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인이라고요?

'여성발전기본법'에서 '양성평등기본법'으로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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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호(smug21)등록 2018.01.17 14:23
몇 해 전 뉴스를 통해 국회가 '여성발전기본법'이라는이름을 '양성평등기본법'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 기사에서는 이러한 결정을 여성정책의 패러다임을 '여성 발전'에서 '실질적 양성 평등'으로전환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그 말이 그 말인 것 같고, 내용이 중요하지 이름이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움직임이 시사하는 바는 작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불균형을 또 다른 불균형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고쳐나가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죠.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여전히 약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십 년 전에 비해서 훨씬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알게 모르게 여기저기서 평등하지 못한 기회나 권리에 힘들어하는 여성들이 아직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들이 가진 역량과 가능성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 받지 못하고 그들이 하늘로부터 받은 성으로 판단되는 현실은반드시 타파해야 마땅합니다. 그러한 생각으로 19년 전에'여성발전기본법'이 만들어졌을 겁니다. 당시의 불균형은 지금의 불균형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을 테니 그렇게 부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을지 모르죠. 하지만 이제는 최초의 지향점이 어디였는지를 돌아볼 때도 되었습니다. 궁극적인목표가 남성을 배제한 여성만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성과 관계없이 누구나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일이었음을 다시 생각해 볼 때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법의 이름을 바꾸는 일이 반갑게 느껴집니다.

우리 사회엔 부지불식간에 자리잡은 불평등이 적지 않습니다. 그 중 차별에 근거한 불평등은 우리모두의 의식적인 노력으로 고쳐나가야 하겠죠. 그러한 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장애인에 대한 차별입니다. 법과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다 하자면 시간이 너무 많이 필요할 터이니 여기서는 그저 용어에 대한 이야기에만초점을 맞춰보겠습니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편견이 차별의 근거로 작용할 수 있기에 그러한 편견을없애자는 의도에서 언젠가부터 일부 언론이나 단체에서 '비장애인'이라는말을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비장애인'이라는 말은 글자그대로 장애인이 아닌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장애가 없는 사람 즉,정상인 또는 일반인을 가리키는 말이죠. 그런데 정말 우리가 일반인을 비장애인이라고 부르면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없어질까요? 혹은 그런 표현이 정말 장애인을 배려하는 표현일까요?

비슷한 예를 사회의 편견으로부터 고통 받는 다른 곳으로 확대해서 적용해보죠. 대표적으로 미혼모나노총각, 이혼녀, 실업자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편견을 없애거나 이들을 배려하는 뜻에서 위의 예를 적용한다면, 결혼관계 안에서 아이를 나은 여자를 비미혼모라고 해야 할까요? 결혼을 한 나이든 남자를 비노총각이라고 해야할까요? 이혼을 하지 않은 기혼녀를 비이혼녀라고 해야 할까요? 직업을가지고 있는 사람을 비실업자라고 해야 할까요?

일반적인 개념과 상대적으로 특수한 개념을 가리키는 말은 서로 혼동해서 사용하면 안 됩니다. 이는옳고 그름이나 가치 판단, 또는 편견과는 무관한 문제입니다. 좀더일반적인 현상이 결혼을 한 상태에서 아이를 낳는 것이기에 미혼모란 말이 만들어진 것이고, 어느 정도의나이가 되면 결혼을 하는 것이 보통이기에 노총각이라는 말이 만들어진 것이고,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일반적이기에 이혼녀라는 말이 만들어진 것이고, 성인의 다수는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거나 하기를원하기에 실업자라는 말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물론 미혼모나 노총각, 이혼녀, 실업자라는 말이 그들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묘사한 말이기는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그러한 상태를 낮잡아 보거나동정하는 시각에서 쓰이기도 하는 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시각을 바로잡기 위해 비미혼모나비노총각, 비이혼녀, 비실업자라는 말을 만들어서 쓸 수는없습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기 위해서 그들을 가리키는 말을 바꿔보려는 시도 자체에 문제가 있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먼저 필요한 건 말을 바꾸는 것보다 그들이 처한, 다수의사람과 다른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일 겁니다. 게다가 그 후에 그들을 가리키는 말을 바꿈으로써우리의 시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인정하더라도 잘못된 말로 변화를 시도해서는 안됩니다. 일반적인 건일반적인 겁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걸 일반적이지 않다고 하는 것과 그것을 폄하하는 건 구별할 줄 알아야합니다. 우리가 장애인을 장애인이라고 말하는 건 일반적이지 않다는 뜻이지 그들이 잘못됐다거나 우리가그들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장애인을 존중한다는 생각으로 억지로 '비장애인'이라는 말을 만들어서 쓸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그렇게 한다고 장애인에 대한 배려심이 더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해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사라지는 것도아닙니다. 개념만 혼란하게 하고 일반성과 특수성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는 잘못된 말은 그 누구에게도 아무런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생각하는 바를 말로 표현하고 그 말을 통해 자신과 타인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약 20년 전에 남성과 여성의 권리 사이에 존재하는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법의 이름을'여성발전기본법'으로 정한 것이 무척 의미 있는 일이었듯이, 시간이 많이 흐르고 상황도 적잖이 달라진 지금 그 달라진 상황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여 그 법의 이름을 '양성평등기본법'으로 바꾸기로 한 것 또한 훗날 상당히 의미 있는 변화로평가될 것입니다. 불균형을 바로 잡기 위한 또 다른 불균형이 그 한시적인 소임을 다 하고 진정한 균형에게그 자리를 양보했기 때문이죠.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자면 아무리 무언가를 가리키는 말이 그 대상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라고 하더라도그 이름을 짓거나 바꾸는 것보다 더 급하고 필요한 일이 없는지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또한 새로 짓거나바꾸려는 이름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도 잘 생각해야 합니다. '비장애인'이라는이상한 말로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함께 찬찬히 되돌아 봤으면 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 함께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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