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자 비디오테이프의 진실
"홍준표의 언론플레이는 악랄했다"

[인터뷰] 여운환,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를 쏘다 3부-①

여운환 아름다운컨벤션 대표가 지난 10월 26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소중한


지난 1991년 12월 4일 홍준표 당시 광주지검 강력부 검사는 80여 분짜리 야쿠자 비디오테이프를 공개했다. 여운환 아름다운컨벤션 대표가 지난 1988년 부산 칠성파 두목 이강환씨와 함께 일본 오사카에서 야쿠자와의 형제 결연식에 참여했다는 증거였다. 홍 대표는 "일본 야쿠자가 여씨 등을 초청해 폭력조직의 국제적 연대를 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 대표는 "가수 남진의 요청으로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민속씨름대회에 참석했고, 한 교민이 마련한 점심 자리에 갔다가 거기서 열린 사카즈키(야쿠자끼리 의형제를 맺거나 충성을 맹세하는 의식)를 구경한 것일 뿐"이라며 "주최 측으로 요구로 '전남·광주 여운환'이라고 써줬는데 '전라도 이사 여운환'이라고 써서 붙였다"라고 반박했다. 

1심 재판부도 "한국측 참석자들 중에 최아무개 등은 '수원회', 박아무개 등은 '화랑신우회', 안아무개 등은 '칠성파'라는 소속단체가 명확히 기재돼 있음에 반해 여운환 등은 소속단체 대신 '전라도'라는 지역 명칭이 기재돼 있는 점을 비춰 보면 이것이 그가 국제PJ파의 두목임을 증명하는 직접적인 증거가 될 수는 없다"라고 판결했다.

여 대표는 "나를  일본 야쿠자들하고 이렇게 결연식을 하는 어마어마한 폭력배 두목으로 만들기 위해 비디오테이프를 흘렸다"라며 "쌍둥이 칼 전달 사건과 야쿠자 비디오테이프의 언론플레이는 완전히 성공했다"라고 지적했다.

여 대표는 "홍준표의 언론플레이 수준은 광적인 데다가 너무나 파렴치하고 악랄하다"라며 "내가 '홍준표는 언론에 날 일이 있으면 자기 아버지나 장인이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입건되면 구속이라도 시킬 사람'이라고 평한 적이 있는데 그럴 정도로 언론에 집착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1심 판결이 나기 전인 지난 1992년 4월께 김영암 광주경찰서 강력반장이 검찰 쪽 증인으로 법정에 나와 "여운환은 오래 전에 손을 씻고 사업을 하는 사업가지 절대 깡패가 아니다"라고 진술해 홍 대표를 당혹스럽게 만든 적이 있다. 여 대표는 "지금도 국제PJ파가 존재하지만 여운환을 두목으로 하는 국제PJ파는 세상에 없다"라고 주장했다.  

"최인주 과장이 내 비호세력... 그것은 거짓말"

- 1993년 5월 15일 최인주 과장이 자살했는데 그 소식을 옥중에서 들었나?
"그렇다."

- 어떤 사람이었나?
"최인주 과장은 나랑 한 아파트에서 살았어. 최인주 과장 부인하고 집사람이 친구고. 1953년생 뱀띠. 지금도 1주일에 한 번 정도 만나서 차를 마시는 관계여. 특히 최인주 과장 큰아들과 내 큰아들이 아주 가까운 친구여. 친구들 중에서도 유별나게 가까운 친구.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같이 여행을 다닐 정도였어.

그리고 최인주 과장이 박주선 국회부의장하고 보성중학교 동창이여. 박주선 부의장 말에 따르면 가둬놓고 공부해서 시험 보면 최인주 과장이 1등, 자기가 2등이라고 하든마. 최인주 과장은 좀 놀기를 좋아해서 가둬놓고 못놀게 하면 1등이라는 거지. 그만큼 우수한 분이여.

최인주 과장은 검찰청에 들어와서 죽 검찰청에서 근무했어. 그러다가 과장까지 됐지. 내가 최인주 과장을 도울 위치지, 최인주 과장이 나를 도울 위치는 아녀. 홍준표는 최인주 과장이 나를 도와줬다고 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이여. 홍준표 말대로 내가 정관계에 구명로비해 자기한테 압력을 넣을 정도라면 검찰청 수사관한테 뭘 도와 달라고 하겠나? 더욱이 그동안 최 과장이 도와줄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검찰 일반직들이 홍준표를 많이 싫어했대. 홍준표가 너무 건방지고 직원을 아랫사람으로 부리려고 하니까. 최인주 과장도 홍준표가 하도 모난 짓을 하니까 싫어했다고. 근데 홍준표가 일반직 수사관들이 내 비호세력이라고 했어. 그러면 나를 비호한 사람을 지명해야 하는데 지명한 사람이 없어. 그 사람들이 나를 도와줬다면 뭐라도 하나 나와야 할 것 아녀? 나를 위해서 도와주고 자기에게 영향력을 끼쳤다면 말이여."

