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명장면 셋. 그리고 <조선>의 미래

'돈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이 원칙은 끝까지 지켰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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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봉환(bhjang11)등록 2018.06.02 17:19
내가 본 명장면 셋. 그리고 <조선>의 미래

여러 사람들이 남북정상회담의 명장면을 이야기했다. 대체로 새들만 엿들었던 도보다리 대화, 둘이 손잡고 분계선을 넘어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장면 등을 꼽았다. 나는 좀 다른 관점에서 내가 본 명장면을 꼽아본다.

(당연히 '김정은 위원장'이라고 호칭해야 하지만, 여기서는 그냥 '김정은'으로 부릅니다.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양해 바랍니다.)

1.
최진희가 평양공연에서 <뒤늦은 후회>를 불렀다. 김정은의 애창곡이라고 한다. 공연 끝나고 최진희와 악수하면서 김정은이 이 노래 불러줘서 고맙다고 했단다.

"창밖에 내리는 빗물소리에 마음이 외로워져요.
지금 내 곁에는 아무도 아무도 없으니까요.
(...)"

김정은은 외로웠을 것이다. 어린 시절 낯선 외국땅으로 유학가서 엄마 없이 지냈다. 돌아와서도 최고권력자의 아들로서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할 친구가 없었다. 스무 살 무렵에 엄마가 죽었다. 그의 성장기는 외로움으로 점철되었을 것이다. 노래 <뒤늦은 후회>가 가끔 그를 위로했을 것이다.

2.
정상회담 만찬장. 제주에서 온 소년이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부르고 이어 <고향의 봄>을 불렀다. 리설주가 따라부르고 김여정도 따라불렀다. 이때, 김정은의 눈에 살짝 눈물이 맺혔다.
제주는 김정은의 어머니 고용희의 고향. 그곳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그 바람은 김정은에게는 그리움의 바람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없는 어머니, 그 품속에서 놀던 때가 그리웠을 것이다. 그 때 살짝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아주 살짝.

김정은에게 어머니 고용희는 어린 시절, 몰래 일본으로 데리고 가서 도쿄디즈니랜드를 구경시켜주곤 했던 그런 엄마였다.

3.
평화의집에서의 정상회담. 기자들이 다 나가고 비공개 회의가 시작되자 문재인 대통령이 웃으며 말한다.

"김여정 부부장님은 우리 남쪽에서 아주 스타가 되셨어요 ㅎ"

그러자, 김여정은 부끄러운 듯 웃음을 지으며 얼굴이 빨개졌다고 윤영찬 수석이 전했다.

배석자가 앉는 자리는 회담 테이블과는 한참 떨어져 있다. 거기 앉아서 얼굴이 빨개진 걸 확인했다면 진짜로 많이 빨개지긴 했나보다.

*

리설주가 부른 가장 유명한 노래가 <내 이름 묻지 마세요>다.

"내이름 묻지 마세요 이름을 묻지 마세요
그 무슨 큰일 했다고 이름을 물으시나요
땀흘려 언제를 높이 쌓은 꽃나이 청춘들이
그 언제 이름을 남기려고 위훈 세웠던가요
그러니 나의 이름 묻지 마세요."

자신(개인)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전체주의 사회의 지향을 주제로 한 노래다.

북한에서 온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지만 대체로 그랬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다. 한 여성은 내가 만난 북한 여성 중에 가장 이뻤다. 키도 165. 몸매도 좋았다. 그래도 그 여성은 한사코 그 사실을 부정했다.

"에이, 나보다 이쁜 여자들 더 많아요."

<스타>가 되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칭찬?에 김여정의 얼굴이 빨개진 것도 오랫동안 습관화된 이런 심성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그러나, 그 이전에 나는 김여정의 그 모습이 마치 우리의 6,70년대 시골 새댁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지금도 가끔 그때 빨개진 김여정의 얼굴을 떠올려보곤 한다. 지금은 그런 얼굴 빨개진 부끄러움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북에서 온 여성들을 만나 이야기하다 보면 가끔은 꼭 시골 처녀, 시골 새댁, 시골 아줌마를 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소설가 황석영이 몰래 북한을 갔다와서 쓴 책이 <사람이 살고 있었네>다. 이 책에서 황석영은 북한 사람을 이렇게 표현했다.

