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노태우의 '범죄와의 전쟁'에 편승했다"

[인터뷰] 여운환,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를 쏘다 2부-①

검토 완료

구영식(ysku)글·사진소중한(extremes88)등록 2018.01.08 14:35

여운환 아름다운컨벤션 대표가 지난 10월 25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소중한


여운환(63) 아름다운컨벤션 대표는 전남 곡성군 오산면에서 태어났다. 한학자였던 할아버지와 면장을 지낸 아버지를 둘 정도로 집안 환경은 좋았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폭력서클에 들어가면서 '건달 세계'에 들어섰다. 하지만 지난 1974년 폭력 전과로 한 달 간 구속된 뒤 마음을 잡고 화공약품 대리점, 모텔, 제과점, 호텔, 슬롯머신장 등을 운영하는 사업가로 변신했다.

여 대표는 "국제다방과 PJ음악감상실이 한 건물에 있었는데 우리가 그 근방을 무대로 놀았다고 해서 경찰이 '국제PJ파'라고 이름을 붙여줬다"라며 "하지만 나는 그때 광주 시민회관 앞에서 놀았던 '시민파'였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김태촌도 시민파에서 놀았고, 뿌리로 보자면 김태촌의 서방파도 시민파 계열이다"라고 덧붙였다. 

당시 검경은 국제PJ파를 '서방파의 재건'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여 대표는 '시민파' 조직이 없어지는 과정에서 조폭 생활을 끝냈기 때문에 국제PJ파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국제PJ파를 만든 적도, 거기에서 활동한 적도, 자금을 지원한 적도 없다"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1991년 광주지검 강력부 검사 시절 자신을 '국제PJ파 두목'으로 구속한 것을 두고 여 대표는 "사적인 감정에다 홍준표의 영웅 심리가 작용했다"라며 "노태우 정부의 '범죄와의 전쟁'에 완전히 편승했다"라고 분석했다. 그는 "거기에 편승해서 부장, 차장을 제끼고 검사장에게 직보했다"라며 "당시 광주에서는 '홍준표 부장'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라고 말했다.

홍 대표가 자신의 자서전에서 여 대표를 구속하기 전 자기 방으로 불러 1) 광주를 떠나라 2) 부하 조직원에게 칼을 맞아라 3) 자기한테 붙잡혀라 등 세 가지를 제안했다는 것도 "황당무계한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자기가 나를 조사해서 어머어마한 폭력배로 단정했다면 왜 나한테 그런 걸 제안하나?"라며 "바로 구속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을 제안한 것은 직무유기다"라고 꼬집었다.

슬롯머신사업과 관련해 여 대표는 "당시 슬롯머신사업은 나라에서 정식으로 허가해준 사업이었는데 홍준표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슬롯머신이 없어졌다"라며 "마치 슬롯머신 수익이 조폭들의 운영자금으로 빠져 나간다고 얘기하는데 대한민국에 조폭들이 관광호텔 슬롯머신장을 운영하는 데는 거의 없었다"라고 주장했다.

"고등학교 때 방황하다 건달 생활... 한 번 구속된 뒤 마음 잡아"

- '건달'이라는 표현이 좀 그렇지만 언제부터 건달 생활을 한 건가?
"나는 남이 건달 생활을 한 적이 있냐고 물으면 '있다'고 대답해.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방황했어. 학업을 등한시하고 방황했다고. 그러면 건달 생활을 언제까지 했냐고 하면 군방위 복무 전까지야. 그때가 1975년 말인가 그래. 그때 한 달간 구속됐었다고. 그것을 끝으로 나는 마음을 잡았어. 어울려 다닌 친구들과의 만남도 자제하고. 그때의 목표는 지금의 애들 엄마와 결혼하는 거였어. 마음을 못잡고 건달 생활을 계속 하면 결혼도 못하고 내 인생도 망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

사실 난 그때 중형을 받았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고 나왔으니까. 그때는 징역 2년이라고 하면 엄청난 형이었어. 지금의 10년형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2년이란 세월이 엄청 클 때 아녀. 누구라도 그런 형을 받고 1년 정도 교도소에 수감되면 인생 끝났다고 할 정도였어. 오죽했으면 교도소 가는 사람들이 교도소라고 안하고 '형무소'라고 했겠어. 그렇게 표현한 것처럼 그땐 거길 가면 큰 일이 생기는 것이나 진배 없었어. 그런 것들 때문에 마음을 잡을 수밖에 없었어."

- 왜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건가?
"학교 다닐 때 서클 같은 게 있었어. 지금의 동아리가 아니고 거의 다 폭력 서클이었다고. 그 서클에 어울려 몰려 다녔던 거지. 근데 조직폭력, 범죄단체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어. 그냥 어울려 다니는 패거리였어. 부모님 속썩이고, 다니다 보니 패싸움하고.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선후배가 정해지고. 그렇게 몰려다녔던 패거리다 보니 우리하고 친하지 않고 조금 적대감을 갖는 사람들끼리 싸우면 그게 패싸움이 되고.

