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O 한 이야기(20) 할매들은 힘이 쎄다. ▲ 함세상소극장 ⓒ 손소희 2014년 7월21일 새벽녘 기습적으로 공사침탈이 시작되었다. 한국전력공사 직원들이 청도 삼평리 345kV 23호기를 건설하기 위해서 쳐들어온거다. 새벽일찍 공사침탈 소식을 듣고 달려간 사람들은 모두 연행되었다. 나는 조금 늦게서야 상황을 알게 되었다. 눈뜨자마자 이도 닦지 못한 채 옷만 걸쳐입고 부랴부랴 달려갔었다. 이미 공사를 하기 위해 공사장비와 인부들이 안으로 들어갔고, 경찰들이 철통같이 공사주변을 지켜 주민들과 연대자들을 격리 시켰다. 앞서서 저항했던 부녀회장님과 춘화엄니, 변샘과 백목사님, 보나, 이상욱샘 등의 활동가들은 줄줄이 다 연행되어버렸다. 남은 할매들은 길바닥에 주저앉아서 신발을 바닥에 치면서 통곡하였다. 싸울 사람은 없었고, 경찰들 수는 너무 많았다. 뙤약볕의 시멘트바닥은 태양열에 달궈져 이글거리고 있었다. 어수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 밀양할매들과 신부님과 수녀님들 그리고 활동가들이 제일 먼저 달려와주었다. 경황이 없는 와중에 먹을 걸 준비해 왔다. 그리고 민주노총의 조합원들이 달려왔다. 여기저기서 삼평리 송전탑 공사침탈 소식을 전해들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송전탑공사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오를 형성했다. 삼평리 23호기 송전탑공사 현장 앞 2차선 좁은 도로는 완전히 경찰들에 의해 차단되었다. 공사휀스를 쳐서 외부사람들이 일체 들어갈 수 없도록 경계선이 만들어진 도로 앞에서 다시 한번 싸움이 벌어졌다. 송전탑공사 반대세력들은 공사를 허락할 수 없었다. 밀고 당기고 그러다 다시 사람들은 연행되었다. 뜨거운 태양열을 그대로 다 받아 땀은 비오듯이 쏟아졌다. 하루종일 공사침탈을 규탄하고 송전탑공사를 반대하며 싸웠다. 그리고 이튼날도 싸웠고, 계속 연행되었다. 48시간이 지나자 공사침탈 첫날 새벽에 연행되었던 삼평리부녀회장님을 비롯해 모두 풀러나서 돌아왔다. 쌍둥이엄마인 새댁이 부녀회장님과 이웃인 춘화엄니가 잡혀가서 고초를 겪을 걸 생각하면 삼평리할매들은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나쁜 한전놈'들이 불식간에 공사를 하러 쳐들어온 것이 분하고 억울해서 자리를 뜨지 못했던 삼평리할매들은 그날로부터 송전탑공사 반대투쟁의 야전사령관이 되어 투쟁을 진두지휘하였다. 공사는 순식간에 이뤄졌다. 한여름 소나기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육상도를 막으면 헬기를 띄워 시멘트며 공사자재를 운반했다. 육상도로 공사장비와 자재를 옮길 때면 어김없이 경찰들에 의해 삼평리할매들과 연대자들은 고착당하고 감금되어 꼼짝달싹을 할 수가 없었다. 경찰공권력에 의한 폭력과 비난과 야유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할매들은 그런 고초를 다 겪어냈다. 그리고 아직도 마을사람들로부터 집단따돌림에 고초를 겪고 있다. 새로 바뀌었다는 이장이란 자가 삼평리할매들이 이용하는 노인회관을 팔아버리려고 한다. 삼평리할매들은 한전이 주는 돈은 단돈 1원도 받지 않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한전의 돈으로 지은 새로지은 마을회관은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원래 노인회관이 삼평리할매들의 보금자리였다. 그 곳에서 지내겠다는 삼평리할매들의 바람을 마을이장이 눈꼽만큼도 존중하지 않았다. 마을사람들은 송전탑공사를 반대하면서 모질게 버텨낸 삼평리할매들을 핍박한다. 삼평리할매들의 설움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삼평리 송전탑 공사는 완료되었다. 싸우는 동안 벌어진 일들로 한전은 손배가압류를 걸었고, 국가의 공권력 경찰은 송전탑공사 반대한 주민들과 연대자들에게 공무집행방해, 집시법위반 등으로 고소고발했다. 법률비용을 막대하게 치러야 할 것이 예상되었다. 대단히 큰 후원주점을 기획했다. 법률기금 1억 만들기 프로젝트를 했다. 사실 1억보다 훨씬 더 많은 기금이 모여졌고 성황리에 행사를 치룰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삼평리를 떠났다. 