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의 고향 쥔데르트를 찾다_내 붓과 물감으로 반 고흐를 그린다 from 네덜란드
아프지만 고향을 추억하는 예술가의 흔적을 찾아간 여행
빈센트 빌렘 반 고흐(1853~1890)가 태어나서 11살까지 살았던 네덜란드 쥔데르트(Zundert). 평생을 방랑자로 살았지만, 그의 잠재의식 속에서 쥔데르트는 순수한 어린 시절의 추억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했다. 약 150년이 지난 지금,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아 그 옛날 그가 뛰놀던 길과 강가를 거닐며 그를 추억해본다.
▲ 쥔데르트 마을 입구 사진 ⓒ 이진영
▲ 빈센트를 추억하는 산책로 이정표 방문객을 위한 빈센트 루트 안내 ⓒ 이진영
▲ 쥔데르트 강가 빈센트 반 고흐가 어린 시절을 보낸 강가 ⓒ 이진영
유년기 시절 빈센트는 괴팍한 성격이었고 친구도 별로 없었다고 한다. 결국 11살 때에는 친구들과의 싸움으로 초등학교를 퇴학당하고, 20km정도 떨어진 제벤베르헨으로 전학을 가야만 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그와 동생 테오와의 아름다운 형제애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러시아 조각가 오십 자킨(Ossip Zadkine:1890~1967)이 이런 동상까지 세우게 된다. 동상의 받침대는 고흐가 만년에 입원해있던 프랑스의 생레미 드 프로방스 시에서 기증받았고, 그가 입원해 있었던 정신병원의 흙을 섞어 만들었다고 한다.
▲ 빈센트와 테오 러시아 조각가 오십 자킨(Ossip Zadkine:1890~1967) 작품 동상 ⓒ 이진영
당시 빈센트의 아버지가 개신교 목사로서 일했던 교회 마당에는 빈센트보다 딱 1년 전 사산된 그의 형 또 다른 빈센트의 무덤이 남아있다. 그것도 하필이면 빈센트가 태어나기 정확하게 1년 전 1852년 3월 30일 이곳에 묻힌 형의 죽음은, 그의 부모님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의 빚이 되지는 않았을까
그의 생가 자리엔 박물관이 들어섰고, '이모(aunt)'라고 부를 정도로 친하게 지냈던 이웃의 집은 식당이 되었지만 시청 모습은 그대로 남아있다. 프랑스의 오베르 쉬즈 와주(Auvers-sur-Oise, 1890년 5~7월)는 그가 생을 마감한 곳이지만, 그는 죽기 전 그곳 시청을 작품으로 남겼다. 그런데 그의 그림 속 시청은 이곳의 모습을 훨씬 많이 닮아있다. 세상을 떠나기 전, 빈센트는 고향의 체취를 붓과 물감으로나마 추억하고 싶었던 것일까...
▲ 프랑스 오베르 쉬즈 와주(Auvers-sur-Oise) 시청 - 빈센트 반 고흐 작품 빈센트 반 고흐는 프랑스의 오베르 쉬즈 와주(Auvers-sur-Oise, 1890년 5~7월 거주) 시청을 그림으로 남겼다 ⓒ 이진영
▲ 쥔데르트 시청 빈센트 반 고흐 시절부터 계속 남아있는 쥔데르트 시청 모습 ⓒ 이진영
1888년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 작업할 때, 자신의 왼쪽 귀를 자른 사건은 잘 알려져 있다. 고갱의 연락을 받은 동생 테오가 놀라서 달려오고, 동생을 만난 빈센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금 쥔데르트 시절 같아.'
그가 귀를 자른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자신의 예술 후원자이며,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해 줬던 동생으로부터 곧 결혼한다는 편지를 받고 그 충격으로 그런 기이한 행동을 보였다는 얘기도 있다. 바로 그 상실의 순간, 형을 보려고 한걸름에 달려온 동생의 존재는 '쥔데르트'였을 것이고, 정서적인 고향이었을 것이다.
그의 긴 방황이 시작되었지만, 아련한 뿌리가 남아있는 곳, 이곳 쥔데르트에는 빈센트의 아픈 회귀 소망이 함께 했던 것 같다. 내 어린 시절 뛰어놀던, 지금은 고가도로가 들어선 개천가, 넓게만 보였던 굽이굽이 좁은 골목의 내 고향을 떠올리며, 빈센트의 숨결이 남아있을 것 같은, 네덜란드 어딘가로 발길을 돌려보기로 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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