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차 소성리수요집회를 여는 말씀 ⓒ 손소희
SO-SO한 이야기(17)
떡볶이소동
저온창고에 들어갔다 나온 쌀은 밥을 해먹을 수가 없다. 수분이 다 빠져나가 푸석푸석해서 먹을 수 없는 밥이 되고 만다. 그렇다고 멀쩡한 쌀을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소성리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와 토요촛불문화제에 떡으로 간식을 내기도 하고, 김천촛불로 떡을 후원하기도 하면서 쌀을 소비하려고 했지만, 쌀 양이 많기도 하다. 중간 중간 또 다른 누군가가 촛불간식을 준비하게 되어 묵은 쌀의 소비는 더디기만 했다.
날이 점점 더워지기 시작한다. 일교차가 커지면 쌀의 상태가 더욱 안 좋아질텐데 큰일이다. 걱정의 목소리가 늘었다. 그런 이야기가 오가는 사이 내 머릿속에서 갑자기 번개처럼 떠오른 아이디어를 입밖으로 내 뱉은 것이 화근이었다.
"떡볶이 떡을 하는거야. 소성리평화장터의 고추장과 조청으로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맛을 보게 하는거지" 내가 생각해도 아주 멋진 아이디어였다.
소성리평화장터가 품격높은 물품만 취급한다고 제아무리 우겨대도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소성리평화장터의 물품은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고, 첨가물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제아무리 떠들어도 먹어보고 좋다고 느끼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특히나 국산재료만 사용한다고 자부심이 대단하지만 증명할 방법이 없다. 물품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심어줄 뭔가가 필요했다. 그 방법으로 떡볶이를 만드는거다.
통큰 평화장터. 한다면 하는 평화장터. 그렇게 <사드뽑고 평화심는> 소성리수요집회에 평화장터가 고추장 시식회를 하기로 했다. 사람들에게 고추장을 선전하기 위해서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의 떡볶이를 만들기로 했다.
소성리부녀회장님께서 흔쾌히 쌀을 내어주셨다. 방앗간의 떡볶이 수공비만 들면 되었다. 떡볶이를 하는데 어묵이 빠져서야 될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소성리주민이 운영하는 참새방앗간의 까탈스런 쥔장이 맛있지만 아주 비싼 어묵을 소개해주었다. 어차피 평화장터를 홍보할 계획이라면 맛있어야 한다. 비싼 어묵을 부탁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해보니 떡볶이 하나 만드는데 다시국물재료, 마늘, 버섯가루, 고춧가루, 파 등등. 거기다 핵심인 고추장을 두병은 쏟아부어야 했고, 구절초조청도 두병이나 쏟아부었다. 재료비가 수월치 않았다.
마을회관의 묵은 쌀도 처분하고, 소성리수요집회 참가자들에게 간식도 제공하고, 평화장터 고추장도 선전해서 장사도 하겠다는 나의 얄팍한 장사속이 내 발등을 찍었다.
사람들이 다 보는 곳에서 떡볶이를 해야 홍보효과가 클거라는 계산을 했다. 일찍 소성리마을로 향했다. 평화장터를 준비하고, 테이블 한쪽끝에 가스버너를 올려놓았다. 커다란 냄비에 다시국물 우려낼 재료를 넣어 끓이기 시작했다. 집회시간이 다 되어가도록 다시국물은 끓지 않고 미지근하게 데워진 상태로만 있다.
사드철거를 위해 사람들은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평화장터 테이블위에 놓인 커다란 냄비에 관심이 집중되고, 보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묻는다. 기대와 격려의 말들을 주고 받는 와중에도 다시국물은 끓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롯데골프자부지가 국방부로 공여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시작한 '사드배치 결사반대 소성리 수요집회' 는 이제 사드가 꽂혀버려 '사드뽑고 평화심자' 소성리수요집회로 70회를 맞이했다.
70번째 되는 소성리수요집회에 '사드뽑는 길에 발자국을 보태겠다'는 소성리평화장터가 간식을 준비하게 되어 매우 기뻤다. 의미있다. 그러나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커다란 냄비는 야속하기만 했다. 마음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점점 초조해졌다.
금방 방앗간에서 찾아 말랑말랑하고 쫄깃한 떡을 뜯어넣기 시작했다. 간장을 넣고, 갖은양념을 넣었다. 맛있는 어묵과 파를 넣었다. 냄비는 내용물로 가득차서 넘치려고 했다. 그에 비하면 가스버너의 불길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보다못한 부녀회장님과 원불교 김성혜교무님이 팔을 걷어부치고 일을 거들었지만, 가스버너의 불길을 사로잡지 못했다. 또 옆에서 보다못한 대근아저씨가 안절부절하면서 커다란 냄비를 센 불이 나오는 가스로 옮기고 다시 끓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자포자기 한 상태가 되었다. 소성리수요집회는 중반을 넘어서 끝을 향해 달려가는데, 떡볶이는 먹을 수 있을지 오직 부녀회장님과 김성혜교무님과 대근아저씨만이 알 수 있었다.
역시 센 불에 올려놓으니 커다란 냄비도 어쩔 도리가 없었나보다. 평화장터 테이블 위로 떡볶이가 완성되어 올려졌다.
