다고 나왔어. 그리고 내가 홍준표를 만났을 때 나는 깡패도 아니었어. 홍준표를 만나기 20년 전에 마음을 잡고 사업을 시작했어. 1977년 1월 8일에 결혼했고, 방위로 군대도 갔다 왔고. 그렇게 해서 마음을 잡고 18년 동안 작든 크든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홍준표가 사건을 깡그리 만든 거야. 그럼 왜 만들어졌느냐고 중요하겠지. 아무 이유도 없이 홍준표가 만들었겠느냐 하는 궁금증이 있을 수도 있겠지."
- 홍준표를 처음 만난 것은 언제였나?
"홍준표는 1991년에 광주지검에 발령을 받아서 광주에 왔어. 이 분이 광주지검에 근무하면서 건설회사들을 수사했는데, 그 사건과 관련해 인터뷰하는 것이 MBC에 나오드라고. 그때 홍준표를 처음 봤제. 그때 '검사가 참 독특하다'고 생각했어. 그때에는 검사가 막 방송에 나와서 인터뷰하는 일이 흔치 않았거든. 검사가 개별적으로 인터뷰하는 것이 생소했제.
나는 홍준표와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았어. 홍준표는 5층에 살고, 나는 15층에 살고. 그때 15층이 제일 높은 층이었어. 그런데 나는 홍준표가 우리 아파트에 살고 있는지는 꿈에도 몰랐어. 그때 나는 홍준표를 잘 몰랐슨께. 그때 우리가 산 아파트가 105동이었어. 광주 북구 우산동 현대아파트. 광주에 처음 들어온 대형아파트였지. 내가 거기서 살았는데 홍준표가 거기 사는지는 정말 몰랐어. 그 아파트가 당시에는 광주에선 가장 비싼 아파트였고, 내 기억이 맞다면 그 아파트는 55평형이었어. 요즘 기준으로는 100평이 넘는 대형평수여. 평검사가 초대형 평수의 아파트에 산다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광주지검에 남충현 강력부장이란 분이 있었는데 그 분과 나는 상당히 잘 지냈어. 내가 방위로 군생활하고 있을 때 유제인 검사가 군검찰관으로 있었어. 그 분이 나를 굉장히 아끼고 예뻐했는데 남충현 부장이 그 분하고 부산에서 같이 근무를 하다가 광주로 부임했어. 그때가 아마 1981년이었을 거야. 그 분이 1년 6개월 후에 다른 임지로 가게 됐는데 그때도 가깝게 지냈지. 광주에 오기 전에는 남원지청장도 했고. 부부 간 모임도 하고 있어서 가깝게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도 가끔 연락하는 사이야.
내가 군생활을 할 때 상관으로 알고 지내던 보안대(현 기무사) 중위가 있었어. 그 분이 505보안부대로 발령받아서 오셨어. 그래서 내가 그 분을 모시고 골프장에 운동하러 갔어. 거기서 나하고 평소에 잘 아는 백남중이를 만났어. 우리가 골프장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응 왔능가?' 하고 이야기하잖아. 그때 골프장이 거기 하나밖에 없었다고. 내가 백남중에게 '누구랑 왔능가?'라고 물었어. '홍준표 검사랑 박승조 내과 원장이랑 왔다고 하더라고. 근데 걔가 멋쩍었을 거야. 갸는 김태촌 직계 후배야. 말하자면 조폭하고 깊게 연관된 사람이었지. 김태촌 직계 중에서 2인자네 뭐네 하면서 음성적으로 활동할 때야.
근데 그 친구가 나랑 친군데 나를 보고는 좀 어색해했어. 왜 어색했냐? 홍준표가 광주에서 건설폭력사건을 수사하면서 방송사랑 인터뷰했어. 그 사건을 수사하면서 건달들, 조폭과 관련된 사람들을 많이 구속시켰어. 그런데 자기만 홍준표와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좀 어색했던 거야. 지도 다 아는 사람들을 잡아넣고 횡포를 부렸던 사람하고 지가 어깨동무를 하고 골프를 치는 것이 어색했겠지. 홍준표랑 같이 왔던 박승조 내과 원장은 홍준표 아파트의 집주인이라고 들었어."
