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위원장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남북정상, 미북정상 회담을 앞두고

검토 완료

조화유(drjoh)등록 2018.04.23 09:59
김정은 위원장,

남북한 정성회담과 미북간 정상회담을 앞둔 이 역사적 순간에 귀하에게 꼭 하고싶은 말이 있어 이 서한을 인터넷을 통해 보냅니다.

먼저 우리가 살고있는 한반도의 최근 80년 역사를 간단히 한번 되돌아보겠습니다.
한반도는 1910년까지는 우리 한민족 모두의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부터 서양문물을 먼저 받아들여 선진국 대열에 급속히 올라선 일본이 1910년 우리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들어 35년이나 통치했습니다. 히틀러의 독일 그리고 무솔리니의 이탈리아와 동맹한 일본이 2차세계대전에서 패하자 우리 민족도 해방되었습니다.

그것은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세계최강의 나라 미국 덕분이었습니다. 일본이 항복한 8월15일 현재 한반도에 가장 가까이 있던 미군은 1000킬로미터나 떨어진 오끼나와에 있었으나 당시 동맹국이었던 쏘련군대는 이미 중국땅 만주를 거쳐 한반도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쏘련에게 한반도 한가운데를 지나는 북위 38도선까지만 내려와 북한지역의 일본군으로부터 항복을 받으라고 부탁합니다. 쏘련은 이에 동의해서 한반도 북부에 먼저 들어가고 미군은 약 한달 늦게 한반도 남쪽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당시 쏘련군 대위 출신인 귀하의 할아버지 김일성(당시 33세)은 쏘련군을 따라 북한에 돌아왔습니다. 당시 북한에는 조만식 같은 우익 지도자들과 김두봉 같은 공산주의자 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쏘련군 출신인 귀하의 조부 김일성은 쏘련군의 후원 덕분에 북한지역 공산주의자들의 지휘자가 되어 북한 땅을 쏘련과 같은 공산주의 국가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에서는 일본으로부터 우리 민족을 해방시킨 것은 김일성 장군이라고 가르치고 있지만 사실은 미국이 일본을 패망시켰기 때문에 우리 한반도 전체가 일본의 식민통치를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한편 38도선 이남에는 미군이 들어와 군정을 실시하기 시작했고, 이승만, 김구 등 독립운동가들이 귀국하자 그들과 협조하여 미국과 같은 민주국가로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북한에서 군정을 하던 쏘련군과 남한에서 군정을 하던 미군은 서울에서 만나 남북한을 하나의 나라로 만들려고 노력했으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1948년 8월15일 서울에서는 대한민국이, 9월9일엔 평양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탄생했습니다. 작은 한반도에 두 개의 나라가 생기는 불행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한반도 전체 인구의 3분의 1만 살고있는 북한지역의 지도자가 된 귀하의 조부 김일성은 한반도 전체를 다스리고 싶은 욕심이 생겨 쏘련(당시 지도자 스탈린)과 중국(당시 지도자 마오저둥)의 승인을 받고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 탱크를 앞세운 인민군대를 38도 넘어로 보내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인민군은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3일간 쉰 다음 다시 한강을 건너 남으로 쳐들어 내려가 불과 두달 후에는 부산과 대구 일대만 남기고 남한 전 지역을 점령합니다.

귀하 할아버지의 꿈이 이루어지는듯 했으나 미국이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일본을 점령한 미극동군 사령관 매카앗서 장군은 9월15일 인천에 상륙, 북한군의 공급선과 퇴로를 막아 전세는 역전되었습니다. 인천상륙작전 계획은 당시 공개된 비밀이었습니다. 그러나 간만의 차가 심해 군함의 상륙이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 귀하의 할아버지는 인천 방어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가 급소를 찔렸습니다.

