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권리는 살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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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올림(sharps)등록 2018.10.02 14:00
지난 9월 4일 삼성 공장에서 또 사람이 죽었다. 이산화탄소 가스가 유출되어 협력업체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것이다. 부상자 두 명은 사고 발생 당시에 이미 심정지가 왔고 내내 위중한 상태였다. 그 중 한 명은 사고 후 일주일 쯤 지나 결국 사망했다. 삼성에서의 사고는 감출 수 없을 때에야 드러나곤 했다. 이번에도 은폐의혹이 심각하다.
 
2014년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거의 똑같은 사고가 있었다. 그 때도 이산화탄소가 유출되어 협력업체 노동자가 죽었다. 비난 여론이 컸고, 시민사회와 한 간담회에서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은 '안전보건개선계획 수립명령'을 내렸다는 점을 확인해주었다. 여기에는 위험한 이산화탄소를 안전한 청정약제로 바꾸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이 명령이 제대로 내려지고 이행되었다면 이번 죽음은 없었을지 모른다.
 
고용부 경기지청과의 9월 20일 간담회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당시 명령이 사고가 발생했던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만 내려졌다는 것을. 삼성전자 전 사업장에서 똑같은 소화용 이산화탄소를 사용하고 있었고, 그 위험도 다르지 않았지만 그랬다. 삼성의 비용과 노력을 줄여주었던 '명령'의 대가는 4년 후 기흥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목숨으로 치렀다.
 
'명령'의 존재도 세부내용과 이행여부도 고용노동부는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 시민단체들이 찾아가 목소리를 높여야 겨우 조각 정보 한 두 개를 내어줄 뿐이었다. 사람이 죽었고, 비판여론이 거센 상황이었지만 그랬다. 이 부실했던 '명령'의 세부내용이 진작 공개되었다면 비판이 뒤따랐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죽음은 없었을지 모른다. 노동자들에게 알 권리는 살 권리이다.
 
삼성의 안전정보는 늘 '영업비밀'이었다. 2013년 불산 누출 사고 후 삼성반도체 전 공장에 대한 안전보건진단을 실시해 만들어진 보고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삼성직업병 피해자들이 직업병을 인정받기 위한 재판에서 증거자료로 요구했을 때에도 다르지 않았다. 삼성이 '영업비밀'이라 주장하면 노동부는 군말 없이 따랐다. 결국 이 보고서는 지난한 소송을 거쳐 지난 해 말에야 받아볼 수 있었다.
 
삼성 공장의 유해환경을 측정한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도 언제나 '영업비밀'이었다. 역시 소송을 통해 지난 2월 공개판결을 받고 나자, 이제 '국가핵심기술'이 되어 여전히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 산자부와 행정심판위원회가 큰 역할을 했다. 이렇게 안전정보들이 은폐되어 온 결과, 삼성직업병 피해자들이 증거도 없이 직업병을 입증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려왔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피해자들은 직업병을 인정받지 못하거나, 인정받아도 몇 년씩 시간이 흐른 뒤였고, 때론 생을 마친 후였다. 직업병을 인정받지 못한 열악한 처지가 병을 더욱 깊게 했을 것이다.
 
지난 9월 18일 이혜정님의 직업병이 인정되었다. 이혜정님은 온 몸이 굳고 장기까지 굳어져 숨을 쉬기도 누워서 잠을 이루기도 어려운 전신성경화증으로 고통 받다 돌아가셨다. 치료와 생계지원이 필요했던 2014년 투병 중에 산재신청을 했으나 인정되지 않았다. 고인은 지난해 추석 사망했고, 이후 유족이 재신청해 산재로 인정받았다. 너무 늦었다. 그리고 인정받은 여러 피해자들이 이렇게 늦었다.
 
세 아이의 어머니였던 이혜정님의 생전 인터뷰를 떠올리면 늘 먹먹하다.

"5년 생존율이 20~30% 밖에 안 된다는 얘기 들었을 때 너무너무 무서웠거든요. 진짜...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10년만 아이들 옆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제 몸 하나 챙기기 힘들 정도가 되니까 신랑이나 아이들에게도 피해를 주는 것 같은 거예요... 저 같은 피해자가 또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미안하다고 사과는 안 해도 돼요. 앞으로 이런 똑같은 병이 없기를 바랄 뿐이니까."
 
삼성전자에서 LCD를 만들다 뇌종양 수술로 시각, 언어, 보행 장애를 얻은 한혜경님의 목소리도 마찬가지로 먹먹하다.

"위험하다고, 내가 이렇게 될 수 있다고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는지... 묻고 싶어요. 저는 꼭 삼성의 사과를 받아야겠어요."
 
약의 부작용은 약을 먹기 전에 알려주어야 한다. 그래야 판단도 하고 대처도 할 수 있다. 약을 먹은 사람들에게만 알려준다거나, 약의 부작용이 의심되는 사람들이 부작용이 맞는지 확인해달라고 요청할 때만 알려준다고 하면 용납할 수 있을까? 제약회사들이 '영업비밀'이라 알려줄 수 없다고 하면 인정해줄 것인가?
 
부작용 확인을 위해 요청해도 내놓지 않을 정도로 삼성은 여전히 후안무치하다. 그러나 이혜정님과 한혜경님은 단지 직업병을 인정받기 위해서 삼성의 안전 관련 정보를 원했던 게 아니다. 다시는 자신처럼 모르고 병에 걸려 고통 받는 사람이 없기를, 일터의 위험이 사라지기를 원했다. 삼성의 이익보다 우리들의 알 권리가 더 소중하다. 알 권리는 온전히 보장받아야 한다. 알 권리는 살 권리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반올림 상임활동가 이상수
-이글은 오마이뉴스 참세상, 민중의소리, 프레시안 공동연재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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