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시절에 끼니로 먹었던 고구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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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space59)등록 2019.05.07 12:07
가난한 시절에 끼니로 먹었던 고구마 이야기

 
나는 5,60년대 월출산 아래 조그만 마을에서 낳고 자랐다. 30여 가구가 살고 있었고, 저수지에서 동네 앞으로 개울물이 항상 흘렀다. 요즘 고향이 시골이라고 하면 공기나 경치가 좋다고 막연하게 낭만적으로 생각하나, 과거에는 불편한 것들이 많았다. 갈퀴로 긁은 땔감나무로 가마솥에 밥을 지어먹고, 호롱불로 불을 밝히고, 우물도 없어 이웃집에서 길어다 먹고, 교통도 불편했다. 초등학교 5킬로미터 거리와 중학교 3킬로미터를 걸어서 다녔다.

그런 환경에서 음식은 맛이나 영양보다 몸을 지탱하기 위한 먹거리였다. 음식의 종류도 곤란한 생활과 쫓기며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만들 수 있고 값싼 재료가 중요한 기준이었다. 그렇다보니 당시에는 쌀이 귀한 시절이라 보리쌀이나 미국원조로 흔해진 밀가루를 이용한 음식으로 보리밥, 수제비, 국수 등이 있고, 가끔 고구마를 간식이 아닌 끼니로 먹기도 하였다. 고구마는 다른 작물에 비해 재배가 쉽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 밭에서 캐온 고구마를 썩지 않게 하기위해 방 한구석에 수숫대로 둥글게 발을 엮어 쌓아 두고 가을에서 봄까지 수시로 꺼내 먹었다. 수숫대둥지는 든든한 비상식량창고 역할을 했다.
 
고구마는 조리방법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데 무엇보다 구운 고구마가 최고다. 쇠죽을 쑤고 난 부엌 아궁이속에 고구마를 깊숙이 묻고 잔불의 세기에 따라 속도를 조절하여 가끔 뒤집어준다. 센 불에 너무 오래두면 타고, 너무 빨리 뒤집으면 속까지 익지 않는다. 물고구마는 좀 약한 불에 오래 구우면 수분이 배어들어 맛이 좋다. 시커먼 껍질을 벗겨내면 노란 속살을 드러내고, 입에 넣으면 씹히는 그 맛이 솥에 찐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뜨거우면서 달콤한 고구마를 호호불어 동생들과 함께 나눠먹는 소박한 즐거움이 있었다. 동생들도 그때 맛을 잊지 못하고 지금까지 집에서 가끔 구워먹는다고 한다.

솥에다 찌는 고구마도 요령에 따라 맛의 차이가 있다. 물고구마는 불을 약하게 좀 오래 쪄야 특유의 단물이 고구마에 배어들게 되고, 밤고구마는 센 불을 유지하다가 서둘러 불을 끄고 곧바로 솥뚜껑을 열어 물기가 증발하여야 밤과 비슷한 맛을 더 느낄 수 있다. 조리도 쉽고 먹기도 간단한 음식중 하나로, 가족과 함께 도란도란 모여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가족의 소중함과 정을 느끼게 한다. 상을 차릴 필요도 없이 소쿠리에 담은 그대로 마루에 걸터앉아 동치미와 함께 먹으면 궁합이 맞아 더욱 잘 넘어간다. 집에서 뿐 아니라 가끔 우리 식구들끼리 들에서 일을 할 때도 고구마를 끼니나 새참으로 도 먹었다.
 
식량으로 먹을 고구마를 주전부리로 먹어버린다고 부모님께 야단을 맞아가면서도 눈치를 봐가면서 구워먹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의 부모는 자식들에게 고구마보다 귀한 쌀밥을 먹이고 싶었을 것이다. 여러 환경적인 제약으로 고구마를 끼니로 먹게 하고 건강하기를 바라는 안타까운 마음과, 그거라도 잘 먹고 자라고 있는 자식들을 다행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 집에서 고구마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로는 이모의 태몽이 있다. 고구마를 먹는 꿈은 딸이고, 캐는 꿈은 아들이라는 해몽으로 인해 아들로 알고 좋아했는데 해몽과 달리 딸을 낳아 아쉬워했는데 예쁘게 잘 자랐다.
 
요즈음 아는 분이 고구마 수확 철에 맛있는 고구마를 일부러 지방에서 주문하여 해마다 보내주는데 그때 가난한 시골 삶의 풍경을 떠올린다. 또 겨울철 길거리 군고구마 장사의 드럼통에서 멀리까지 전해지는 구수한 냄새를 통하여서도 군침을 흘린다. 과거 군대생활 때 먹었던 라면은 질려서 지금은 좋아하지 않으면서, 배고픈 시절에 먹었던 고구마는 싫증을 내지 않는다고 아내가 말한다. 그러나 가난했기에 느끼는 즐거움으로 배불리 먹는 것도 소소한 행복중의 하나였다. 당시 고구마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해본다.
 
그동안 긴 세월을 거쳐 오면서 정부의 다양한 식량부족해결을 위한 노력으로 식량자급에 성공하였고, 지금은 쌀이 남아돌아 쌀 재배 농가를 위하여 소비를 권장하기도 한다. 보리쌀도 고구마도 옛날과 같이 굶주린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 아니고 기호식품으로 배불리 먹을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가난했던 시절 허기를 달래기 위하여 먹었던 고구마, 지금은 간식으로 별미라고 찾고, 다이어트 식품으로, 어떤 이들은 고혈압, 성인병, 변비, 항암효과 등 약용으로 삼시 세끼를 먹고 몸을 다스리고 보호하는 분들도 있다. 또 엿, 과자, 의약품, 화장품, 술 등의 원료로도 쓰인다. 퇴직을 하고 아내와 둘이 살면서 밥이며 설거지 등 예전에 여자들이 했던 일들을 서로 하게 되고 고구마도 먹고 싶으면 찌거나 용기에 구워 먹기도 한다. 배고픈 시절에 끼니의 대용으로 먹었던 고구마를 생각하면서 애잔한 과거를 더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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