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이름 짓기

당신의 영어이름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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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호(smug21)등록 2018.01.17 14:22
"Hello, my name is 홍길동." "What's your English name? You need to have your English name inthis class." 영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교실에서 흔히 오고 가는 말입니다. 내 이름은홍길동인데 영어 이름을 따로 지어라. 흠, 한 번 생각해보죠. 일제강점기의 창씨개명 이야기까지는 하지 않겠습니다. 총칼로 위협하며억지로 강요하는 정도는 아니니까요. 그래도 누군가의 요청에 의해서 내 진짜 이름을 특정 공간, 특정 시간에는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는 게 조금은 이상하거나 살짝 불편하게 생각되시지 않나요?

영어 교실에서 영어 이름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발음'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저만 해도 18년 전 미국에 잠깐 있을 때 제 이름 '광호'를 발음하기 어려워하는 선생님과 친구들을 위해 별도의 이름을 만들 것을 선생님으로부터 권유 받았고 별 생각 없이 Kevin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당시 여자친구가 Kevin Bacon이라는 영화배우를 좋아했기 때문이었죠. 선생님의요청 때문이기도 했지만 제가 Kevin으로 불리길 선택한 이유에는 또 하나가 있습니다. 외국 학생들로부터는 괜찮은데, 함께 공부하던 저보다 어린 한국 학생들로부터"Hi, 광호"라고 불리기 싫어서였죠. 왠지 하대 받는 느낌이 싫었던 것 같습니다. 스물 다섯 밖에 먹지않은 때였지만 형, 오빠 대우는 철저히 받고 싶었나 봅니다.

이십 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이곳 한국에서도 아이들은 영어 이름을 하나씩 갖기를 권유 받습니다. 주로 영어학원 같은 곳에서 쓸 이름을 원하는 건데요. 그런데 18년 전 미국에서의 제 상황과는 달리, 지금 한국 영어학원의 교실에서는원어민 선생님이 아니면 교실 안의 거의 모든 인원들이 우리말 이름을 발음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또대부분 또래 집단끼리 같은 반에 편성되어 있고요. 뭐 원어민 선생님의 편의를 위해 별도의 이름을 하나쯤지어 주는 게 그리 큰 일도 아니고 딱히 잘못된 일도 아니긴 하지만, 왜 대부분 그렇게 해야 한다고생각하는지는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혹시 우리는, '영어는 영어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언어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영어'는 '영국 말'입니다. 물론영어가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제 1언어로 쓰이고 있긴 하지만 그 본고장은 영국이죠.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잉글랜드지만 그 점은 우선 넘어가기로 하고요. 아무튼우리는 영국 말을 배우기 위해서 영어를 배우는 게 아닙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다른 목적도 있겠지만 크게는 세계인들과 좀더 활발히 만나고 원활하게 의사소통하기 위해, 그리고 세계 각국과 교류하기 위한 실용문서를 기록하는데 가장 널리 쓰이는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 영어를 배우는겁니다. 그러니까 히로꼬나 무하마드를 만나서 소통하기 위해서 영어를 배우고 우간다나 멕시코와 무역을하기 위해서 영어를 배운다는 겁니다.

목적이 그럴진대 이때 제 이름을 송광호라고 하지 않고 Kevin Song이라고할 이유는 없습니다. 더 재미있는 건 사실 '영어 이름'이 된 많은 것들이 성경에서 왔다는 겁니다. 다윗이 데이빗이 되고바울이 폴이 되고 요한이 존이 된 것이죠. 예수님이 영국에서 생활한 게 아니니 데이빗이나 폴이나 존도엄밀히 따지면 그 뿌리는 영국이 아니죠. 그냥 David이라적고 영국식으로 읽은 게 데이빗이 되었고, 그렇게 Paul이폴이 되고, John이 존이 된 겁니다. 물론 영국식 표기법에따라 철자가 조금씩 달라진 경우도 있겠지만 아무튼 뿌리가 되는 그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거라는 거죠. 마이클이라는영어 이름은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쓰이는 미쉘, 미첼, 미카일, 미하일, 미구엘과 뿌리가 같은 이름이고요. 그러니까 같은 이름을 각 나라에서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서 각기 다른 이름이 된 거죠.