소성리 수요집회를 마치고 돌아가려는 사람들을 향해서 떡볶이 시식하라고 손짓발짓을 하자, 사람들은 하나 둘 떡볶이를 먹기 위해 줄을 섰다. 떡볶이 끓이는 동안 정신은 혼미해진 나는 다른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떡볶이를 먼저 먹기 시작했다. 매콤한 고추장맛에 달지 않은 조청을 넣은 떡볶이는 살짝 맵지만 깔끔한 맛이었다. 거기다 산사자효소까지 넣은 최강 고급 떡볶이가 되었다. 그러나 겉모습은 그냥 뻘건 떡볶이였다.
애초에 계산했던 대로 떡볶이 하나로 커다란 실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떡볶이가 다 없어지는 것만으로 다행스럽고 감사해야 했다. 엄청나게 많은 양의 떡볶이가 남기라도 한다면 어찌 감당하랴?
묵은 쌀은 처분했다. 소성리에 찾아온 집회참가자들에게 간식을 제공한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그러나 고추장은 하나도 팔리지 않았다.
이웃마을 김천 노곡리 어른들이 떡볶이를 맛있게 잡숩고 갔다. 그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떡볶이 덕분에 사람들은 집회가 마치자 마자 사라지지 않았다. 소성리평화마당에는 삼삼오오 담소를 나누면서 떡볶이를 먹는다. 맛이 있거나 말거나, 모두 모여서 함께 먹을 수 있어서 기쁘다. 그리고 언젠가는 소성리평화장터에서 고추장을 구입할거란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
소성리 사드뽑는 날까지 발자국을 포개는 평화장터가 수익금을 많이 만들어야 투쟁도 잘 할 수 있을테니까.
묵은 쌀은 전국의 사드반대 연대자들이 보내준 소중한 후원물품이다. 정말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소성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쌀이기도 하다.
2017년 2월27일 롯데골프장(성주 초전면 소성리에 위치한) 부지를 국방부로 공여가 결정되었다. 소성리마을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성주도, 김천도, 사드를 반대하면서 촛불을 들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서울광화문에 수만명이 모여서 박근혜정권을 퇴진시키자는 국민들의 분노가 높아졌지만, 사드배치의 가속화를 막아내지는 못했다. 결국 3월11일 박근혜정권은 파면을 당했지만, 사드배치는 기정사실이 되었다.
4월26일 1차 사드배치를 앞두고 소성리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정도로 많은 사람들이었다. 그/ 녀 들은 소성리평화지킴이가 되어 국방부로 공여된 롯데골프장으로 오르는 길목을 막았고 마을을 지켰다.
소성리에는 밥사먹을 수 있는 식당이 없었다. 소성리로 먼길 달려와 하루, 이틀 씩 지킴이활동을 하는 연대자들의 밥문제가 시급했다. 다행히 소성리마을의 부녀회가 두손을 걷어부치고 마을회관 부엌에서 돌아가며 밥을 해댔다. 적어도 서른명 이상 많게는 쉰명이상 마을회관의 마루와 방마다 커다란 상을 펴고 네 다섯 가지 이상의 반찬접시와 국을 끓여 한정식을 차렸다. 대단히 고된 일을 소성리마을 부녀회가 맡아주었다. 그렇게 식솔들의 밥해대는 것만큼 쌀의 소비도 빨랐다. 다행스러운 건 소성리로 찾아온 사람들만큼이나 전국의 사드반대에 뜻을 모아준 국민들이 소성리로 쌀을 보내주기 시작했다. 쌀로 높은 탑을 쌓아도 될만큼 많은 양이었다. 그래서 소성리로 찾아든 사람들의 밥은 걱정없었다.
날이 더워지면서 쌀을 보관할 곳이 필요했다. 다행히 소성리 주민이 농사짓는 사과를 보관한느 저온창고가 가까이 있었다. 그곳에 쌀을 넣어두고 한참을 이용했다. 가을이 와서 사과를 수확하게 되자 저온창고의 자리를 비켜주게 되면서 많은 양의 쌀을 소비하지 못해 난항을 겪게 된 것이었다.
소성리에 후원과 연대의 손길을 내밀어 준 고마운 이들의 마음을 져버리지 않기 위해 주민들은 전전긍긍하면서 촛불간식을 떡을 만들었다.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사드를 뽑기 위해 모이는 수요일집회가 70번째 맞이하는 날에는 떡볶이가 되어 우리에게 웃음을 나눠주었다.
참 고맙고 따뜻한 쌀이다.
사드가고 평화오라.
소성리에 평화를 노래하며 연대해 준 전국의 사드반대하는 분들게 고맙다는 인사를 꼭 전하고 싶다.
2018년3월29일 밤에
▲ 70차 소성리수요집회 ⓒ 손소희
▲ 70차 소성리수요집회 ⓒ 손소희
▲ 70차 소성리수요집회 ⓒ 손소희
▲ 소성리평화장터메뉴판 ⓒ 손소희
▲ 소성리사드철회성주주민대책위원회 ⓒ 손소희
▲ 떡볶이간식준비중 ⓒ 손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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