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에 찬성하는 이유 (2)

정당하지 않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키지 마라, 정치 논리 갖다대지 마라는 비판들… 과연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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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진(kujjiny)등록 2018.01.16 15:54
0.
첫 글을 쓴 이후로 많은 반응을 받았습니다. 악플 천지더군요.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지만, 선플이 단 한 개도 없었을 때는 좌절했어요. 제 글을 읽으면 어느 정도는 설득이 되리라 믿었거든요. 아무튼 제 개인 페이스북 계정에서 반론들을 받았고, 의견을 나누면서 제 생각을 좀 더 가다듬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도 함께 읽어주시면 좀 더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1.
4대 성인 중 하나인 예수는 비유를 즐겨 사용했어요. 그 중 빚진 자의 비유가 있는데 내용은 대체로 이래요. A가 B에게 1억원을 빌려줬어요. 그런데 B가 도저히 갚을 수가 없어요. 그러자 A가 탕감해줍니다. B는 당연히 감사하다고 했겠죠? 자, 문제는 그 다음부터입니다. B는 예전에 C에게 500만원 빌려준 게 있었어요. 그런데 C가 도저히 갚을 수가 없대요. 그러자 B가 난리가 납니다. 어떻게든 받아낸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걸 A가 들었습니다. A는 B를 불러 꾸짖습니다. 여러분이 A라도 B가 참 한심해 보이지 않을까요?

2.
우리 여자 아이스하키 팀이 따낸 출전권은 자력으로 따낸 것이 아닙니다. 아, 절대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들의 4년간 피땀흘려 노력한 것을 폄훼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스하키는 기본적으로 체격 조건 때문에 동양인에게는 불리할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이건 개최국 자동 출전도 아니었어요. 2011년 평창 개최가 확정된 이후에도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은 한국에게 출전권을 주는 것에 부정적이었거든요. 우리 정부가 스포츠 외교력을 총동원해 출전권을 얻어 낸 것이죠.

3.
우리가 출전권을 얻어내면서, 우리 대신 어떤 한 나라는 출전하지 못했을 거에요. 나름 아이스하키가 인기있는 유럽 어디쯤 되겠죠. 그 나라 선수도 4년감 피땀흘려 노력했는데 출전을 못합니다. 그 나라에서는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요? '정치적인 논리'로 한국에 '특혜'를 주느라고 출전을 못했다고. '스포츠 정신이 훼손'되었다고. 가장 피해보는 건 선수들인데, 그 선수들 입장은 생각해 봤냐고 말입니다. 그것도 무려 23명이나 출전을 못하는데 말이죠.

4.
그런데 정작 한국 선수들은 23명이 출전을 못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 절반도 아니에요.(예전 단일팀은 남북 반반이었습니다.) 출전을 못할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팀 선수는 단언컨대 없습니다. 다만 플레이 시간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전체 엔트리의 1/5 수준인 5~6명 정도 엔트리를 특별히 북한 선수를 위해 추가하니까, 단일팀을 구성하지 않았을 때와 대비하면 대략 4/5 정도의 플레이 시간을 가지겠죠.

5. "북한이 끼어드는 건 정당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여론은 이것도 안된다고 아우성입니다. 북한 보고 당당하게 출전권을 따라고 말합니다. IOC와 IIHF는 이미 출전권을 못따는 한국에 출전권을 줬는데도 말입니다. 여러분, 한국에게 주어진 출전권이 정당하지 않은가요? 아니죠. 평창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와 여자 아이스하키에 대한 관심을 아이스하키 불모지인 한국에서도 불러일으키기 위한 옳은 결단이지요. 자 그러면 여러분, 북한 선수들에게도 주어진 5~6명의 기회가 정당하지 않은가요? 맞다고요? 평창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와 여자 아이스하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아, 그래도 아닌가요?