여운환은 왜 홍준표에게 인사하는 걸 거절했나?
- 그때 홍준표는 전세를 살고 있었다.
"그랬을 거야. 그리고 같이 골프치러 왔던 또 한 사람은 건설사 사장이던 정아무개씨다. 백남중이 그렇게 같이 왔다고 해서 나는 '그랬냐'고 하고 우리 자리에 와서 밥먹고 있었어. 근데 백남중이 나한테 와서 '홍 검사하고 인사나 좀 하면 어찐가?'라며 내 의사를 물어. 홍준표도 백남중에게 내가 누구란 얘기를 들었을 거야. 또 나는 내과 원장도 알고, 건설사 사장도 다 알고 있잖아. 그래서 백남중이 홍준표와 인사하라고 청했는데 내가 거절했어.
내가 기무사 등 선배들 다 모시고 두 팀으로 나누어 운동하고 테이블에서 식사하고 있었고, 홍준표가 검사 신분이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고, 그냥 우리 또래라고 생각했어. 나이가 많고 직급이 높으면 예우라도 할 수 있었겠지만 우리 또래거나 더 밑이라고 생각했어. 기관장들도 앞에 있는데 밥 먹다 말고 꾸역꾸역 홍준표에게 가서 인사할 일이 없제. 홍준표가 우리한테 와서 인사하는 것도 마땅치 않았고. 나도 자존심 하나로 사는데."
- 평검사라고 거절했나?
"계급이 높다고 해서 인사하고, 낮다고 안하는 게 아니여. 우리 기준은 계급이 낮은 사람도 서로 좋은 마음을 갖게 하면 당연히 자세를 낮추겄제. 내가 범죄를 짓고 사는 사람도 아니고. 다만 그런 분들이 나이가 지긋이 있으면 지역사회에서 예의로라도 인사하지.
그런데 검사인데다가 나이도 그러고, 그런 사람들 수사해서 막 잡아넣고 우쭐해하고 있는데 내가 찾아가서 '아유, 검사님' 하는 것이 자존심이 허락 안하고 마음이 안내켰어. 게다가 당시 내 기준으로는 광주가 건설업계 입찰비리문제로 수사를 받고 있는데 검사가 건설업계 분들과 골프를 친다는 것도 왠지 비정상으로 보이더라고.
그때 홍준표가 나를 괘씸하게 본 거야. 자기가 광주에서 그런 사건들을 패기넘치게 하니까 자기 지인들한테 우쭐해 보일 때인데 내가 거절하니까 그 지인들에게도 창피했겠지. 암튼 거기서 홍준표의 심기를 거스른 건 틀림없어. 본인도 후일 넌지시 그걸 이야기하더라고.
그것이 첫 번째야. 홍준표가 보기에 자기는 막 수사하는 검사인데 씨알도 안 먹히고, 내가 즈그 부장하고 가깝다고 하니까 '나를 무시하냐?'라고 고깝게 생각했을 거야. 그 사람 성격상 그랬을 거라고. 나는 홍준표 얼굴도 잘 기억 못하고 관심도 없었어. 홍준표 얼굴도 대면한 적이 없었지. 그런데 남충현 부장이 나한테 '홍준표가 너한테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으니 한번 만나라'고 해. 자기가 홍준표한테도 '여운환이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내 말을 믿어라, 그런 사람이었으면 내가 십 몇 년을 만나겠냐?'고 했다면서 나더러 연락 오면 한번 만나보라고 해. 그래서 '형님 알았습니다'라고 했지.
그런 말을 들었던 처지였는데 광주지검에 있던 이병직 계장이 느닷없이 전화를 해왔어. 지금은 법무사를 하고 계시는 분인데, 전화해서는 대뜸 잘 있냐고 안부를 전하더니 '우리 홍준표 검사님한테 아직 인사 안드렸는가?'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아이, 그렇잖아도 신문에도 나고 방송에도 나고 말은 많이 들었는데 인사 드릴 기회가 없어서 못 드렸네요'라고 했어. 그러니까 '우리 홍 검사님 바꿀게' 하면서 전화를 바꾸더라고. 그렇게 홍준표하고 첫 통화를 하게 됐어.