그렇게 각 나라는 자기 나라 언어의 발음을 존중하고 그에 따라 그 이름을 부르고 필요한 경우 철자도 조금씩 바꿔가며 그 이름을 적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영어이름'을 따로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좀 재미있지 않나요? 물론여기에는 영어와 유럽 각국의 언어와의 차이에 비해 영어와 우리말의 차이가 뿌리어의 어휘나, 발음 등에있어서 훨씬 더 크다는 이유도 있을 겁니다. 그 밖에 농경과 정착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와 유목과 교역을중심으로 하는 각기 다른 두 사회의 성격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어쩌면 간단히 한 두 마디로 설명하기어려운 문화적 차이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 뜻과 유래도 잘 모르는 낯선이름을 하나씩 가져야만 세계와 소통할 수 있다는 생각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더 재미있는 건 우리말 이름의 '성'을발음하는 법입니다. 주변에서 최씨는 '초이'로 김씨는 '킴'으로 박씨는'팍'으로 자신의 성을 영어로 소리내어 소개하는 경우를 가끔보게 되는데요. 최, 김,박이라는 성을 알파벳으로 표기하다 보니 choi, kim, park이 된 것이고, 그건 우리말 원음에 가장 가까운 소리를 내는 알파벳을 찾다 보니 그렇게 쓰게 된 것이지, 거꾸로 표기가 발음에 영향을 주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니 'choi'라고 쓰기로 했다고 '최'라고읽는 대신에 '초이'라고 읽는 건 주객이 전도된 거라 할수 있지 않을까요?

이왕 영어 이야기가 나왔으니 중국어 이야기도 좀 해볼까요? 요즘 중국어를배우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요, 여기서도 이름에 대한 재미있는 이슈가 있습니다. 제 이름을 중국어식으로 발음하면 '송꽝하오'쯤 됩니다. 그래서 상하이에 잠깐 있을 때 제 한자 이름을 보고 '송꽝하오'라고 읽어야 한다고 가르쳐준 사람들이 많았죠. 그런데 우리는 언젠가부터 '모택동'을'마오쩌뚱'이라 하고 '북경'을 '베이징'이라 하고'풍신수길'을 '도요토미히데요시'라 하고 '동경'을'도쿄'라고 합니다. 같은한자 문화권이기에 다른 나라 사람의 이름이나 다른 나라의 지명도 각자의 나라에서 읽는 방식으로 읽어오다가 해당 국민의 이름이나 해당 국가의 지명은해당 언어의 발음으로 읽어주는 게 더 좋겠다고 사회적으로 약속을 한 거죠.

그 약속이 제 이름에도 적용된다면 중국인들은 제게 제 이름을 '송꽝하오'라고 읽도록 요청할 게 아니라 '宋光鎬'라는 한자 이름이 한국에서는 '송광호'로 발음된다는사실을 존중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요? 그들이 제 이름을 '송광호'가 아니라 '송꽝하오'로읽는 걸 굳이 지적할 필요는 없습니다. 혹시 친절하고 부지런한 누군가가 '송광호'로 읽고 불러주면 그냥 고마워하면 될 일이죠. 그런데 제가 먼저 제 이름을 '송꽝하오'라고 소개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최씨가 자기 성을 초이라고 읽는게 주객이 전도된 것과 마찬가지겠죠.

이쯤 되면 좀 복잡할 수도 있습니다. 그냥 선생님이 영어이름을 사용하라면 하나 지어서 수업 중에 쓰면 되고, 중국인들이 내 이름을 그들 발음대로 읽기 원한다면그렇게 내버려둬도 됩니다. 하지만, 영어 수업 시간에는 반드시나의 원래 이름을 사용하지 말아야 하고, 내 이름이 중국어 발음으로 어떻게 읽히는지를 알아서 그걸 표준으로삼아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우리 나라에 와서 "제 이름은 궁기 준(宮崎 駿)입니다."라고 하면 이상할 테니까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함께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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