그렇게 해서 잡혀가고 조사받는 과정에서 경찰관들이 패거리들이 잘 다녔던 단골집이나 다방이나 음악감상실 이름을 붙여서 '무슨 파' '무슨 파' 이렇게 지어놓았어. 근데 폭력배가 강령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경찰에 의해) 그냥 만들어졌어. 글 쓰는 사람도 없어서 회칙이고 뭐고 없었어."

- 처음에는 김태촌의 서방파 활동에서 활동하지 않았나?
"내가? 그것도 소설화돼 있는 거야. 김태촌은 나랑 나이 차가가 몇 살 있지만 (학교로는) 내 1년 선배야. 김태촌이 학교를 늦게 다니는 바람에 1년 선배로 같이 어울렸어. 그때 어울린 사람 중에는 마음 잡은 사람도 있고, 못잡은 사람도 있고.

그러다가 김태촌이 서울로 갔어. 우리는 광주서 생활했고. 그런디 김태촌이 서울에서 폭력사건 사고를 냈어. 사고를 내서 수사기관에서 조사받다가 '니 집이 어디냐?'고 물어보니까 '서방이다'고 한께 '서방파'가 된 거야. 지금도 곧잘 '서방'이라는 표현(지명)을 쓰는데 지금 동신고 앞을 서방이라고 하잖아.

김태촌은 마음을 안잡고 죽 그런 생활을 하다가 여러 사건들에 연루되면서 교도소에 들락거렸어. 김태촌을 추종하는 후배들도 생기고. 옛날보다 조직화가 잘 되고. 그렇게 해서 자기들끼리 조직폭력이라고 하고. 아까도 말했듯 나는 1975년이 끝이었어. 이후 단 한 번도 경찰관 등 수사관서에 입건된 적이 없어."

- 서방파에 가입하지는 않았나?
"전혀. 나랑은 맞지 않는 이야기야."

"나는 국제PJ파가 아니라 시민파여"

여운환 아름다운컨벤션 대표가 지난 10얼 25일 광주의 한 호텔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소중한


- 국제PJ파를 만든 적이 있나? .
"국제다방과 PJ음악감상실이 한 건물에 있었어. 우리가 그 근방을 무대로 해서 놀았다고 해서 경찰이 붙어준 거야. 나는 그걸 만든 사람이 아니고, 거기서 제일 우두머리는 김길용이었어. 아까도 말했듯이 김길용하고 나하고는 나이가 대여섯살 차이야.

김길용이 국제PJ파를 만들어서 느닷없이 '내가 만든 파인데 형님이 두목 하쇼' 하면서 자기가 임명할 것도 아니고. 그런 거는 있을 수도 없고. 경찰에서 국제PJ파를 엄청 관리했을테고, 많은 사람들이 구속되고 입건되고 조사받지 않았겠나? 국제PJ파가 어디 가서 축구시합을 한 적이 있다는데 내가 (두목이나 조직원이면) 이런 데 어울려 다니던지 아니면 그들을 찾아 교도소 면회라도 한번 가봤던지, 이런 거 하나라도 찾아야지. 전혀 없었어."

- 국제PJ파와 어울린 적도 없다?
"내가 국제PJ파 사람들하고 어울렸다는 것은 전혀 사실과 안맞아. 우리가 돌아다닐 때 김길용이는 막둥이였어. 광주 지역은 서울의 구만도 못할 만큼 적잖아. 그러니 서로 아는 체하고, 또 사람이란 게 다 뿌리가 있잖아. 기자님도 <오마이뉴스>에 있응께 <오마이뉴스> 사람들을 잘 알제 다른 언론사 사람들을 잘 알진 않을 거 아녀? <오마이뉴스>를 나오더라도 <오마이뉴스> 선배제 <오마이뉴스> 하고 관련이 없는 거는 아니잖아.

그런 것처럼 국제PJ파는 나와는 관계가 없는 파지만 거기 몇 사람들을 알 뿐이여. 두목인 김길용이나 부두목 등은 과거에 어울린 막둥이들이여. 그 사람들은 마음을 안잡고 있는 사람들이고. 그럼 내가 옛날에 걔들을 알고 지낸 게 죄냐 이거여."

- 보통 검·경이 조폭 계보를 작성하면서 아지트로 삼던 상점, 가게, 자주 출몰하는 지역의 상호를 따서 조폭 이름을 만드는데 국제PJ파도 검경이 자의적으로 붙인 이름인가?
"자의적으로 붙인 거여."

- 그런데 당시 검찰에선 국제PJ파를 서방파의 재건이라고 봤다.
"서방파의 재건이 아니여. 홍준표가 공소장에서 그렇게 어벌쩡하게 쓴 거야. 김태촌 이름도 하나 넣으면 좋을 거 같으니까. 내가 어렸을 때 김태촌과 어울린 적은 있어. 하지만 나는 김태촌 직계가 아니여. 직계파는 백남중이여. 그들은 자기들이 서방파라는 것을 부인 안하고 오히려 좋아해. 나는 그 사람들을 싫어한 사람이여. 우리가 같이 어울릴 때 내가 좋아하는 선배가 있고 싫어한 선배가 있듯이. 내가 좋아하는 선배는 김태촌 말고 따로 있었어. 내가 놀 때는 서방파가 아니었어.

