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수포도
유혜준
2006년에 담근 청수와인이 의외로 맛이 좋아 2007년에는 더 잘 익혀서 와인을 담았다. 향이 더 좋은 와인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이전에 담은 것만 못했다. "잘 익은 걸로 담는다고 될 일이 아니네." 깜짝 놀란 그는 2008년에는 수확시기별로 구분해서 양조를 했다.
그렇게 해서 청수포도는 완숙이 되기 전에 양조를 해야 향이 살아남고 맛이 더 좋다는 것을 알게 됐다.
"청수품종으로 양조를 할 때 다 익기 전에 수확하는 게 중요한데, 그것 외에도 중요한 게 더 있어요. 청수는 레드와인 방식으로 양조를 합니다. 와인의 향은 과피(껍질)에 있다고 하죠. 이것을 최대한 짜내고 착즙이 잘 되게 하려고 껍질을 발효한 다음에 빼내는 것을 레드와인 방식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좀 더 맛있는 와인을 만들 수 있거든요. 그 방식으로 특허를 받아서 와이너리에 기술이전을 했어요."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더 덧붙이자면 청수포도는 양조용이 아닌 생식용으로 개발된 품종이라는 사실이다. 청수포도는 맛은 좋은데, 상품성에 문제가 있었다. 익으면 익을수록 포도 알맹이가 뚝뚝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상품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상품화는 실패했지만, 양조용으로 전환해 한국을 대표하는 와인으로 성공을 거둔 사례다.
한국와인산업에 광명동굴이 끼친 영향은 상당히 크다. 와인을 생산해도 판로가 없어 어려움을 겪었던 와이너리들에게 광명동굴의 한국와인 판매는 일종의 탈출구였다. 광명동굴로 인해 시작된 한국와인 붐은 소비자들이 한국와인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덕분에 인지도가 높아진 와이너리들을 직접 방문하는 소비자들이 늘었고, 와인축제장을 찾는 소비자들도 많아졌다. 이런 외부적인 현상과 달리 현재, 광명동굴의 한국와인 판매는 지지부진한 상태라 한국와인 생산자들을 답답하고 안타깝게 하고 있다.
정 박사는 광명동굴의 한국와인 판매가 성공을 거뒀던 배경으로 광명시에 와이너리가 없다는 것을 꼽았다.
"자기 지역에 와이너리가 있다면 그 지역 와인을 판매할 수밖에 없는데, 광명시는 그게 없었던 것이 오히려 좋은 효과를 거둔 거죠. 시장님이 잘한 게 와인생산지역 자치단체와 MOU를 맺으면서 입점시켰다는 점이죠. 또 한국와인에 대해 잘 아는 최정욱 소믈리에를 뽑았다는 것도 성공 요인으로 들 수 있어요."
이런 정 박사의 지적은 상당히 날카로운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광명시에 와이너리가 있었다면 광명시는 광명동굴에서 광명시 와인만을 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광명시는 자유로운 입장이었고, 전국의 와인을 입점시켜 판매를 활성화 하면서 한국와인 전체를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었을 것이다.
정 박사는 "광명동굴에서 더 많은 한국와인을 판매한다면 한국와인산업을 활성화할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2018년에 몇 군데 와이너리에서 스파클링 와인을 신제품으로 출시하면서 앞으로 한국와인도 스파클링 와인이 대세가 될 것을 예고했다. 그래서 2019년에는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 판매하는 와이너리가 많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출시되는 제품도 다양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또 하나, 와이너리들이 와인을 증류한 브랜디와 같은 증류주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이 전국적으로 증류기 판매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정 박사도 감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정석태 박사
유혜준
"작년엔가 증류주 세미나를 했는데, 홍보를 안 하고 SNS에만 띄웠는데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려와서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한 70명 정도는 오겠지 했는데 150명이 넘게 왔거든요. 3~4년 전부터 증류기 보급이 엄청나게 늘고 있는 현상이 반영되었다고 봐요."
이와 관련 정 박사는 "와이너리들이 트렌드가 변화할 것을 예측해서 신제품을 개발해서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트렌드는 계속 변화하는 것이고, 내가 약간이라도 준비가 돼 있으면 트렌드가 변할 때 그 흐름을 타면 되거든요. 준비하지 않으면 트렌드가 왔을 때 탈 수가 없어요. 그 때 시작하면 늦는 거지."
정 박사는 여기에 조언 하나를 덧붙인다. 하나가 잘 된다고 너도 나도 그것만 해서는 안 된다고. 시류나 유행에만 편승해서는 안 된다는 따끔한 지적이다.
2018년에 더욱 확산된 한국와인 붐 때문에 와인메이커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창업을 준비하는 와이너리들도 여러 곳이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와인양조 전문교육기관을 찾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와인 1세대의 뒤를 잇는 2세대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정 박사는 바람직하다고 평가한다. 정 박사는 "젊은 세대들의 유입이 한국와인산업을 젊게 하면서 전망이 밝게 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와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는 정 박사는 언제 가장 보람을 느낄까?
"나는 잘 기억하지 못하는데, 사람들이 나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말을 해줄 때 보람을 느낍니다. 양조를 하다가 막혀서 답답해 할 때 완벽하지는 않지만 돌파구를 찾아주거나 해결을 해줬을 때, 기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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