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링경기를 보며, 플레이어가 존중받는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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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현정(ehwjs)등록 2018.02.25 19:19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번다.'

실제로 일을 만든 사람에게 이익이나 공이 돌아가지 않고, 엄한 사람이 그것을 가로챌 때를 가리키는 우리 속담이다.

농사 짓는 남편을 둔 나는 억대연봉을 받는다는 농산물 경매사의 기사를 보며 그런 박탈감을 금할 수 없었다. 농민들은 가격폭락의 불안과 흉작의 불안을 늘 안고 산다. 한해 그렇게 농사가 망하면 그해 생활비를 벌지 못하고, 전해에 들인 재료비를 거두지 못한다. 그리고 다음해에 농사에 투자할 투자금도 없다.

결국 그해 생활비, 다음해 농사를 위한 투자비를 모두 빚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런 위험을 감수할 만큼 평작일 때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냐면 그것도 아니다. 뜨거운 비닐하우스 속에서 농번기에는 허리한번 쭉 못 펴고, 자기 노동의 최대치로 일을 해도 벌 수 있는 돈은 최저임금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사정이 이러하니, 그런 농민들이 농사지어 매일매일 올려 보낸 농산물을 경매에 붙이는 경매사가 억대연봉을 받는다는 말에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억대 연봉을 받는 경매사가 되기 위해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치는지를 무시하자는 뜻은 아니다. 또 경매사가 현재의 농산물 유통구조속에서 필요하다는 것 또한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집을 짓는 일은 어떤가? 실제로 집을 짓는 사람들이 집을 짓고 판매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이익의 정당한 보상을 받고 있는가? 우리나라 최대 산업중 하나이면서, 최대 수출품인 핸드폰을 만드는 일은 어떤가? 우리가 매일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은? 그렇게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는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그 산업이 만들어내는 이익배분의 구조 속에서 정당한 배당을 받는 경우를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현실과 대비되며 컬링이라는 스포츠의 매력이 더 크게 느껴진다. 컬링은 현장에서 뛰는 선수들을 존중하는 스포츠이다.

우선 점수의 계산을 선수들이 스스로 한다. 매 회가 끝나고 나면 선수들이 하우스(경기장 양쪽 끝에 있는 점수를 내는 동그란 원)에 모여서 점수를 확인한다. 그때 선수들 외의 사람들은 그 자리에 나타나지 않는다. 선수들 이외의 사람이 나타나는 때는 선수들이 점수 계산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할 만큼 애매해서 기계의 측정을 요청하는 순간뿐이다.

경기의 운영도 선수들 주도로 이루어진다. 경기 중에 감독, 코치들이 계속 소리를 지르며 경기흐름에 대한 지시를 하는 다른 스포츠와 달리, 컬링에서 감독, 코치가 나타나는 순간은 선수들이 그들을 불러내는 작전 타임 뿐이다. 경기 중에 선수의 교체가 이루어지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컬링은 한 경기가 시작되면 그 선수가 끝까지 경기를 운영할 수 있다. 또 선수가 실수로 상대팀의 스톤을 건드렸을 때 상대팀 선수들의 합의가 있으면 스톤을 원래의 자리로 가져다 두면 된다. 이렇듯 경기 운영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돌발 상황들도 선수들의 합의로 해결한다. 선수이외의 사람의 개입은 없다.

이런 특징들 때문에 관중들도 다른 외부요인보다 경기에, 선수들에 집중해서 경기를 즐길 수 있다. 그래서 그 경기의 공이 오롯이 고생한 선수들에게 돌아간다. 물론, 감독, 코치를 위시한 경기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모든 사람들의 노력들이 모두 존중 받아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그 현장에서 소외되는 우리 사회의 씁쓸한 모습 속에서 컬링이라는 스포츠가 보여주는 플레이어 중시의 문화가 더 멋지게, 어쩌면 이루지 못할 꿈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새해 컬링을 보며, 현장에서 뛰는 플레이어들이 존중받는 사회에 대한 관심도 가져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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