그렇게 통화를 했더니 홍준표가 나한테 '여 사장, 우리 한번 만납시다' 그래. 그래서 내가 '언제든 시간 내주십시오, 저도 뵙고 싶습니다'고 하면서 '검사님 어디 자주 가시는 음식점이나 좋아하시는 음식 있으면 제가 예약하겠습니다'고 했어. 그러니까 홍준표가 '그런 것은 중요치 않고 암튼 한번 만납시다' 그래서 날짜를 정하고 전화통화를 끝냈지. 만나기로 한 날 국제호텔 사우나에서 목욕하고 이발소에서 머리를 말리려고 하는데 우리 여직원에게 메시지가 들어왔어. 그래서 사무실로 바로 전화했더니 우리 여비서 말이 '사장님, 검찰청 103호실에서 전화 좀 주시랍니다' 그래. 홍준표 검사라고 하면서.
그래서 내가 바로 전화했지. 그랬더니 홍준표가 '어이 여 사장, 나 홍 검사요, 오늘 우리 만나기로 했죠? 근데 내가 오늘 여 사장 만나는 거 생각 좀 해봐야겠어' 그래. 느닷없이 그래. 내가 무지하게 기분 나빴어. 그 사람 말투가 경상도 말투인데다가 힘을 세게 줘서 한다고. 그 자리에서 내가 '만나기로 해놓고 시간 닥쳐서 이러면 됩니까? 다음에 연락해서 만납시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어버렸어.
그것이 홍준표가 나한테 두 번째로 기분 나빠 버린 건이야. '나보다 높은 사람을 알고 지내는 사람이라 나를 깡그리 무시하는구나' 고깝게 생각한 거야. 나를 알아볼 만큼 알아봤는데도 흠이 될 만한 것이 안나오니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자기가 불쾌한 감정만 있었던 거야.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나서 추석이 됐어. 1991년 추석 때였을 거야. 명절이 되니까 가까운 사람들에게 선물들을 하지 않나? 그때 전자제품을 취급하는 친구가 자기 형까지 동원해서 자기가 취급하는 물품을 추석 명절 선물용으로 구매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주방용품 세트를 많이 샀어."
"홍준표가 광주에 오면서부터 내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 광주광역시 북구 우산동 현대아파트 전경. ⓒ 오마이뉴스
- 왜 주방용품을 샀나?
"지금은 흔하게 (수입 주방용품을) 사는데 그때는 수입품이 특별해. 당시 텔레비전도 수입품 소니가 좋듯이. 쌍둥이 레이저 칼이라고 해서 세트로 나온 게 있었어. 7만 원 정도 한 것하고 헹켈 칼 한 세트에 11만 원씩 주고 샀어. 그 두 가지를 은사님부터 시작해서 많은 지인들에게 선물로 보내줬어.
그때 총 2000만 원어치 사서 지인들에게 보냈어. 그렇게 정을 나눌 때니까. 그때는 자동차 기사가 아파트에서 세차도 하고 그랬어. 기사가 경비실 경비원들도 다 알고. 경비원들을 잘 아니까 사장이 나올 때까지 경비실에서 기다리기도 하고 담배도 피우고 그럴 때야. 그 선물을 홍준표가 살고 있는 통로에만 네 군덴가 다섯 군덴가 줬어."
- 현대아파트 5층에?
"5호, 6호 라인이야. 홍준표는 506호, 내 친형도 1506호. 그때 나는 1503호에 살았어. 거기가 제일 크고 좋은 아파트라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선호했어. 아파트 단지에만 20군데 정도 선물했을 거야. 나중에 조선대 병원장도 두 번이나 했고, 요즘에는 요양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분이 있는데 그 분 이름이 '홍순표'야.