6.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입니다."
저는 앞선 글에서 평창올림픽의 붐업뿐 아니라, 여자 아이스하키 종목 차원에서 보면 한국민들의 관심이 역대 가장 높은 수준으로 향할 것이라고도 적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플레이 시간을 4/5 정도로 유지하면서, 단일팀이 아니었을 때에 비하면 매우 높은 수준으로 국내외 매스컴의 관심이 쏠린다면, 이게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에게도 마냥 손해이기만 하겠습니까? 저는 그래서 그 '소'도 희생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7.
만약 여론이, 그리고 선수들이 그래도 싫다고 해서 단일팀이 무산된다면, 여자 아이스하키 팀의 경기는 한국 선수단 전체 경기의 잘봐줘야 1/n 내지는 그 이하의 관심을 받게 되겠지요. 메달권 아니니까 숏트랙이나 피겨 등에 밀릴 테니까요. 외신이 굳이 한국 아이스하키 팀의 경기를 취재할 이유도 없을 테고요. 나머지 1/5 플레이 시간까지 온전하게 확보하는 대가 치고는, 글쎄요, 1997년 무주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때 아이스하키의 매력에 빠지게 된 저는 많이 아쉬운데요. 한국 아이스하키 팀을 사랑하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8. "스포츠에 정치 논리를 갖다 대지 마세요"
스포츠에 정치 논리를 갖다 대었기 때문에, 한국이 여자 아이스하키 출전권을 따낸 것입니다. IOC는 한국뿐 아니라 수많은 국가들에게도 정치 논리, 그러니까 스포츠를 통한 세계 평화의 이념에 한발짝 더 다가가기 위해 출전권을 배분합니다. 뜨거운 나라 자메이카의 봅슬레이 대표팀을 다룬 영화 <쿨러닝>도 그래서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적도기니의 '개헤엄' 무삼바니가 그래서 출전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 정부수립도 하지 않고 실력도 변변찮았던 대한민국이 70년 전인 1948년 겨울, 생모리츠에 처음으로 태극기를 들고 출전할 수 있었습니다. 평화라는 정치 논리를 갖다 대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9.
도리어 여러분들이야말로 정치 논리를 갖다 대지는 않습니까? 단일팀을 추진하는 한국 정부와 IOC는 '평화'라는 정치논리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정치논리는 어떻습니까. 북핵과 미사일에 대한 짜증, 그래서 북한에게 조금이라도 잘 대해주는 것을 거북스럽게 생각하는 정치논리 아닌가요? (저도 북한 김정은 정권이 짜증납니다. 김정은 개객기) 아까는 스포츠에 정치논리를 갖다 대지 말라면서요. 스포츠는 스포츠일 따름이라면서요. 올림픽의 정신은 참가에 의의를 두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북한 선수들이 몇 명 더 참가하는 것은 올림픽 정신과 스포츠 정신을 더욱 잘 구현하는 것 아닐까요?

10.
정리합니다. 만약 단일팀이 정당하지 않다면 한국 팀의 출전 자체가 정당하지 않은 것이니 우리에게 밀린 그 나라 아이스하키 대표팀에게 우리 모두 사과합시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고 했는데, '대'도 위하고 '소'도 희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소'에게도 좋은 일입니다. 정치 논리 갖다대지 말라고 하는데, 평화와 출전에 의의를 두는 정치논리냐 아니면 북한에 대한 혐오라는 정치논리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11.
저도 물론 단일팀 논란에서 정부가 보인 몇몇 태도가 아쉽고, 무엇보다 팀워크를 맞추고 교감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러분, IOC와 남북 뿐 아니라 세계가 기꺼이 단일팀 출범이라는 그 대의에 동참해 주겠다고 하는데, 여러분들의 청원대로, 단일팀 논의 엎을까요?

12.
이제 진짜 마지막입니다. 사실 단일팀에 대한 거부감은 첫째가 북한에 대한 거부감이고, 둘째는 우리 세대가 겪는 '불공정', '비리채용' 등을 단일팀에서 연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도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일정부분 그 피해를 보는 우리 세대니까요. 하지만 그것이 단일팀에 대한 분노로 향해서는 안됩니다. 조중동과 적폐세력 보세요. 희희낙락거리고 있습니다. 왜냐, 불공정과 비리채용 등에 대한 불만이 그 원 타격 지점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단일팀을 추진하는 정부를 향하고 있으니까요. 기레기들 신난 거 안 보이십니까? 그들은 우리를 레밍 떼라고, 이햐 이번에도 우리 펜대에 잘 놀아나고 있네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이성을 찾고 분노가 진짜 향해야 할 곳에, 이제 함께 분노합시다. 감사합니다.
덧붙이는 글 NewBC(news.newbc.kr)에도 송고하였습니다. 개인 페이스북 계정에도 올라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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