- 최인주 과장은 당신의 슬롯머신 사업에 투자했는데.
"내가 목포 백제관광호텔을 매입했을 때 최인주가 그 호텔에 5% 정도 투자했어. 우리가 호텔을 23억 원에 샀어."

- 슬롯머신이 아니고 호텔에 투자한 것인가? 당신 책을 보면 최인주가 슬롯머신사업에 투자한 것으로 돼 있던데. 
"아니여. 호텔을 매입할 때 5%를 투자했어. 글로 슬롯머신은 나 혼자 한 게 아녀. 우리 호텔에서 직영했어. 호텔은 나를 포함해 세 사람이 운영했고, 호텔에서 직영하고 있어서 슬롯머신만 떼줄 수가 없었어."

- 23억 원의 5%면 1억 원이 넘지 않나? 
"원래는 1억1500만 원인데 우리한테 6000만 원만 줬어. 나머지를 최인주가 마련할 수 있다고 해서 일단 5%의 지분을 준 거여. 그때 슬롯머신이 잘 될 때였어. 그런데도 최인주 과장은 처음 6개월 동안 배당을 전혀 안 받아갔어. 그래서 나중에 부인이 배당금을 포함해 1억1500만 원을 받아갔어." 

'최인주 과장'은 왜 자살했나?

- 공무원이 어떻게 그런 큰 돈을 투자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최인주 과장이 부자라곤 할 수 없지만 시골에 재산이 좀 있었어. 어머니 한 분 계셨는데 형제도 없고. 당시 슬롯머신은 수익이 보장되는 데다가 실제 수익도 좋았어. 그래서 투자해보라고 한 거여. 손해볼 일이 1%도 없는 일이었으니까. 나는 정말 좋은 마음으로 최인주 과장에게 기회를 준 거여."

- 슬롯머신 배당률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인주의 호텔 투자는 일종의 특혜, 뇌물 아니었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최인주 과장이 목포관광호텔에 5% 지분을 투자했을 때 그분은 광주지역에서 근무도 하지 않았던 시기였어. 몇 년 간을 타 지역에서 근무하다가 1991년 말경에 광주로 발령받아 온 분이여. 게다가 무허가 오락실 영업도 아니고 합법적으로 허가받아 정상적으로 영업을 해온 '관광호텔 내 오락실'이었어. 그동안 단 한 차례도 불법으로 단속받은 적도 없고."

- 자살했을 때 호텔 지분 참여 사실이 드러났는데. 
"내가 이야기했제. 홍준표가 나쁜 소문을 퍼뜨려 그 분이 오해받고 있었으니까."

- 그게 부담스러워서 자살한 것 아닌가?
"전혀 아니다. 본인은 나에게 너무너무 미안했을 거여. 내가 정말로 진심으로 배려하고 잘 해준 사람이고, 자기도 나를 잘 알고. 그래서 검찰청에서 '내가 수년 동안 보고 살았는데 여운환은 깡패 아닙니다, 내가 보장합니다'라고 했대. 나는 자기에게 여러 가지로 배려했는데 자기는 억울해하는 나를 위해서 조금도 영향을 미칠 수 없어서 눈물이 많이 났대 . 영향을 미치면 홍준표가 가만 놔둬겠어? 너무 미안해서 술 먹고 집사람에게 전화해서 '승구 엄마, 정말 죄송해요'라고 몇 번을 전화하더래. 지금 최인주 과장 부인은 홍준표 말만 나오면 경기를 일으켜부러."

- 사건이 터진 이후 최인주 과장이 당신을 적극 두둔했나? 
"많이 두둔했지. 정말로 그런 사람 아니라고. 검사실에서 조사가 끝나고 난 뒤에 나를 자기 방으로 불러서 한 번 봤어. 펑펑 울더라고. 내 수갑 찬 모습을 보고. 자기가 봤을 때도 너무나도 황당하니까. 그렇게 여린 사람이여. 지금도 안 잊어부러."

- 그럼 왜 자살했다고 보나?
"홍준표가 최인주 과장을 다른 일로 내사한다고 하면서 많이 괴롭힌 모양이더라고. 이로 인해 피해망상증에 시달렸다고 하드만. 지금도 최인주 과장 부인이 홍준표 이야기만 하면 경기를 일으키고 적대감을 보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거제."