그 양반이 홍준표 라인에서 사는 분이여. 1305호인가 1105호인가 그랬어. 우리 기사가 거기 갔는데 마침 홍순표씨가 세미나 참석차 외국에 나가 있었어. 근데 우리 기사가 외국 세미나에 간지 어떻게 아나? 그래서 선물세트를 경비실에 준 거야. 그때만 해도 집앞에 두고 갈 수는 없을 때니까.
근데 경비가 홍준표가 들어오니까 홍준표한테 그것을 줘버린 거여. 선물세트에 '백제관광호텔 여운환'이라고 돼 있으니까 홍준표가 내심 기분을 조금 가라앉혔겠제. '드디어 여운환이 나한테 꼬리를 내리는구나.' 그것을 자기 마누라한테 주니까 마누리가 '이거 굉장히 좋은 선물이네' 그랬다는 거여. 월급받는 사람이 그런 것을 사기 어려울 때니까. 그때는 11만 원이지만 지금으로 치면 상당한 값이 나가는 선물이잖아. 그래서 자기 마누라가 좋아하더라고 나중에 홍준표가 말해주더라고.
내가 홍준표란 사람이 광주에 오면서부터 내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고, 불행이 소리없이 왔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어. 그때는 경비가 하루 근무하고 하루 쉬고 그랬어. 그러니까 그 경비도 그 다음날 쉬고 그 다음날 출근했어. 우리 기사가 '선물 잘 전달됐죠?' 물으니까 됐다고 하면서 '홍준표 검사 맞제잉?' 그런 거여. 홍순표인디 선물이 잘못 가분 거야. 우리 기사가 '검사가 아니고 의산디' 이렇게 얘기했지. 그러니까 경비가 (홍준표 집에) 가서 선물을 찾아와부렀어. 포장 찢어진 것을 붙여서.
고약한 홍준표한테는 무지무지 하게 기분이 나쁜 거여. 저자세구나 생각했는데 아닌 거여. 정말 선물이 잘못 전달돼 홍준표에게 갔다고 하자. 내가 그것을 찾아올 사람은 아니여. 그냥이라도 선물할 수 있고, 나한테 큰 돈도 아닌데. 근데 선물을 찾아온 거여. 나는 몰랐는데 그런 일이 있었어. 홍준표를 세 번이나 기분 나쁘게 해부렀잖아. 그 중에서도 이것이 결정적으로 기분 나쁘게 한 거여. 홍준표가 굉장히 기분 나빠 있었어.
홍준표가 보기에 '이 놈이 광주에서 무지하게 잘 나가는 것 같고, 옛날 건달 생활도 했고, 건달들이랑도 연결돼 있어서 털면 바로 먼지가 나올 것 같은데 안나오니 속으로 부글부글했어. 자기 부장은 '여운환 사장 만나봤냐?'고 물어보고.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났어. 근데 홍준표랑 골프장에서 골프쳤던 백남중이 몇 차례 전화했어. '어이 친구, 홍 검사 한반 만나불소. 홍 검사가 친구한테 호감을 가진 것 같네. 만나자고 하니까 오늘 한번 만나불소.' 홍준표가 명색이 검사고, 그 친구한테 내가 너무 뻐긴 놈이 될 것 같아서 만나자고 했어. 그래서 만나자고 했더니 사무실(검사실)에서 만나자고 해. '아주 독특한 사람일세.'
그래서 내가 홍준표 사무실로 저녁에 간 거야. 그때가 1991년 9월 말경이야. 내가 가니까 홍준표가 반갑게 하더라고. 그래서 홍준표하고 나하고 지 방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어. 근데 말투가 막 자기를 과시하는 투여. 자기 뽐을 내고. 그러면서 서울남부지검에 있었을 때 이야기를 하더라고. '노태우 대통령 선거자금을 정덕진이가 댔는데 이것을 자기가 파헤쳐서 구속할라고 자료를 이렇게 모아놨다'고 하면서 캐비닛을 열어 자료를 보여줘. 그 자료가 다 정덕진이 자료라고 하면서. 그래서 서울 가면 정덕진을 수사해서 잡어넣을 거라고 폼을 잡더라고.