9웧28일 서울을 되찾은 미군, 한국군, 기타 연합군은 10월1일 38선을 넘어 북진, 한국군 선봉부대는 압록강 물을 떠마시는 성공을 거둡니다. 그러나 한반도 전체가 통일되어 자기네와 국경을 마주하게 될 것을 우려한 중국의 마오저둥은 중공군을 한반도에 투입시킵니다. 중공군 개입을 예상하지 못했던 미군, 한국군, 유엔군은 후퇴를 할수밖에 없었는데, 특히 동부전선 장진호에서 크게 패해 많은 희생자를 내고 흥남 항구에 도달, 배를 타고 남쪽으로 후퇴합니다. 그때 미군은 공산주의가 싫어 남하하는 약 9만명의 북한 피난민을 배에 태우고 남으로 후퇴했는데 그 북한주민 중에는 현재 한국 대통령의 부모도 끼어 있었습니다.

그 후 전쟁은 약 3년간 더 계속되어 100만 이상의 인명 손실과 막대한 재산 피해를 남기고 1953년 7월27일 끝이 납니다. 전쟁이 완전히 끝난게 아니라 잠시 쉬는 휴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휴전은 65년이나 계속되었고 아직도 우리 민족은 남과 북으로 갈라져 살고 있는 것입니다.

김정은 위원장,
지난 65년 동안 남과 북은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대한민국은 세계 12위 전후의 경제 대국이 되었고 한국기업들이 만든 자동차, TV, 스마트폰, 냉장고, 세탁기 등이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으며 우리 젊은이들이 부르는 K pop을 전세계 젊은이들이 따라 부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에서도 젊은이들이 몰래 이불속에서 듣고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귀하가 다스리고 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지난 65년간 어떻게 변했습니까? 다른 것 다 재쳐두고 이것 하나만 말하면 남북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알수있을 것입니다. 작년 한해동안 해외여행을 한 남한 국민은 2천7백만명, 일부 중복자를 빼더라도 남한 인구의 거의 절반이 해외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러나 귀하가 다스리는 북한 주민 누구도 해외여행은 꿈도 못꾸는 우물안 개구리 신세가 되어있지 않습니까? 돈이 없어 못가기도 하겠지만 도망갈까봐 해외여행을 금지하는 귀하의 정책 때문이 아닙니까?

이것은 북한식 정치 경제 제도가 남한식 정치 경제 제도보다 훨씬 못하다는 것을 증명하는것 아니겠습니까. 국가가 국민을 먹여살려야 한다는 공산주의는 쏘련과 동유럽에서 실패하여 시장경제로 돌아갔고, 중국도 80% 이상 시장경제가 되었으며 베트남, 몽골, 쿠바도 시장경제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경제행위는 국민에게 맡기고 국가는 그 경제제도가 순조롭게 돌아가도록 법적으로 감독하고 도와주기만 하면 됩니다.

김정은 위원장,
김씨 세습정권 유지하려고 매일 밤 잠자리를 바꿔가며 불안하게 사는게 지겹지도 않습니까?
그 불편한 권력 내려놓으시고 북과 남이 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로 합칩시다. 그래야 귀하도 마음 편하게 장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귀하의 할아버지가 작고한 다음 해(1995년)에 북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 때 우리를 안내한 남성 안내원이 낡은 운동화를 신고 다니기에 하도 불쌍해서 내가 신고 간 나이키 운동화를 주고 왔습니다.
요즘 북한여행하고 돌아온 사람들 말을 들어보니 평양만 좀 나아진 것 같으나 그 밖의 지방은 대부분 아직도 가난에 찌들어 산다고 하더군요. 이런 나라에 핵무기가 왜 필요합니까? 그것은 귀하의 세습독재정권 유지를 위한 것이지 2천4백만 북한 동포의 안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건 귀하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김정은 위원장
북한도 남한처럼 국민이 지도자를 몇년에 한번씩 바꿀수 있는 선거민주주의 시행하세요.
그리고 평화적으로 남북한 통일하여 7천5백만 한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 한번 만들어 봅시다!
그렇게 하는게 귀하가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효도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체중이 더 늘어가는 것 같은데 건강에도 유의하시기를...

2018년 4월23일
워싱턴에서
조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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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조화유는 미국거주 작가이며 영어교재 저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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