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촌대로를 점령한 학원가2 평촌대로를 점령한 학원가 ⓒ 김성준
▲ 평촌대로를 점령한 학원가 평촌대로를 점령한 학원가 ⓒ 김성준
2001년에 태어난 아이들은 2000년에 태어난 아이들보다 대학가기 쉽다. 2000년 생 아이들보다 약 8만 명이나 적기 때문에 당연하다. IMF로 힘겨운 세기 말을 보내던 1960~70년대 생 청년들은 2000년이 되자 새로운 희망을 담아 아이들을 낳았다. 한국 경제의 역사적 위기 속에서도 64만 명 가까이 태어난 2000년 생 아이들은 한국의 마지막 60만 세대로 성장하여 이제 수험생이 된다.
40만 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2017년 생 아이들을 감안한다면, 한국 역사의 마지막 베이비붐 세대일지도 모를 '밀레니엄 베이비'들의 입시 경쟁은 고달프다. 게다가 대학 정원 감축과 학생부 종합 전형의 확대, 논술 폐지 공약, 수능 절대평가 논란 등과 맞물려 교실도 어수선하다.
▲ 2000년 이후 급감하는 출생인구 2000년 이후 급감하는 출생인구 ⓒ 김성준
'학원가'를 향할 수밖에 없는 수험생
수시로 6개, 정시로 3개의 지원 학교와 학과를 결정해야 하는 학생들은 자신에게 맞는 입시전략을 검토받기 위해 학원과 컨설팅 업체를 전전한다. 지방의 학생들도 여행 트렁크 가득 그 동안 풀어온 문제집과 시험 성적들을 담아 청담동과 대치동의 컨설팅 학원으로 향한다. 물론 고등학교 선생님께서 모든 학생들의 성적 관리와 입시 전략을 함께 고민해줄 수 있다면 9개의 상이한 대입 전략을 가다듬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각 대학에서 반영하는 교과 내신, 비교과 활동, 수능 성적 등의 내용과 비율이 다르기 때문에 수업과 행정으로도 바쁜 선생님들께서는 학생들을 배려할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
▲ 대전에서부터 서울의 컨설팅 업체를 방문한 한 여고생의 트렁크 컨설팅 업체를 방문하는 학생들은 매주 한 번씩 한 주간의 숙제를 모두 검토받고, 다음 주의 숙제를 받아가야 한다. 기차를 타는 고3 학생의 트렁크에는 문제집만 가득하다. ⓒ 김성준
학생부 종합 전형의 확대는 고등학교 선생님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한다. 각 학생들이 지원하는 학과에 적합한 생활기록부를 최소한 20장 가량 작성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분량이 합격을 좌우하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각 학생의 진로활동, 동아리활동, 과목별 세부특기사항 등에서 지망 학과를 향한 학생의 충분한 관심사가 드러나지 않는다면 합격이 어렵다.
그러나 심지어 300여 명으로 구성된 한 학년 전체의 과목별 세부특기사항을 적어주어야 하는 '한국사 선생님'께서 각 학생들의 꿈과 적성에 맞는 특기사항을 적어주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역사학과 진학을 꿈꾸는 학생들은 '민족주의 역사학'과 '지역사 연구', '여성사 연구' 등 구체적인 주제를 바탕으로 보고서를 작성하여 세부특기사항을 채워야하지만 그 구체적인 고민을 함께할 선생님께서는 너무도 바쁘시다. 결국 학생들은 비록 비싸더라도 자신의 꿈과 적성 찾기를 도와줄 '학원가'를 향한다.
비싼 사교육의 수혜자는 학생이 아니라 '국가'다.
▲ 쥘 페리 19세기 후반, 세계 최초로 무상, 의무 교육을 실시한 프랑스의 총리 ⓒ public domain
1882년 3월 28일, 프랑스의 총리였던 쥘 페리(Jules Ferry, 1832~1893)는 역사상 최초로 초등교육을 무상·의무교육으로 전환했다. 이는 그 동안 교육을 전담해왔던 종교로부터 교육의 기능을 국가로 이전하려는 시도였다. 종교적 가르침에 따르는 학생들만으로는 '나라와 민족에 충성을 다하는 인재'를 양성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부터 '조국 프랑스'의 역사와 현재, 미래 목표를 배워 온 학생들은 하나의 '프랑스 인'으로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모든 아이들이 표준 프랑스어로 교육받는 과정에서 역사적으로 이어져 온 역사적 내분을 상당부분 잠재울 수 있었다. 나아가 전 세계에 흩어진 프랑스의 식민지 곳곳에 '나라와 민족의 사명'을 완수할 인재를 보낼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의무교육의 목표는 분명했다. 학생들의 자아실현이나 지적 성취보다는 국가의 목표 달성에 필요한 '동일한 집단 구성원' 양성인 것이다.
물론, 한국의 학생들도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 대학 4년을 포함하면 16년 동안 이어진 교육의 수혜를 받는다. 이 사회의 전문직 노동자 혹은 숙련 노동자로 성장하여 경제적 안정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쥘 페리의 의무교육 도입 과정과 그 목표를 생각하면 의무교육의 진정한 수혜자는 그 시작부터 국가였음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교육'이란 '국가 공동체의 장기적 이익과 발전적 미래'를 위한 투자 사업이다.
수혜자 부담의 원칙을 생각할 때다.
경제 활동의 중요한 원칙 가운데 하나는 수혜자가 투자 재원을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현행 교육 정책은 주로 투자 규모를 줄이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이 아쉽다. 과감히 도입되었던 영어 절대 평가가 그 대표적 사례다. 고교 영어 수준과 그 현실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시험 과목'과 그 '반영 비중'만 조정하는 정책은 결국 '고교 진학에 앞서 영어 1등급을 완성해야, 고교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중등 전문 영어 학원의 기묘한 홍보전략'만 낳았을 뿐이다.
사교육의 규모를 줄이려는 시도는 실질적 수혜자가 아닌 '부모의 등골'을 지켜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단순히 시험 과목과 비중을 조정하는 것만으로는 위와 같은 '기형적' 사교육을 조장할 우려가 높다. 따라서 수혜자인 국가 스스로 '의무교육의 수혜자'로서 당연히 그 책임을 다해야한다. 예를 들어, 여전히 학생부 종합 전형을 꼼꼼히 들여다보지 못하는 고등학교 선생님들을 향한 체계적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나아가 대학 각자가 개발하는 '학생 선발 전형'의 특성과 그 공략 방법을 대형 학원보다 먼저 분석하고, 이를 공개적으로 제공하는 '정보 격차 해소'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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