나는 속으로 '니가 정덕진이 잡아넣을려다가 니가 먼저 옷 벗겄다'고 속으로 비아냥댔지. 내가 당시 정덕진을 모르지만 소문은 들어서 알고 있제. 호텔하고 슬롯머신 한다고. 홍준표가 계속 지 무용담을 해서 듣기도 싫더라고. 그런데 홍준표가 나한테 '자기가 골프를 시작했는데 골프나 한번씩 치자'고 그래. 그때만 해도 검사가 골프장을 맘대로 다닐 때가 아니여. 심지어 검사나 공무원들은 자기 상관보다 좋은 차를 못탔어. 좁은 광주 지역사회에서는 자동차 남바(번호판)만 봐도 누군지 알 때였으니.
근데 홍준표가 '광주는 좀 그렇고 이리로 가서 치자'고 글더만. 그래서 내가 '검사님, 제가 내일 모레 프랑스를 가니까 갔다와서 운동 한번 하시죠' 그랬어. 글고 속으로 '골프를 시작했다고 하니까 프랑스 갔다 올 때 골프채나 좋은 것으로 하나 사다줘야겠다'고 생각했어. 맨날 씨잘데 없는 이야기만 하고 그래서 내가 '검사님, 남중이한테 급히 연락받아서 여기 왔는데 저도 서울에서 손님이 와서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먼저 가야겠습니다, 프랑스에 갔다와서 뵙지요' 그랬어.
그랬더니 홍준표가 '여 사장, 나하고 좀 놀다가 아파트도 같으니까 같이 들어갑시다, 나는 12시에 들어가도 마누라가 언제든 밥 차려줍니다' 그래. 내가 '저는 오늘 급히 와서 그렇습니다. 이해해주십시오' 그러고 나왔어.
▲ 여운환 아름다운컨벤션 대표가 지난 10월 25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를 만나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차를 내리고 있다. ⓒ 소중한
글고 이틀 있다가 내가 프랑스를 갔어. 그때만 해도 휴대폰이 있나 뭐가 있나? 호텔에 들어오면 교환대 콜렉트 콜로 집에 전화할 때여. 그날도 이틀 만에 전화했어. 근데 아내가 '보람이 아빠가 전화해주라고 했다'고 그래. 보람이 아빠가 남충현 부장이여. 그래서 내가 남 부장에게 전화했제. 남 부장이 뭐라고 하냐 하면, '야 운환아, 홍준표가 사고를 쳤다. 곤란하게 됐으니 수습될 때까지 당분간 들어오지 말고 일이 끝나더라도 조금만 더 기다려라, 곧 수습될 거다'고 해.
근디 내가 프랑스에 며칠 있다가 바로 들어와 부렀어. 바로 들어와서 홍준표한테 전화했어. 그랬더니 홍준표가 깜짝 놀라더라고. 그러면서 나한테 어디냐고 그래. 그래서 내가 '서울입니다' 그랬어. '검사님 어떻게 된 겁니까, 세상에 이럴 수 있냐?'고 푸념했지. 그러니까 홍준표가 '여 사장, 지금 내려오면 안됩니다' 그러더라고. 내가 어처구니가 없었지. 그렇게 전화가 끊어졌어. 그 다음날 사전구속영장을 받았어 지금은 영장실질심사가 있는디 그때는 없을 때여. 그러니까 내가 검거되면 바로 교도소로 가는 거여.
홍준표는 내가 들어온 뒤에야 출국금지를 시켰어. 그러니까 얼마나 교활하고 간사한 사람이여? 그런 혐의로 나를 조사할 거면 나를 못나가게 해야지. 한국에 들어왔다고 하니까 그때서야 출금시킨 거야. 그때 자기가 나한테 몇 가지를 제의했다고 자기 책에다 썼는데 뭘 제의해? 소설도 아니고.
바로 다음날 <조선일보> <한국일보> 1면 특종으로 기사가 나가부렀어. 그때부터 말도 안되는 도망자 신세가 된 거여. 틈틈이 홍준표에게 전화해서 '검사님, 어떻게 된 겁니까? 사업하는 사람을 이렇게 하면 어쩝니까?' 그랬더니 홍준표가 '좀 기다리라'고 하더라고. 근데 전화 위치를 추적했어. 그래서 검거됐지."
