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시민은 죽이지 마세요.

무죄 추정의 법칙과 이중잣대

검토 완료

정선화(immortalsun)등록 2019.06.03 09:25
 
 
작년 말 전국을 들썩이게 만든 강서구 PC방 아르바이트생 살인 사건의 가해자 김성수(30)에게 지난 5월, 사형이 구형(형사 재판에서, 피고인에게 어떤 형벌을 줄 것을 검사가 판사에게 요구하는 일)되었다.
 
트위터와 커뮤니티는 이날 다시 한번 한국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절망과 분노로 뒤덮였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에서 사람 한 명을 죽이고 사형을 구형받는 일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성을 죽이고도 집행유예가 쉬이 나는 나라에서 가해자가 사형을 구형받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1등 시민'인 '남자'를 죽였기 때문이다.
 
 
남성은 여자를 죽여도 심신미약이 쉽게 인정되거나 피해자의 유가족과 합의해 무죄 혹은 집행유예를 쉽게 받는다.
반면 여성이 평생 가정폭력을 당하다 죽기 직전에 마지막 반항으로 남성을 죽이는 경우에도 정당방위는커녕 한국 강력범죄 판례에서 보기 힘든 몇십 년형을 거뜬히. 여러 명이 아닌 한 명만 살인한 경우에도 무기징역이 쉽게 뜬다.
실제로 여성이 남성을 죽일 경우 남성이 여성을 죽일 때보다 형량을 두 배 더 많이 받는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성별은 양형의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강서구 pc방 남자 아르바이트 살인사건의 가해자는 한 명의 남성을 죽이고 얼굴이 공개됐다.
노래방 남자 손님 토막살인 사건의 가해자도 얼굴이 공개됐다.
포항 여성 약사 살인사건의 가해자 얼굴은 공개되지 않았다.
거제도 폐지 여성 살인사건의 가해자 얼굴은 공개되지 않았다.
몇 명의 여성을 죽인 남성 가해자의 공개된 일은 지극히 적다.
 
그들의 얼굴이 세상에 알려지고 사형을 구형받는 이유는 역시나 '1등 시민'인 '남자'를 죽였기 때문이다.
가해자들의 신상을 공개하느냐 마느냐 하는 신상 공개심의위원회를 구성하는건 대부분 남성이고 그들은 남성 피해자에게 깊이 공감한다. 그리고 세상이 더 이상 한 명의 남성이라도 죽이지 못하게, 여자는 죽여도 되지만 남자는 죽여서는 안 된다는 편파적인 메시지를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간에 세상에 전하고 있다.
 
한 달 반 전 일어난 안타까운 참극인 진주 아파트 여성혐오 살인사건은 PC방 살인 사건보다 더 많은 사람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조명되지 않았다. 거기에 한술 더 떠 가해자에게 공감하거나 사건을 흥미 위주로 다루는 기사들도 쓰였다. 남자 피해자 한 명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피해자가 어린 여자아이 혹은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심신미약을 주장하는 40대 무직 남성이 만만한 여자만 죽이고 건장하거나 젊은 남자를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 사회는 그를 감싸주는 것이다.
 
어제 일어난 전남편 펜션 살인사건을 들여다보자.
언론에서는 아직 경찰이 용의자로 지목된 전 부인이 범인이라는 답을 낸 적이 없었음에도 이미 전 부인이 원한을 품고 전남편을 죽인 것이라고 판단, 확정된 제목을 단 기사들을 연신 송고했다. 남자 기자 대부분이 자신이 부인에게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을 느끼며 범인이 누구든간에 여자가 남자를 죽일 수 없도록 범인 확정도 전에 욕을 먹게 하려는 의도가 뻔히 보인다. (또한 남성도 피해자가 될 수 있으니 더 이상 성차별 사회라고 말하지말라고 외칠 기회라고도 여기고 있겠지.)
지극히 여성 가해자에 대해 유죄 추정의 원칙을 갖고 기사를 쓴 것이다.
 
우리나라 사법체계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따른다.
그리고 이를 지키지 않았다며 남성 네티즌이 분노해 크게 화제가 됐던 판결이 있는데 바로 '곰탕집 성추행 사건'이다. 2017년 11월 한 곰탕집에서 한 남성이 일행을 배웅하던 중 옆을 지나치던 여성을 강제 추행한 사건이다.
1심에서 유죄로 판결 난 이 사건을 두고 한국 남성들은 이 판례는 유죄 추정의 원칙을 따르고 있다며 헌법에 맞게 무죄 추정의 원칙을 수행하라고 시위로까지 번진 사건이다.
결국 2심 재판부는 집행유예라며 1심보다는 약한 약수를 두었고 이 시위를 연 당당위는 자축의 건배를 들었다.
 
반면 홍대 누드 남모델 불법 촬영 사건에서는 여성 가해자를 두고 사건 시작부터 구속영장을 발부하고 이에 부당함을 느끼고 열린 편파 수사 편파 판결 반대 '불편한 용기' 12만 명의 시위에도 불구, 불법 촬영 사건에서는 굉장히 이례적이게도 10개월이라는 중형이 나왔다.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실형을 선고한 것으로서 위의 사건과는 다분히 대조적이다. 왜냐하면 불법 촬영의 피해자가 될 일이 전혀 없었던 한국 남성을 처음으로 피해자로 만든 사건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언제나 조금의 성차별은 있지만, 여성들이 피해 의식이 강한 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차별이 없다고 크게 압박을 주는 곳일수록 성차별이 큰 곳이다.
눈앞에 보이는 편파수사와 판결을 두고도 한국에 성차별이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강해져 가는 성 평등 운동 및 여성 인권 신장 운동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가 보내는 신호에는 여전히 징그럽게도 변함이 없다.
 
'1등 시민만은 절대 죽이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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