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침이 심한 사회생활의 탓에 개인적 생활이라고 할 만한 영역이 적은 것은 나만의 문화적 조건은 아닐 것이다. 어울려 대화하며 술 마시고 여럿이 뭉쳐 영화나 연극 구경 가는 게 거의 전부인 문화적 조건에서 개인적 독서를 하는 경우만이 거의 유일한 도시인의 사생활의 풍경이다.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개인적으로 영상물을 관람하는 사생활이 하나 더 나타나 텔레비전의 관람을 대체하였다. 텔레비전의 체험은 본질적으로 집단 체험이다. 극장은 그런 기술적 상황의 변이에 따라 진화하여 시공간과 주체의 몸을 탈피하는 전화를 하는데 그런 내 개인사의 흐름으로의 반영에 존재하는 영화가 레지던트 이블이다.나는 레지던트 이블의 전 편 중 거의 대부분을 봤는데 각각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전화에 조응하는 개인적 관람 체험이 있어 자랑스럽다. 그것은 주체의 발견이자 객체의 물화하는 전화이다. 물화는 마르크스에서 선택되어 다른 철학자에서 열매 맺은 철학적 실천이다. 사물화, 대상화, 외화, 물상화 따위의 다른 이름이 있고 소외, 물신 숭배와 더불어 의미 삼각형을 구성하는 마르크스의 문화와 예술을 다룰 수 있는 주요 관념이다. 레지던트 이블은 물화하는 인간의 조건을 나타낸다. 선택된 인간이 인류의 생물학적 파국에서 전사로 되어 좀비로 변질된 인간 구성의 조건 속에서 물화되고 있다. 관계와 관계 사이의 바이오 시그널의 화폐로 변질된 좀비들과 주인공, 관리 권력의 가치 삼각형은 권력학을 재현하고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물화된 인간으로서의 좀비들, 인간 소외에 분노하는 주인공, 그 모든 자들의 물신 숭배 대상으로 이차적 물화되는 관리 권력층이 배트맨에서의 배트맨, 조커, 사람들의 가치 삼각형을 답습하는 이차적 가치 모형을 구성한다. 영화들에서의 확장성은 주인공의 바이오나 확장자를 따라 번식하는데 인간의 조건은 그 입장에 나타나지 않는다. 인간을 대신한 것이 유물이며 유물론의 물화, 물신 숭배를 전도하는 인간 바이오가 대립자로 등장한다. 물화된 좀비가 가치의 평면을 다양한 양상으로 질주할 때 그것들의 목표는 동일자의 향유인데 정확히 제시되지 않은 채 숨길 수 없는 욕망의 향연으로 물화된다.관리 권력은 누군가의 일종의 물신들이다. 그러나 그러한 숭배를 실제로 하는 대상은 영화 속에는 없고 그것들로 구성되는 것은 관객층이다. 제 노동과 제 노동 생산물로부터 소외되는 데에 항의하는 주인공은 미래와 과거의 자아를 회복하려 하고 그것은 발전해 자아로부터 수렴된 가치 생산물의 천부적 독점권을 회복하려고 한다. 주인공의 전 편에 걸친 자아에 중독된 투쟁의 여정은 이윽고 합목적성을 양도하고야 완성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계급이 아닌 개체로서의 또는 유적이지 않은 존재는 사회 계급 구성의 전 장에서 합목적성을 수행 완수할 수 없다.주인공은 몇 몇 구성원들과 소그룹을 형성하나 시리즈가 진행되는 과정의 생존 경쟁의 합목적성대로 주인공만이 수행 완수할 수 있었다. 만약 영화의 비밀이 물신인 좀비들과의 과학적 계급 유대가 가능했다면 물음은 지도와 대중의 변증법대로 매트릭스 안으로 양자 비트가 되어 복구되는 네오의 전철을 밟았을 것이다. 주인공은 자유주의 철학으로 변종 번식된 좌파 이데올로기의 개체론의 궤적을 밟아나가는 서사 이데올로기의 한 가운데 존재했을 무력한 개별자이다. 전체의 가치론이 과학적으로 세워지는 가운데 서사 구조의 이데올로기성은 현실 창조하는 것이다. 변종과 아형은 과학 유물론과 가치 이데아를 각각 참조한다. #레지던트 이블 #물화 #아형 #사이버 펑크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