찾아가지 않았다. 거리가 멀어서도 아니고, 시간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아팠다. 기억하고싶지 않았다. 그 뜨거운 여름날을, 하늘의 헬기가 떠다니는 소리를, 경찰들이 수도 없이 떠들어대는 집시법위반이라며 해산하라는 경고방송을, 경찰들의 인간벽에 가로막혀 꼼짝달싹을 하지 못하는 숨 막히는 감금상태를, 고착을 , 고립을, 할매들의 절규를, 연대자들의 소리없는 눈물을 대면할수록 현장은 아프고 쓰렸다. 나는 삼평리 송전탑공사침탈이 터진 날로부터 2년 후 2016년에 내가 살고있는 성주에 느닷없이 들이닥친 사드를 만났다. 지금은 성주의 외딴골짜기 소성리에 꽂혀버린 사드로 미군기지가 건설되어버렸다. 사드를 뽑아서 미국으로 가져가라고 싸우고 있는 소성리엄니들과 만났다. 아니 함께 투쟁하고 있다. ▲ 영화'소성리' 관객과의 대화 ⓒ 손소희 대구의 함께사는 세상(함세상)이 준비한 영화'소성리'를 상영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공동체상영이라기 보단 함세상의 극장에서 관람객들을 모아 상영하는 거다. 함세상은 미리 <별고을할머니>의 홍보물을 대구 전역에 알리고 예약을 받았다. 함세상은 부산국제영화제 비프메세니 상을 수상한 박배일감독의 영화 <소성리>도 함께 보고 영화에 주연배우인 소성리주민들과 함께 <별고을할머니>도 만나서 즐길 수 있는 기회라고 선전하면서 관객을 모았다. 그리고 소성리의 주민들이 함께 참석해서 관객과의 대화를 해줄 것을 부탁했다. 소성리주민들에게 매우 고마운 소식이다. 최근 언론사를 비롯해서 사회운동단체에서도 사드문제가 한 줄도 거론되지 않아,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을 때, 영화<소성리>를 상영해주는 것만도 고맙다. 어렵게 사람들을 모으고, 영화를 상영하고, 사드뽑는 소성리주민들의 이야기를 알려준다는데 열일을 제쳐놓고 달려가는게 소성리주민들의 심정이다. 3월31일 토요일 오후3시에 함세상 극장에서 영화<소성리>는 상영되었고, 소성리주민들은 4시30분이 되어 간신히 도착했다. 함세상에서 삼평리의 할매들과 소성리할매들이 조우했다. 금연, 상돌, 경임엄니들과 부녀회장님이 함께 대구로 향했다. 대구로 나오니 '보수꼴통'시민들이 전국각지에서 대구로 다 모여들었다. 한손에는 태극기를 한 손에는 성조기를 들고 흔들면서 두류네거리에서 죽전네거리까지 행진한다. 도심의 차량들은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정체되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의 희망버스는 209일동안 택시노동자들의 '사납금제도 철폐와 완전월급제 쟁취'를 위해 고공농성하고 있는 김재주씨를 만나러 전주로 달려갔다. '보수꼴통'희망버스는 대구로 왔다. 그들의 입장에선 위기의 '꼴보수'진영을 결집시키기 위해서 보수의 성지라 불릴 대구가 탈환당할까 노심초사였을거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그리고 촛불정국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문재인정권에 대해 상스런 '욕지꺼리'를 서슴치 않고 마이크잡고 공공연하게 하고 있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상소리다. 왜곡이 심각하다. 문재인정권이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지 두고 볼 일이었다. 작은 소극장에서 하는 상영이라 크게 기대한 것도 없이 약속시간에 도착하려고 애를 썼다. '보수꼴통'시민들의 길거리행진으로 시간은 지체되었지만, 다행히 극장은 영화가 끝나지 않았다. 주연배우인 도금연, 임순분 엄니와 주민으로 참석하는 도경임, 여상돌 엄니는 극단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차를 마시며 잠시 숨을 가다듬을 여유가 있었다. 영화가 끝나자 잠시 휴식을 취하러 사람들은 밖으로 나왔다. 영화 속 주연배우인 금연엄니의 얼굴을 알아본 사람들이 인사를 건넨다. 금연엄니는 배우답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받아주고, 혹여나 사진기를 들이대면 포즈를 취한다. 금연엄니는 기분이 좋은지 의자에 벌떡 들린 두 발을 흔들흔들 경쾌하게 앞뒤로 흔들어댄다. 