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네덜란드에서 벨기에로... 그리고 '라 벨 에포크'의 파리를 향하고 있었다
<Loving Vincent Living Vincent #4>
화가를 꿈꾸었던 꼬마 넬로와 그 친구 파트라슈, <플랜더스의 개>의 배경이 되었던 벨기에 안트베르펜
벨기에 북부 스헬데 강 유역, 북해에서 남동쪽으로 88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안트베르펜(Antwerpen : 영어 이름은 앤트워프(Antwerp))는, 무역, 문화의 중심지이며 다이아몬드 세공업으로도 잘 알려진 대도시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소설 <플랜더스의 개>(매리 루이스 드 라 라메(Marie Louise de la Ramée, 1839~1908) 작품)의 배경으로 더 친숙하다. (사실 <플랜더스의 개>를 알고 있는 벨기에 사람은 많지 않다. 애니메이션 덕에 이 소설에 더 친숙한 일본은 어린이들이 테마 여행처럼 이곳을 많이 찾는데, 벨기에인 친구는 이런 현상에 대해서 아주 신기하게 생각했다). 화가의 꿈을 꾸었던 넬로와 유기견 파트라슈의 우정 얘기가 출판되고 십여 년이 지난 1885년, 넬로처럼 마음이 따뜻하고 재능도 뛰어난 예술가 한 명이 이곳 안트베르펜을 찾았다.
▲ <플랜더스의 개> 초판 표지 1872년 출판된 매리 루이스 드 라 라메의 소설
ⓒ 구글 사진
네덜란드 누에넨에서 아버지의 죽음과 시련의 상처로 상심하던 빈센트 반 고흐가 11월 24일 이곳 안트베르펜에 도착한 것이다. 본격적인 그림 공부를 하고 싶었던 그는 이곳에서 미술 수업을 들었다. 수업 중에는 해부학이 포함되어 있었고, 그의 초기 수작 중 하나인 해골 그림이 당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 벨기에 안트베르펜 Academie Royale des Beaux-Arts 빈센트 반 고흐가 미술공부를 했던 학교
ⓒ 이진영
▲ 담배를 피우는 해골(1885~1886) by 빈센트 반 고흐 반 고흐가 해부학을 배우면서 그린 것으로 보이는 작품 ⓒ 이진영
농부, 감자 먹는 사람, 베틀 짜는 사람 등을 그렸던, 네덜란드의 누에넨이 조용한 농촌이었다면, 안트베르펜은 문화, 예술의 중심지이며 활기가 넘치는 대도시였다. 그는 한동안 이런 도시의 쾌활함을 만끽했던 것 같다. 틈틈이 드로잉을 하고, 박물관, 갤러리를 찾아다니며, 경제적 독립을 위해 자신의 그림을 팔아보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스헬데 강가 <헤트 스틴(Het Steen) 포트리스> 드로잉에 관심을 보였던 딜러도 있었다고 한다.
▲ <헤트 스틴 포트리스> by 빈센트 반 고흐 안트베르펜 시절의 반 고흐 작품 ⓒ 구글 사진
▲ 안트베르펜 스헬데 강가 포트리스 현재 모습 반 고흐는 이곳에서 드로잉을 했다 ⓒ 이진영
하지만 별 소득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지나친 흡연과 영양 부족으로 몸이 망가졌고 치통에 시달리면서 3개월을 이곳에서 지내다가 결국 이곳을 떠나기로 한다. 이미 몇 년 전, 프랑스, 영국에서 예술품 딜러로서의 실패한 삶에서 알 수 있듯이, 빈센트는 영업적으로 뛰어난 사람이 아니었다. 이런 예술과 현실의 딜레마에 봉착하는 예술가는 빈센트 뿐이 아니었고, 그런 맥락의 영화 두 편이 생각난다.
출판제작자 : 예술은 요만큼.... 비즈니스는 이만~큼이라고요!!
- <러시안 소설 2012> (감독 : 신연식) 중에서 -
▲ <러시안 소설 2012> (감독 : 신연식) 27년 만에 식물인간 상태에서 깨어난 소설가와, 그를 둘러싼 사랑, 우정, 문학, 예술의 이야기 ⓒ (주)루스이소니도스
▲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Ruth & Alex, 2014)>(감독 : 리처드 론크레인) 교사, 화가로 은퇴한 노부부의 삶을 통해서 사랑과 인생을 말한다 ⓒ (주)에스와이코마드
갤러리 대표 : 지금은 당신 작품이 잘 안 팔려요, 그러니까... 물건 팔고 싶잖아요?
화가 : 잠깐, 예술품을 '물건'이라고?
갤러리 대표 : 갤러리는 사업입니다
화가 : 그럼 고객의 집도 미리 방문하고, 그림 걸어놓을 방도 구경하고 벽지 색에 깔맞춤 해야겠네!
-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Ruth & Alex, 2014)>(감독 : 리처드 론크레인) 중에서 -
예술이 생계가 되는 순간 예술가는 선택해야 한다. 배고픈 순수 예술을 할 것인지, 상품가치를 얹어서 작품을 만들 것인지 말이다. 현재 빈센트의 작품 가격이 얼마이든지 간에, 당시 빈센트는 심하게 배고픈 예술가였다. 결국 경제적 독립의 꿈을 접은 빈센트는, 당시 많은 예술가들이 그랬듯이, 1886년 2월, 라 벨 에포크(La Belle Epoque : '좋은 시대'라는 의미로 1871~1914년, 풍요와 평화를 누리고, 예술, 문화가 번성하던 파리 시절을 일컫는 말 / 출처:두산백과/위키피디어)를 누리던 파리를 향해 떠났다. 이 지점에서 빈센트가 부러워진다. 최소한 그에게는 주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다음 순서가 있었다. 21세기 우리에게는 없는 '라 벨 에포크'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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