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미와 체덕지

나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하는 우리와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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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호(smug21)등록 2018.01.17 14:21
얼마 전 한초등학교 교무실에서 '체덕지(體德智)'라는 문구를 발견했습니다. 단순화해서 생각하면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지식도 튼튼'쯤이 될까요? 그런데어딘지 모르게 익숙하면서도 낯설었습니다. 그건 바로 제가 학생 시절에 흔히 들었던 말과 순서가 좀 다르기때문이었는데요. 그렇습니다. 저는 '체덕지'가 아닌 '지덕체'라는가르침을 받고 자란 세대입니다. '체덕지'라는 말을 그 학교에서만 쓰는 건지 아니면 언제부턴가 우리사회가 '지덕체'라는 말의 순서를 좀 바꾸어서 '체덕지'라는 말로 사용하기로 암묵적으로 동의한 건지는 잘 모르지만 '지덕체'를 '체덕지'로 바꾸어서쓰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거란 생각이 듭니다.

'지덕체'라는 말을 좀 더 풀이해보면 인간이 생각하는 우주의 질서가 그 안에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너무 거창하게 느껴지시나요? 그렇다면 전통사회에서 지(智)와 덕(德), 그리고 체(體)를 순서대로 썼던 이유를 제 생각대로 한 번 풀어보겠습니다.

우선 지(智)는 좁게 보면 지식이나 지혜를 말한다할 수 있습니다. 지식이란 앎을 뜻합니다. 인간이 쉼 없이생각하고 관찰하고 소통하며 무언가를 배우고 그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 모든 행위나 그를 통해 얻은 결과물을 말하겠죠. 하지만 지덕체라는 말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쓰인다는 면에서 볼 때 지(智)가 뜻하는 지식이란 선생님으로부터 배우는수많은 교과 지식을 뜻한다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 개념을 조금 확대해서 보면 아마도 지(智)는 진리(眞理)를 가리키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즉 우리를 둘러싼 우주의 생성 원리나 운동 원리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어떠한 법칙성을 찾아내서 개인과 공동체의삶에 도움이 되는 깨달음을 얻는 일을 지(智)라고 표현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덕(德)을 살펴볼까요? 앞서 살펴본 지(智)가 이성(理性)과 깊은 연관이 있는 개념이라면 덕(德)은 이성과 구분되는 감성 또는 인성과관련된 개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인간의 마음이죠. 역시학교 교육 현장에서 쓰이는 용어라는 관점에서 보면 학생들에게 바른 마음, 바람직한 마음을 갖도록 하는가르침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다른 말로 인간(人間)이라 일컫듯이 사람과 사람이 서로 관계를맺고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자세나 자질이라고 할 수 있겠죠.

마지막으로 체(體)를 살펴보죠. 체(體)는 좁은 의미에서 체격이나 체력을 가리키고좀 더 넓게 보면 건강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학교 교육을 통해 지식과 덕성을 쌓는 것만큼이나신체를 발달시키고 건강하게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지덕체가 각각 뜻하는 범위를 요약해서 정리해보면 지(智)는 우주나 자연 또는 세상을, 덕(德)은 그 안의 사회나 공동체를, 그리고 체(體)는 개인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전통사회에서부터 최근까지 학교 교육에서 가치를 두었던 것들을 순서대로 나열할 경우 세상이 가장우선이고 그 다음이 공동체 그리고 맨 마지막이 개인이 되는 것이죠. 각각의 개념이 표기되는 순서가 그중요도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우리는 오랫동안 세상이나 공동체의 가치를 개인의 가치보다 더 높게 평가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금 더 확대해서 생각해보면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이나 사회가 합의한 기준을 개인으로 대변되는 다양성이나상대성보다 더 우선시했다고도 볼 수 있겠죠.

이러한 생각은 전통사회의 학교 교육 이념을 대표하는 '지덕체'가 일반 사회가 대표적으로 선호하는 개념인'진선미'와도 통한다는 점에서 더 분명해집니다. 즉 지(知)는 진리라고 할 수 있는 진(眞)과, 덕(德)은 착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는 선(善)과, 그리고 체(體)는 건강함과 아름다움을 뜻하는 미(美)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배워서 무언가를 새롭게알게 되어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구분할 수 있으니 지(智)와 진(眞)이 통하는 것이고, 공동체 생활을 원활히 하는 데 꼭 필요한인간 관계의 필수 요소가 도덕적 기준이니 덕(德)과 선(善)이 통하는 것이며, 개인의 아름다움은 잘 발달하고 건강한몸이 그 출발점이라 할 수 있을 테니 체(體)와 미(美)는 통하는 것이라 할 수 있죠.

다시 말하면 지(智)와 진(眞)은 인간의 외부세계에 존재하는 객관적인 그 무엇이고, 덕(德)과 선(善)은 인간이 사회에서 합의한 하나의 약속이라고생각할 때, 비로소 체(體)와 미(美)에 와서야 개인의 가치가 좀 더 존중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지덕체'를 '체덕지'라는 말로 순서를 바꾸어 쓰는 것에는 어떤 생각이 담겨있는 걸까요? 물론 단순히 생각해서 건강한 신체를 갖추고 나서야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과 진리를 탐구하고자 하는 열정이 생긴다는뜻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틀린 말이 아니고 심지어 왜 학교 교육에서 머리에 지식만 잔뜩 넣은가분수(假分數)를 만드는 교육 방식에 대한 반성을진작 하지 못했나 하는 생각에 반가운 마음마저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그치지 말고 이 작은 변화를 이렇게도 한 번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지금까지 살펴본 생각들을 바탕으로 할 때 드디어 개인의 가치가 제대로 대접받게 된 것이라고 해석한다면억지일까요? 전근대사회에서 '신(神)'으로 대표되는 절대진리에 대한 학습을최우선시하고 그 다음으로는 공동체 안에서 구성원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먼저 교육했다면, 이제부터는 개인의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바탕으로 한 자율적인 성장과 개성의 발휘를 돕는 것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교육으로 바뀌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 무리일까요?

우리는 최근몇 세기 동안 눈부신 과학의 발전을 목격해오고 있습니다. 특히 사람의 신체에 대한 신비는 뇌 과학의발달에 힘입어 하루가 다르게 밝혀지고 있죠. 우리는 이제 우리의 뇌가 단순히 기억을 저장하거나 팔 다리를움직이는 명령을 내리는 일만을 하는 기관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우주라고할 수 있을 만큼 놀랍도록 신비하고도 특별한 존재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객관적이고도 합리적인 지식이나공동체 안에서의 보편적인 약속도 중요하지만 각자가 소우주의 신비를 갖춘 개인으로서의 존엄성과 다양성 그리고 상대성을 존중 받을 수 있는 교육을학교에서부터 받는다면 분명 우리의 후손들은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지덕체에서 체덕지로의 변화가 반갑게 느껴집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함께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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