"검사님... 폭력배 두목, 부두목을 검사가 임명하나요?"
- 어디서 검거됐나?
"서울 방배동. 홍준표, 정말 무서운 사람이여. 나하고 악수하고 프랑스 잘 갔다 오라고 했는디... 국제PJ파 두목이 김길용이여. 지금까지도 김길용이여. 김길용이 그때도 두목이고 지금도 두목이여. 이것은 경찰이 관리해온 대장에 나와. 거기에는 두목이 단 한 번도 바꿔지지 않았어.
김길용이 1991년 범죄와의 전쟁을 하면서 경찰에 의해 국제PJ파 두목으로 구속돼 검찰로 송치됐어. 그래서 검찰에서도 김길용을 국제PJ파 두목으로 다 인정해서 조사했어. 홍준표가 있었던 광주지검 강력부에서 다 수사해서 기소했어. 경찰에서도 그렇게 올렸고, 검찰에서도 김길용을 두목으로 기소해서 법원(1심)이 김길용에게 두목으로 인정하고 징역 5년을 줬어.
그런데 김길용이 고등법원 선고만기일 10일을 남겨놓고 재판장에게 탄원서를 썼어. '재판장님, 저는 두목이 아니고 부두목입니다.' 다 코치받아서 썼겠제. '두목이 되려면 저는 여건이 부족합니다. 제 위로 두목이 네 사람이 있습니다. 그 네 사람이 전희장, 여운환, 현희홍, 유재학입니다. 저는 부두목입니다.' 그러니까 홍준표가 바로 애를 불렀지. 홍준표가 탄원서대로 진술하라고 했어. 안 글면 탄원서가 거짓이라고 재판부에 말한다고. 김길용은 가만히 앉아서 형을 2년 깎아부렀어. 광주고등법원에서 부두목으로 인정받은 거지."
- 국제PJ파의 진짜 두목인 김길용이 1심에선 두목, 2심에선 부두목으로 인정받았다?
"탄원서 하나로 그리 됐어. 거기에 홍준표의 장난이 있었다고 생각해. 내가 홍준표한테 조사받으면서 그랬어. '검사님, 무슨 폭력배 두목, 부두목을 검사가 임명하나요? 20년 가까이 조사 한 번 받은 적도 없고, 깡패 행세도 안한 사람인데. 내가 깡패로 행세했으면 구속은 안 됐어도 입건은 됐을 것 아닙니까? 그런 상황인디 나를 두목이라고 당신이 정하면 끝나는 거요?' 심지어 내가 판사 앞에서 홍준표는 정신감정을 받아야 한다고까지 얘기했어.
내가 프랑스 있을 때 그렇게 만든 거여. 암튼 내가 구속돼 재판받았잖아. 그때 홍준표가 이것저것 증거를 대. 그때 국제PJ파 행동대장인 박주화가 등장해. 이 친구가 교도소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 이 친구를 잡아다가 '협조하면 너를 봐주고, 안 하면 거시기한다'고 무지하게 공갈을 쳐서 진술을 받았어. 그 진술조서를 갖고 홍준표가 공판기일 전 증거보전신청을 법원에 했어. 공갈쳐서 받은 진술을 증거라고 신청한 거야.
그런데 재판이 다 끝난 뒤에 이런 증거는 절대 써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위헌판결이 났어. 누가 위헌신청을 했냐? 홍준표에게 구속됐던 정치인 박철언이야. 홍준표가 박철언을 구속하는 데 결정적으로 활용한 게 내연관계에 있었다는 홍성애야. 그 홍성애라는 여자를 이런 식으로 만들었어. 그러고 나서 홍성애를 미국으로 쫓아버려. 그러니 홍성애가 어떻게 미국으로 도망가지 않을 수가 있었겠어? 이런 절차와 관련해 박철언이 위헌신청을 했어. 이것은 검사만을 위한 증거보전 절차여서 공평하지 않다고. 그러자 헌재가 이것을 위헌으로 판결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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