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역사에는 전기 구석기 시대가 없다. 약 10만 년 전 이내의 중기와 후기 구석기 유적이 있을 뿐이다. 일본은 한반도 곳곳에서 발견되는 70만 년 전의 전기 구석기 유적들에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인지 '주먹도끼'를 손수 만들어 묻어놓기까지 했다. 당대의 첨단무기이자 만능도구였던 주먹도끼는 위대한 조상이 여기에서 살아왔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 아슐리안형 주먹도끼(양면핵석기) ⓒ public domain
프랑스의 자부심: 아슐리안형 주먹도끼
한 쪽 면만 가공하여 만든 '찍개'는 구석기의 초기 모델이었다. 이는 대다수 구석기 유적에서 발견되는 당대 가장 유행하던 도구였다. 그러나 찍개는 한 쪽 면을 가공했을 뿐이며, 한 손에 꼭 맞는 크기로 기획된 제품이 아니었다.
양쪽 면을 가공하여 사용자의 주먹에 꼭 맞춘 범용성 주먹도끼는 프랑스의 생 아슐(St. Achule) 지방에서 대대적으로 발견되었다. 큰 덩어리의 사암이나 규암 등의 양쪽을 가공하여 주먹 크기로 정돈한 주먹도끼는 양쪽 면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최신 상품이었다. 실제로 일부 학자는 주먹도끼를 잘 만드는 남성이 당시 여성의 인기를 독점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심지어 양쪽 면을 가공하더라도 암석의 가운데 부분은 건재하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리터치'가 가능했다. 암석 중앙의 핵에는 잠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날이 여럿 숨어있다는 점에서 주먹도끼는 수렵과 사냥을 위한 '다용도 맥가이버칼'이자 기능 추가와 업데이트가 가능한 첨단 기술의 총체였다. 약 70만 년 전 처음 개발된 주먹도끼 제작 기술은 무려 철기 시대 유적지에서도 발견되는 혁신이었다. 게다가 주로 백인들의 거주지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우월한 백인 조상'을 입증하는 증거였다.
▲ 연천 전곡리에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를 발견한 그렉 보웬 ⓒ public domain
한반도에서 발견된 첨단 구석기
그런데, 1977년 경기도 연천 전곡리에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발견되었다. 전기 구석기 유적으로 추정되는 첨단 구석기의 발견은 기존 프랑스 고고학자들이 주장해왔던 '백인 조상만이 첨단 구석기를 사용했다'는 주장을 뒤집었다. 게다가 주로 프랑스와 북아프리카 일대에서 발견되는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한반도 일대까지 전달되려면 반드시 그 중간 지점들에서도 이러한 석기들이 발견되어야 하는데 그런 유물도 없다. 이로 인해 전곡리의 주먹도끼들은 '백인 조상'이 전달해 준 상품이 아니라, '한반도 독자 개발 상품'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무의미한 조상 싸움
그렇다면, 한반도의 조상들은 동아시아 그 누구보다 스마트했던가? 중요한 것은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를 사용했던 인류는 '호모 에렉투스'로 현생 인류의 DNA와 무관하다. 그 어떤 현생인류도 호모 에렉투스의 DNA를 공유하지 않는다. 과장하자면, 한반도에 살던 원숭이가 일본에 살던 원숭이보다 똑똑했다며 만족하는 수준이다. 참으로 유치한 논쟁이다.
최근에도 왜곡된 의도로 '과거'를 언급하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이들은 과거 사건을 언급하고, 이를 재해석하고, 심지어 왜곡 및 폄훼하곤 한다. 이는 모두 현재적 필요에 따른 주관적 행동일 뿐, 과거 자체를 객관적으로 드러내려는 시도와 거리가 멀다. 모든 역사는 현재적 재구성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역사를 함부로 말하는 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누가, 언제, 왜, 특정 사건을 재해석하고자 시도하는지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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