'야쿠자 비디오테이프'의 진실

여운환 아름다운컨벤션 대표가 지난 10얼 25일 광주의 한 호텔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인터뷰를 하는 도중, '일본 야쿠자 의식 참석설'을 반박하기 위한 판결문을 내보이고 있다. ⓒ 소중한


- 이제 야쿠자 비디오테이프 이야기를 하자. 당신이 수배받고 있는 동안에 당신이 전라도 대표로 일본의 야쿠자 의식에 참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가수 남진씨 알제? 1986년엔가 내가 광주에다 신라당이라는 제과점을 만들었어. 3층짜리였는데 (중국집인) 왕자관하고 붙어 있었어. 그 당시 광주에서 제일 유명했던 제과점이던 궁전제과랑 경쟁이 됐어.

그래서 내가 시설을 좀 좋게 하려고 레이저 디스크를 쓰는 멀티비전을 설치했어. 그때 남진형이 활동을 안하고 목포에 내려와 있을 때인데 신라당 띠 두르고 홍보도 해주고 그랬어. 그렇게 열심히 나를 도와주고 지금도 형제 같이 가깝게 지내. 그 형이 일본에서 민속씨름대회를 하는데 자기 포함해서 비행기표가 2장이 나왔대. 원래는 매니저 것까지 나오는디 그때는 매니저가 없었어. 남진형이 활동을 세게 안할 때여. 미국에서 들어와서 목포에서 자기 사업하고 있었제.

그래서 나더러 '심심하면 일본에 같이 가자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형님 들어올 때 레이저 디스크하고 멀티비전 프로젝터를 사서 갖고 와도 괜찮을까요?' 물어봤어. 그런께 남진형이 '명색이 나도 노래 부르는 가수인데 판 가지고 오는 게 문제가 되겄능가? 괜찮할 것이네' 그래. 그래서 '같이 갈랍니다' 해서 갔지. 그때가 언제냐? 1987년인가 1988년인가 그랬어. 일본을 가니까 전부 씨름선수, 감독들이 있어. 그리고 부산 지역 폭력배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어."

- 부산 칠성파?
"맞어. 거기 칠성파 두목으로 이강환이라는 사람이 있었어. 민속씨름협회 부회장이고. 그 사람들이 다 같이 움직이더라고. 가수는 남진형하고 현철, 김연자 셋이 왔고. 김연자는 일본에서 살드만. 한 호텔에서 자고 같이 움직였어. 이강환이랑 일본 야쿠자랑 잘 아는 사이였나 봐. 우리가 점심을 먹는 장소가 즈그끼리 사카즈키 의식을 하는 곳이었어. 뭔 결의를 한다고 하드만."

- 사카즈키는 야쿠자끼리 의형제를 맺거나 충성을 맹세하는 의식이다.
"뭔 결연식, 협약식 같은 걸 하는 거여. 내가 그걸 구경했어. 돈 주고도 볼 만한 것인디 거기까지 가서 그 구경을 왜 안하나? 그것도 내가 비디오 구입까지 부탁했어. 우리도 다 찍혔고 해서. 근디 안해주드만. 하나 구입할라고 했는디. 그날 의식에서 앉은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한자로 쓰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 이름을 한자로 썼어.

그때는 광주광역시가 아니고 광주직할시여. 내가 할(割)자가 기억이 안나더라고. 그래서 '全南·光州'(전남·광주)라고 써부렀어. 그러니까 그쪽에서 '전라도 이사 여운환' 이렇게 써서 붙였어. 나 말고도 전라도 사람들이 몇 명 있었어. 그 사람들도 다 '전라도 이사 누구' 이렇게 붙어 있었어. 그 명찰 앞에 앉은 거여. 그때 비디오로 다 찍었어.

근데 왜 무죄 나왔냐? 그 사람들은 다 지그 조직 명칭을 땄어. 칠성파 누구, 수원파 누구, 화랑신우회 누구, 그렇게 붙어 있었어. 근데 우리는 '전라도 이사'여. 전라남북도 합쳐서 전라도라고 하잖아. 그때 마침 전주사람 한 명, 광주사람 두세 명이 왔어. 그 사람들은 씨름협회 관계자들이여. 그래서 우리 변호사 이렇게 주장했어. '지금 검사가 주장한 것처럼 여운환이라는 호남 최대 조직 국제PJ파 두목을 초대했다면 왜 조직 이름이 없나? 국제PJ파 여운환이렇게 썼어야 하는 것 아니냐?' 그걸로도 무죄가 입증된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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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3부-②] "야쿠자 의식 구경한 강호동이 조폭이여?"
[인터뷰 3부-③] 강력반장, 홍준표를 당혹하게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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