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내 글 중에 유관순 열사를 예로 들며 젊은 세대들의 정신수준을 높게 평가하는 대목이 있었다. 물론 그게 그 시대 청소년들의 보편적 현상은 아니겠지만, 그렇더라도 그 시대 청소년들과 오늘의 스마트폰 세대들은 근본적으로 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반론이 있었다. 오늘의 청소년들은 스마트폰의 노예가 되어 '생각의 공간과 여유'를 갖지 못한다는 얘기였다.
그것을 계기로 오늘을 살아가는 상반된 두 집의 풍경을 떠올려 볼 수 있었다.
A집의 경우
▲ 시국기도회 2012년 5월 광화군 광장에서 거행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 한 장면 ⓒ 지요하
A씨는 고졸 학력에 용접 분야 노동자로 생활한다. 고난도 용접이기에 일당은 많은 편이다. 그는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 특히 정치인들의 거짓과 억지들을 혐오한다. 정의의 본질을 알고, 정의감을 지니고 살며 그에 따라 사회 현상에 분노할 줄도 안다.
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이름 있는 대학을 나와 학사 장교로 군복무를 마쳤고 지금은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아들의 사고방식은 완전히 수구적이다. 아버지가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 등을 혐오하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임관식 때 박근혜가 와서 축하해주며 함께 찍은 사진을 보물로 여긴다.
그들 부자간에는 당연히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귀담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를 무시하며 가르치려고 든다. 아버지의 학력과 직업을 능멸하는 기색마저 보인다.
아들은 고교생 시절에는 어느 정도 진보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대학 진학 후 ROTC 교육을 거쳐 군대생활을 하는 동안 '수구꼴통'이 되어 버렸다
.
아버지의 말로는 아들이 군대라는 집단 안에서 세뇌된 것 같다고 한다. '평화통일'에는 아예 관심도 없고, '천안함 사고'를 예로 들며 북한을 몹시 증오한다고 한다. 그에게는 천안함 문제에 관해서도 아예 '합리적인 사고' 따위는 결여되어 있는 셈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통해 군대라는 거대 집단의 보수성에 공포감마저 갖는다. 아들의 언행에서 군 내부의 실상을 유추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아들과의 대화를 아예 포기해 버렸다.
하지만 그에게는 희망이 있다. 젊은 아들에게는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점차 시야가 확장되고 가치관이 변화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먼 훗날에도 여전히 보수적일 수도 있겠지만, 가치관 변화에 대한 기대와 그 가능성을 저버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B집의 경우
▲ 보수단체 태극기집회의 한 장면 ⓒ 지요하
위에서 소개한 A집과는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아버지는 수구적인 반면 젊은 아들은 진보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서 부자간에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경우다. 어쩌면 이 경우가 현 시대의 보편적 풍경일지도 모른다.
아들은 밤의 추위 속에서도 촛불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반면 아버지는 태극기 집회에도 참가하는 수준이다. 자연 부자간에는 대화중에 가치관 충돌이 빚어지기도 한다. 한번은 언쟁 끝에 절망한 아들이 집을 뛰쳐나가 외박을 하기도 했다.
매일매일 'TV조선'만 보면서 '카톡'을 통해 '가짜뉴스'를 무수히 접하는 아버지는 노상 문재인 욕을 하며 산다. 문재인이 김정은에게 나라를 팔아먹고 있다느니, 평양에 가는 대가로 얼마를 주었다느니 별의별 소리를 다하며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의심과 불신, 온갖 악의적인 언사를 입에 달고 산다. 아들을 포함한 젊은 세대들의 가치지향적인 언행에 대해서는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것들이라는 말로 매도한다.
부자간의 불화를 걱정한 아내가 한번은 남편에게 충고를 했다.
"우리는 살날이 얼마 안 남았잖아요. 그만큼 우리에게는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젊은 세대에 비해 적을 수밖에 없고 어쩌면 그게 당연한 일이에요. 미래에 어떤 변화가 오건 그것에 대해 책임을 질 수가 없어요. 하지만 젊은 세대는 시대 상황에 따라서는 희생도 감수해야 하고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질 수밖에 없어요. 남북 관계도 평화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어요. 남북 관계가 악화되어 만약에 전쟁이라도 발생한다면 그땐 어느 쪽이 이기고 지는 게 아니라 민족 전체가 공멸하는 거예요. 그러니 당장엔 통일이 되지 않더라도 같은 민족끼리 서로 도와가면서 평화롭게 사는 것이 중요해요. 만약에 부분적인 무력충돌이라도 발생한다면 죽는 건 젊은 사람들이에요. 그것을 생각한다면 우리 같은 늙은 세대는 '평화 추구'에 역행하는 무책임한 언행을 삼가야 해요."
이 같은 아내의 말을 끝까지 참고 들어주었던 남편은 도리어 화를 내며 아내를 능멸했다.
"아들과 처남 처제에게서 그런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기에 그런 같잖은 말이 술술 나오느냐"며 근처에 살지 않는 처가붙이들에 대해서도 '종북좌파, 빨갱이' 딱지를 붙였다.
아내의 말을 끝까지 들어준 것만도 다행이었다. 그러나 아내의 말과 아무 관계없는 '빨갱이타령'은 여전했고, 변화의 가능성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노년층의 그런 수구적이고 퇴행적인 태도는 젊은 세대의 발목을 잡는 행위라는 말에는 심하게 분노를 표출하기까지 했다.
그 집 노년 가장의 퇴행적 가치관과 가족 간의 불화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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