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를 쓰고 싶다면, 일단 스타벅스 커피와 어울리는 표지를 만들어라."
국내 한 대형 IT기업 부사장이 '트래픽으로 보는 우리 사회' 강연에서 한 말이다. 이 부사장에 따르면 트래픽은 우리 사회의 유행과 사회 현상을 보여 준다. 이를테면 최근 베스트셀러들의 사진은 스타벅스 커피와 함께 가장 많이 태그됐다.
'유행을 보려면 트래픽을 보라'는 문구는 비단 커피와 책에 국한되지 않는다. 외식업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음식의 맛이 아닌 접시를 봐야 한다. 회색 접시는 사진을 찍었을 때 음식을 돋보이게 하고, 더 많은 트래픽을 올린다.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인생은 한 번뿐)'이란 말의 줄임말이다. 미래를 위해 지금의 불행을 참고 인내하기보다 그냥 현재 눈 앞의 행복을 추구하자는 의미다. 최근 사회 곳곳에서 '욜로'를 외치는 이들이 많다. 보고 싶은 건 보고, 먹고 싶은 걸 먹고, 돈 쓰고 싶을 때 소비한다.
▲ 바다와 책, 그리고 술 한잔 바다 앞에서 한 손엔 책을, 다른 한 손엔 술을 든 사진.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휴가'의 모습이다. ⓒ 이해린
욜로는 주로 휴가와 연관된다. 인생 한 번 뿐이니 즐겨라, 그러니 놀러 나가자는 말이다. 최근 SNS(사회 관계망 서비스)에서 휴가지 트래픽의 최다 태그는 '바다', '책', '술 한잔', '누워서'였다. 지난 여름 휴가철, 가장 많은 트래픽이 몰린 국내 휴가지는 부산과 제주도다. 바다와 그 앞에 놓인 벤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동남아 해변 다낭을 향한 휴가 열풍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바닷가에 누워 한 손엔 책을, 다른 한 손엔 술 한잔을 들고 여유를 즐기는' 사진. 이 사진 한 장이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휴가', 곧 '욜로' 하는 모습이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욜로 현상을 심리학적으로 봤을 때, 이는 방어기제 중 하나인 '합리화'에 해당한다. 합리화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상처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이다. '저 포도는 실 거야'는 여우와 신 포도의 이야기로도 설명할 수 있다.
돈? 모아 봤자다. 집? 평생 벌 돈 숨만 쉬고 모아도 어차피 못 산다. 그러니 지금을 즐기자, 욜로! 란 결론으로 귀결된다.
▲ 비행기 YOLO기사 첨부: 비행기에서 바라본 풍경 ⓒ 이해린
문제는 합리화가 비교적 미성숙한 방어기제에 속한다는 것이다.
프로이드는 감당할 수 없는 심리적 자극에 대응해 우리가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으로 15여 가지의 방어기제를 들었다. 합리화는 목표를 달성 불가능하다고 미리 상정한 채, 그에 걸맞는 이유들을 만들어 낸다. 상처받을 수 있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미리부터 '어차피 안 될 거야'란 주문을 건다. 합리화가 계속되면 새로운 목표 설정을 하려는 동력을 잃고, 무기력해지는 악순환이 생긴다.
욜로를 외치는 우리 사회는 과연 건강한가.
욜로와 비슷한 최근의 유행어로 '시발비용', '지르다'란 단어가 있다. 시발비용이란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들이지 않았을 비용, 예로 주말에 출근하지 않았다면 쓰지 않았을 택시비에 해당한다. '나는 주말에 출근하니 이 정도는 써도 된다'는 합리화가 기반이 된다.
충동구매할 때 자주 쓰이는 '지르다'란 단어 또한 '내가 이렇게 고생했는데 이 정도는 써야지'란 생각이 바탕이 된다.
인 생 한 번 뿐이니 현재를 즐기자는 욜로의 의도, 물론 좋다. 그러나 욜로와 시발비용, 지르다를 습관처럼 외치는 우리 사회가 합리화를 부추기는 건 아닌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 사회가 적절한 목표 설정을 포기하게 하는 건 아닌지, 건강하지 못한 미성숙한 사회로 퇴보하는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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