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경의 쓴소리] '주 52시간 시대'에 워라밸은 어떤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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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경(tjdus11)등록 2018.07.30 08:01
신문 기사 제목에 눈이 꽂힌다. <칼퇴근, 나는 문센으로 간다>다. '주 52시간 시대'가 열리면서 퇴근길 문센족이 늘고 있다는 기사다. 문센은 문화 센터의 줄임말이니까 문센족은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좇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주 52시간' 실행으로 인해 노동자의 삶에 긍정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거다.

난 솔직히 이해가 안 된다. 원래 근로기준법 상 노동시간은 주 40시간 아닌가. 그게 보편적이란 건 영화 제목 <9 to 5>가 입증한다. 더구나 신세계 그룹은 올해부터 '주 35시간 근로제'를 적용한다. 그렇다면 '주 52시간 시대'는 주먹구구식으로 따져 봐도 노동시간이 늘어나는 시대 역행 정책이다.

거기에 한술 더 떠 노동자의 동의 없이 주당 12시간 연장근무를 강제화할 수 있는 명분이 된다. 자칫 고용주 편의의 '탄력적 근로시간제'로 운용되어 주말 노동 18시간까지 더해지면, 노동자의 인간적 삶을 꾀하려던 문재인 정부의 선의는 발붙일 곳이 없어진다.

그러니 '주 52시간 시대'에 워라밸의 문센족이 되려면 전제가 필요하다. 신세계 그룹 같은 노동조건 하에서 일하거나, 40시간 이상의 초과근무에 대해 받았던 초과수당이 없어진 김에 워라밸이라도 챙기겠다 마음먹는 것이다.

두 전제는 기본임금이 두꺼워 그렇게 해도 먹고 살 만하다는 것이므로 그나마 다행한 경우다. 그러나 생계비에 못 미치는 기본임금의 부족분을 초과수당으로 메웠던 노동자들에게 초과근무를 제한하는 '주 52시간 근로제'는 실질소득감소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또한 직군이나 업무의 특성상 초과근무가 불가피해도 주 52시간 한계에 걸려 초과수당을 신청하지 못하게 돼 제도적 노동착취의 일상화가 예상된다. 그런데다가 지난 5월 28일 확정된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편에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수당이 포함되었으니 내년도 최저임금 8350원 확정은 무늬만 인상일 뿐이다.

사실 난 밥벌이에서 놓여난 백수다. 노동계의 변화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입장이다. 그런 내게 이번 최저임금법은 고용계획의 고삐를 쥔 기업 논리를 접수해 본의가 상실된 개악이다. '소상공인도 국민이다'의 볼멘소리나 키워 경제약자층간 갈등만 조장하는 형국이다.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의 소득주도성장 핵심정책인 '최저임금 1만원 3년 내 실현 공약'의 종지는 현재 실종된 상태다. 노동시간 단축도 실질적인 최저임금 인상도 기대할 수 없는 노동자의 삶은 워라밸과 거리가 멀다. 자칫 워라밸 운운은 화이트 대 블루 식으로 노동계의 양극화를 부각시킬 뿐이다.

퇴근길에 국민과 대화하는 중에 문 대통령이 그런 불만들을 잠재울 수 있기 바란다. 산입범위 확대 최저임금법을 재개정하고,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은 법 개정 전 최저임금 1만원 수준으로 결정하겠노라고 답하면서. 옳은 방향으로 내딛기만 한다면 그 걸음은 좀 더딜지라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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