"밀림 속의 사람들"

문명에 길들여지지 않은 순수한 인간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유명했던 재일교포 출신의 소설가 유미리는 북한을 세 번 다녀왔다. 2008년, 2009년. 그리고 2010년. 2010년에는 아들과 함께 갔다왔다고 한다. 갔다 와서 쓴 책이 <내가 본 북조선ㅡ평양의 여름휴가>다. (2012년 10월 발간) 이 책의 말미에서 유미리는 이렇게 말한다.

"조국, 우리나라ㅡ, 서울에 프로모션으로 가거나, <8월의 저편>의 취재로, 어머니가 태어난 고향인 경상남도 밀양을 걷고 있을 때는 느끼지 않았는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방문하자 심한 노스텔지어에 잠겼다.

나 자신은 태어나면서부터 데라시네(뿌리 없는 풀)였다고, 기회있을 때마다 이야기하곤 했다. 뿌리내릴 장소를 자진해서 포기하고, 앞날에 다가올 예측할 수 없는 어려움에 직면하더라도 긍정적인 자세만은 잃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조선에서 돌아오니 마음을 조국에 남겨두고,
몸만 일본에 돌아온 듯한 어색함에서 한동안 벗어날 수가 없었다.

마음이 조국에 뿌리내리고 있다."

유미리도 그곳에서 따뜻한 사람 냄새를 흠뻑 느끼고 왔나 보다.

*

이제 김정은의 북한은 베트남식이든 중국식이든 개혁, 개방의 길로 갈 것 같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미 외국 자본의 투자가 필요한 경제특구와 경제개발구를 전국에 걸쳐 스물두 곳이나 지정했다. 김정일 때 지정한 다섯 곳을 합하면 모두 스물일곱 곳의 경제특구와 경제개발구가 외국 자본의 투자를 기다리고 있다. 투자 관련 법령도 모두 국제 기준에 맞게 개정하고, 필요한 법령은 새로 제정했다.

이미 북한은 시장화가 전면적으로 확대되었다. 지금 북한 사람들은 너도나도 돈 벌 궁리에 몰두하고 있다(라고 단정하는 것은 그만한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모두의 부러움을 받고 있는 '돈주(=신흥부자)'들은 모두 장사해서 돈 번 사람들이다.

각종 비법 활동도 성행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교사가 주말에 몰래 학생들을 집으로 불러 과외를 한다. 이런 현상은 평양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전국에 걸친 현상이다. 청진에서도, 혜산에서도, 회령에서도 비밀 과외가 성행하고 있다. 당국도 이를 묵인하고 있고. 공무원 남편을 둔 아내는 뇌물이라도 써서 장마당에 매대(판매장) 하나 얻어내는 것이 꿈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북한 사람들도 이제 옛날의 그 '밀림 속의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중국이 개혁, 개방하면서 중국인들은 완전 돈벌레로 돌변해 갔다. 개방 초기 중국은 가짜 천국, 사기 천국, 뇌물 천국이었다. 북한이 본격적으로 개혁, 개방을 하게 되면 북한도, 북한 사람들도 이렇게 변해가지 않을까? 아마 그럴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김정은의 <개방> 의지를 적극 지지한다. 김정은은 기회 있을 때마다 말했다. 인민들이 다시는 허리때 졸라매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인민들이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겠다고도 했다. 나도 정말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다만, 베트남이나 중국을 거울 삼아 그들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면서, 그래도, '돈'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이 원칙을 살려나가는 그런 개방이었으면 좋겠다. 김정은의 외로움과 눈물. 그리고 부끄러워 얼굴 빨개진 김여정에게서 나는 일말의 희망을 보았다. 나는 그 모습에서 '위원장'도 아니고 '부부장'도 아닌, 순수한 인간이 모습을 보았다. 부디 그 마음으로 한결같이 우리 겨레, 한 핏줄, 뜨거운 형제자매들, 그 인민들과 손잡고 앞으로 쭉쭉 뻗어나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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