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키모와 바바리안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한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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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호(smug21)등록 2018.01.17 14:23
'에스키모'는 북극지방에 사는 원주민을 일컫는 말입니다. 언젠가부터 '에스키모' 대신 '이누이트'라는 말로 바꾸어 쓰자는 이가 많아졌는데요. 이유는 '에스키모'가 '날고기를먹는 사람'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지 못한 편협한 시각에서 나온 말인 반면에 '이누이트'는 '인간'이라는 뜻을 가진 중립적인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누이트'는 캐나다, 알래스카, 시베리아, 그린란드일대의 극지방에 먼저 정착해 살고 있던 원주민들의 말이고 '에스키모'는훗날 그 지역을 '발견'한 이방인들의 말인 셈입니다. 이방인들이 자신들의 시각에서 '이누이트'를 규정지어 표현한 말이 '에스키모'라고할 수 있죠. 하기야 원래부터 존재하던 땅에 자신들이 처음 발을 디뎠다고 해서 그걸 '신대륙의 발견'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으니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긴하지만, 그래도 이런 자기 중심적인 사고와 표현에 대한 돌아봄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다행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자신과 다른 낯선 것을 자신의 시각으로 규정짓는 표현들은 한자 문화권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근대일본에서는 막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던 때에 네덜란드인들을 '홍모(紅毛)'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의 붉은 머리카락을 특징지어 표현한 말이죠. 또한 우리에게도 익숙한 '벽안(碧眼)'이라는 표현도 서양인들의푸른 눈을 콕 집어 일컫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양반입니다. 그저 자신들의 눈에 북극 원주민이 날고기를 먹는 익숙하지 않은풍습을 가진 사람들이었기에 에스키모라고 부른 겁니다. 서양인들이 가진 붉은 머리카락이나 푸른 눈을 특징삼아 머리가 붉은 사람, 눈이 푸른 사람이라고 표현한 겁니다. 이것이어떤 면에서 작은 부분을 크게 확대한 표현일지는 몰라도 적어도 상대에게 관심을 갖고 어느 정도 관찰을 통해서 만들어진 말이라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표현들이 다양한 문화적 차이를 존중하지는 못했을지언정 정색하며 비하하는 느낌을 담은 표현이라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표현들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낯선 이들을 조롱하거나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표현들이 있습니다.

동양의 예를 먼저 들어보겠습니다. 전통시대의 중국에서는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이라는 말로 동서남북 변방의 이민족을 가리켰습니다. 각각의 뜻을구분해서 활을 잘 쏘는 사람들, 야만인 등으로 나누어 그 어원을 설명하는 이들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오랑캐'라는 공통적인 뜻을 가진 표현을 각기 다르게 쓴것뿐이라는 견해가 더 넓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고그 땅을 둘러싼 주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죄다 오랑캐라는 거죠. 재미있는 점은 현대의 중국 영토 안에이 네 지역의 오랑캐 민족들이 살던 지역들이 적잖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중국은주변인들을 오랑캐라 부르던 자기중심적인 사람들과 원치 않게 오랑캐라 불리던 약자들이 공존하는 나라인 셈이죠.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사실은 이러한 생각이 전통시대의 유물로 그치지 않고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바로 '중국(中國)'이라는 나라 이름부터가 지극히자기중심적인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그 넓은 땅덩어리에서 지역별 시차를 허용하지 않는 모습이나, 수십 개에 달하는 소수민족의 문화를 박제하기도 하며 역사적 왜곡과 문화적 희석을 심심치 않게 시도하는 것이공산당 외의 정당을 인정하지 않는 정치제도에 기인하는지 아니면 자신들의 문화와 전통을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들에게냉정하고 차분히 현재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서양의 예에서는 더 심각한 오만이 드러납니다. 바로 'barbarian'이라는표현인데요. 고대 그리스어의 'βάρβαρος' (barbaros) 라는 말로부터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는 이 표현은 외국인들을 얕잡아 가리키는 말입니다. 말하는 이가 자신이 쓰는 말과 다른 말을 쓰는 사람이 말하는 모습을 보고 마치 '어버버'라고 하는 것 같다고 해서 '어버버라고말하는 사람들'이라고 일컬었던 말이 바로 barbarian 입니다. 단순히 이상한 말 내지는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던 이 표현이 훗날 '야만인'을 뜻하는 말로 그 영역을 확장하여 생명력을 이어온 것은 전형적인자기중심적 생각의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들이 쓰는 말과 다른 말을 이해하고 나아가서 그 말을 쓰는 사람들을 이해하며 그들과 공존하려는 노력보다는 자신들과 똑 같은 말을 쓰는사람들이 아니면 곧 문명화되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이러한 시각이 르네상스 이후의 대항해 시대를 맞이한 서양인들로 하여금 유럽을 제외한 나머지 전세계의 사람들을 착취하고 학살하게 하는 무의식적 명분을 제공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이른바 '신대륙'에 정착한 유럽인들이 자신들이'인디언' 내지는 '인디오'라 부르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자기 기준에 맞춘, 자기 입장에서 규정한원주민 '보호'구역에 '수용'하듯이 이주시키거나, 원주민들의 문화와 풍습, 사상과 종교를 미개한 것으로 단정짓고 자신들의 종교와 문화를 '강요'하다시피 전파한 역사적 사실은 인류 문화의 다양성을 잘 보존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의 차원을 넘어, 그들의 용감하고 위대한 개척정신 뒤에 숨은 오만방자하고 편협한 획일적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게느껴지기까지 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 함께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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