내가 그땐 시민회관 앞에서 놀았어. 대인시장 앞에 영미제과도 있었고. 우리가 학교에서 나와서 시내에 나오면 거기를 좀 왔다갔다 했어. 그래서 '시민파'라고 했어. 시민파가 없어지면서 (조직이) 유명무실화됐어. 선배들도 맘 잡고, 나도 맘 잡고. 그렇게 없어져부렀어.

굳이 뿌리를 찾자면 서방파도 시민파 계열이여. 이미 없어진 시민파 계열. 김태촌도 시민파에서 놀았고, 나도 시민파에서 놀았고. (국제PJ파 두목인) 김길용이도 시민파의 막둥이였고. 그런디 다 없어져부렀어. 경찰이 광주에서는 김길용한테는 '국제PJ파'라고, 김태촌한테는 서울에서 '서방파'라고 이름을 붙어준 거야. 시민파가 있었으면 김태촌은 시민파라고 했을 거여."

접착제, 파레트, 모텔, 룸살롱, 슬롯머신...

1990년 10월 13일,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건전시민운동 단체대표들로부터 수범사례 발표와 건의를 듣고 범죄와 폭력을 소탕하기위한 강력한 실천방안을 천명했다. ⓒ 연합뉴스


- 1974년 말 사건에 연루돼 구속되고 난 다음에 풀려나서 그 세계에는 발을 끊은 건가?
"마음을 잡았지. 그때는 정말로 사소한 것 갖고도 입건이 됐어. 구속도 면치 못할 뿐만 아니라 집행유예로 나와도 2년이란 징역을 외상값으로 살아야 해. 지금은 형법이 바뀌어서 다르지만 그때에는 내가 요만한 것으로 누구하고 폭행사건에 연루되면 나는 무조건 살아야 해. (집행유예) 2년은 받아놓은 밥상이여. 그래서 그런 게 두려웠어. 애들 엄마하고 결혼해야 하는데 처가에서 내가 돌아다니니까 사귀는 것조차 싫어했어. 당연히 결혼하는 것도 경계하고. 내가 마음을 잡지 않고는 결혼할 수 없다고 판단했제.

내 고향이 전남 곡성 오산면이여. 오산면에 가면 유일하게 우리 아버지 공덕비가 있어. 아버지가 민선면장도 하시고, 시골에서는 존경받는 분이셨다고. 할아버지도 한학자였고. 이런 집안이었어. 저희 형제도 나만 빼고는 조금도 빗겨나간 사람이 없어. 우리 형 친구들 중에는 검사도 있고, 판사도 있었어. 그래선지 그 사람들이 막 우월해 보이지도 않았어. 생소하지도 않았고. 그냥 친형 같은 사람들이었제."

- 마음을 잡고 그 생활을 끝낸 뒤에는 사업에 뛰어들었나?
"그랬어."

- 조폭 세계를 떠난 뒤에는 화공약품을 취급하는 공장을 운영했다고 들었다.
"록타이트라는 순간접착제가 있어. 아마 지금도 있을 거야. 그런 화공약품 대리점을 했어. 그런 걸 죽 취급하다가 공업사를 했어. 아시아자동차(기아자동차 전신) 등에 파레트를 만들어서 납품했어. 공장 지으면 갓쇼(합장하는 모양의 지붕)라고 해서 위에 지붕 같은 거 달잖아. 그런 것을 업으로 했어. 아주 열심히 했지. 록타이트 취급할 때에는 대진상사였고, 공업사 할 때에는 경승공업사였어. 내 아들이 경구, 승구여서 아들 이름에서 하나씩 따서 상호를 지었다고. 그게 다 1976년도부터 시작했던 일들이야. 그러다가 1977년에 결혼했고."

- 그걸 해서 돈 좀 버셨나?
"그럼. 그때 내가 모텔도 하나 갖고 있었어.

- 그렇게 번 돈이 종잣돈이 돼서 고려산업, 경승주택개발 등을 운영하고 부동산에도 투자하고?
"그랬지."

- 그러다 백제관광호텔 등 호텔쪽으로 사업을 확장했나?
"그 (호텔 안에) 유흥업도 하고. 1년간 광주에서 신라당이라는 제과점도 했어. 1986년이었을 거야."

- 목포 백제관광호텔과 광주 국제관광호텔에서 슬롯머신장도 운영했는데.
"그때 관광호텔에는 슬롯머신이 있었으니까."

- 목포 백제관광호텔은 본인 소유였나?
"주주가 세 사람이었어. 그 중에 내가 대표이사를 맡았고. 국제관광호텔은 광주 백운동에 있었는데 1990년 말에 합법적으로 계약해서 50%의 지분을 얻었지."

- 국제관광호텔의 지분 50%를 얻은 건가?
"슬롯머신장만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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