옆에 그 모습을 본 경임엄니와 상돌엄니는 서로 귓속말로 속삭인다. "영화봤다고 알아본다 봐라. 배우는 배운갑다. 저래 아는 척을 하는거 봉께" 부러워하거나, 샘을 내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영화보고 나와서 아는 척 해주는 젊은 사람들이 기특해보였던거다. 영화를 본 사람들과 대화를 위해서 소성리에서 온 네 명은 무대 앞자리의 의자에 앉았다. 삼평리 은주씨와 머리가 희끗해도 염색을 하지 않은 가촌엄니가 보였다. 억조엄니와 중대댁엄니가 영화를 보기 위해 청도 삼평리에서 대구까지 나왔다.영화를 본 삼평리엄니들은 누구보다 소성리엄니들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공감을 표했다. 은주씨는 자신이 직접 당해봤던 경험을 소개하며 진심으로 소성리엄니들의 아픔에 눈물을 흘렸다. 그래도 부럽다는 말도 아끼지 않았다. 소성리는 아직 마을주민들이 단합을 잘해서 사드반대 입장을 견지해가면서 함께 싸우고 있지만, 삼평리는 마을공동체가 보상에 휘둘려 무너지고, 송전탑공사를 반대했던 열명남짓의 연로한 할머니들은 마을이장을 비롯한 보상을 받은 주민들로부터 집단따돌림에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으니 말이다. 설움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갑자기 삼평리의 억조엄니가 일어나 앞으로 나간다. 금연엄니 손을 잡고 위로를 한다. 그 옆 상돌엄니의 손을 잡고, 경임엄니의 손을 잡아준다. 소성리부녀회장님의 손을 잡고는 끝내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소성리주민들 힘내라고 말한다. 자리로 돌아온 억조엄니는 삼평리에서 겪었던 모진 일들이 고스란히 소성리로 넘어간 것을 안타까워했고, 그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삼평리주민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 보듬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거다. 함세상이 영화 '소성리'를 상영하기 위해서 깨알같은 홍보로 관람객을 모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초등학교 아이들에서 삼평리 할매까지, 장애인들의 좌석을 마련했다. 소성리 마을회관의 마루에 모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듯이 관객과의 대화는 편안하게 진행되었다. 소소하게 고구마를 간식으로 내어 마치 시골 외할머니 집에 놀러와서 실컷 놀다가 간식을 먹는 기분을 냈다. 함세상이 '소성리에 사람이 살고 있다. 전쟁무기 사드가 소성리로 들어와서 사람들의 삶은 무너지고, 공동체는 위기에 놓였다. 사드는 백해무익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는 소성리주민들은 좌절하지 않고 사드뽑기 위해 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사드를 뽑은 그 자리에 평화를 심을건데 여러분들 평화심는 데 함께 동참하자'고 알려내려는 노력이 느껴졌다. 기분좋은 영화'소성리' 관객과의 만남을 나눈 소성리엄니들은 극장에서 한참동안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성리엄니들이 평화를 말한다. 평화란 내가 살던 곳에서 마을주민들과 서로서로 일 도와가며, 봄이면 나물캐러 다니고, 관광버스타고 꽃놀이도 다니고, 가을이면 농산물 수확해서 이웃 간에 나눠먹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 이웃과 웃으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소성리주민들의 평화는 거창한 무엇도 아니다. 그리고 소성리엄니들이 소성리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보수꼴통' 희망버스도 사람들을 태우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들도 돌아갈 집은 있을거다. ▲ 영화'소성리' ⓒ 손소희 #별마을 #소성리 #삼평리 #평화 #사드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