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어와 대상어

생각이 낳는 말, 말이 낳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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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호(smug21)등록 2018.01.17 14:21
국문법의 품사에는모두 아홉 가지가 있습니다. 그 아홉 가지는 명사, 대명사, 수사, 동사, 형용사, 부사, 관형사, 조사, 감탄사입니다. 또한 문장 성분은 주어, 목적어, 보어, 서술어, 부사어, 관형어, 독립어등 모두 일곱 가지가 있죠. 또한 우리가 배워왔던 한국식 영문법의 품사에는 모두 여덟 가지가 있습니다. 그 여덟 가지는 명사, 대명사, 동사, 형용사, 부사, 접속사, 전치사, 감탄사며, 문장성분은 크게 나누어 주어, 서술어(동사), 목적어, 보어 등 모두 네 가지로 구성됩니다.

이 글에서는품사와 문장 성분이 서로 어떻게 구별되는 개념인지에 대해서나 각각의 품사나 문장 성분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하지 않으려 합니다. 다만 국문법과 한국식 영문법에서 공통적으로 쓰이고 있는 '목적어'라는 말이 과연 어디서 왔는지 한 번 짚어 보겠습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는 말을 문장 성분으로 나누어 설명할 때 우리는 보통 '나는'이 주어, '너를'이 목적어, '사랑한다'가 서술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너를'은 정말'목적어'가 맞을까요? '내가사랑하는 사람이 너다.'라는 말에서 '너'는 '나'라는 '주체'의 상대적 개념인 '객체' 또는 '대상'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차라리사랑하는 행위가 목적이라면 수긍할 수 있겠죠. 그러므로 이 문장에서 '너를'은 목적어가 아니라 '대상어' 또는'객어'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요? 마찬가지로 "나는 밥을 먹는다."라는말에서 '밥을'은 목적어가 아니라 '대상어'입니다. 즉, 밥을 먹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밥은 내가 섭취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죠. 상식적으로사람이 밥을 먹는 목적은 허기를 없애기 위해서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물론 먹는 행위자체가 목적인 사람도 없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나는 밥을먹는다."라는 문장에서 밥 먹는 행위의 즐거움이라면 모를까 '밥'이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걸 '목적어'라고 부를까요?

'목적'이라는 말을 국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실현하려고 하는 일이나 나아가는방향'이라고 풀이되어 있고, 영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purpose, object, goal' 등의 뜻풀이를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영어의 문장 성분을 규정하는 말 가운데 하나인 'object'를 일본에서 단순히 해석하여 '목적어'라고 했고, 그를우리나라에서 별 생각 없이 받아들여 영문법에서 주어나 서술어의 객체 또는 대상이 되는 말을 '목적어'라고 명명한 데서 비롯한 현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object'라는 말에는 '대상'이라는뜻과 함께 '목적'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뜻은 "The first object I saw inthis room was the chair."나 "Winning a championship ismy object."에서와 같이 분명히 구분되어 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두 가지 뜻을구분하지 않은 채 '대상'을 가리키는 말을 '목적어'라고 함께 부르고 있는 건 아닐까요?

게다가 더욱재미있는 사실은 그렇게 큰 고민 없이 받아들인 영문법 용어가 우리말 문법 용어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는 점입니다.수십 년이 넘도록 거의 모두가 그렇게 부르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고 그걸 별 문제 아니라고 생각하면 별 일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라는 점을 생각해볼 때 그 약속된 의미를 벗어나거나 의미의 혼동을 가져올 수 있는표현들은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고, 가능하면 이미 자리잡은 것들도 더 나은 표현으로 바꾸어 사용하는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우리나라나 일본과 같이 한자 문화권인 중국에서는 '목적어'라는 말 대신 '손님빈(宾)'자를 써서 '빈어(宾语)'라고 합니다. 즉 주어와 서술어의 '객체'라는 개념을 좀 더 분명히 하고 있는 셈이죠.

이 기회에 우리 주변에서 흔히 잘못 쓰이고 있는 말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보는 건 어떨까요? 수십 년 동안 써왔던 '국민학교'라는말을 '초등학교'로 바로잡았듯이 굳이 정치적인 배경이 포함되어있지 않은 말이라 하더라도 외국으로부터 여과 없이 받아들인 말들을 하나하나 바로잡는 것이 소중한 우리말을 더 잘 가꾸고 다듬는 일이 되지 않을까요? 인간은 언어를 통해 사고하고 그 사고가 행동의 뿌리가 될 테니까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함께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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