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제품 불매운동 일회성에서 그쳐서는 안된다.

목포 평화의 소녀상 뒤 목포부청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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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석(onionkim)등록 2019.07.18 10:51
일본 아베정부의 무역제재 조치에 따른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한창 고조되어가고 있다. '불매운동 오래 못 간다' 며 콧대 높던 유니클로가 16일 사과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과를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언제나 일본은 불리할 때는 고개를 숙여 비난의 소나기를 피하지만 상황이 바뀌어 자국이 유리하다 판단되면 태도가 돌변하여 공세를 펼치기 때문이다.
 
일본제국의 36년 식민지로 힘든 삶은 살아온 우리 한국인은 이런 상황을 여러 차례 겪었기 때문에 좀 더 냉정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식민지 36년을 자강의 하지 못하여 침략을 당하고 그 후 변변한 사과도 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침략의 야욕에 의해 짓밟힌 것이고 일본은 그 과오를 반성하지 않기 때문에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36년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하며 자행했던 그 잔학무도한 제국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났다. 아베 일본 총리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들어 무역제재를 가하며 일본 자민당의 선거 전략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아직도 식민지 압제의 현장에 있은듯 하다.

임진왜란 때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제식민지 때는 이토 히로부미가 이제는 아베가 다시 우리 한국을 자국 내 내홍을 잠재우고 그들의 간악한 이득을 위해 필요할 때마다 우리를 악용해 온 역사적 사실과 잔혹했던 일본의 진실을 잊지 않고자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진행하여야 한다.
 
일본제국이 유달산에 능선에 우뚝 세워 건축한 조선총독부 목포부청(구 목포 일본영사관) 앞에 우두커니 홀로 앉아 그 잔학했던 일제식민지 36년 역사의 무게를 오롯이 짊어지고 있는 가냘픈 소녀상을 바라보노라면 현재 우리의 모습과 미래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함께 비추어져 너무나 슬픈 생각이 든다.
 
일본제국 식민지 시절 번영하던 목포의 저 조선총독부 목포부청 앞 평화의 소녀상이 비를 맞고 있는 오늘! 우리는 되새겨볼 과거를 불러와야 한다. 과연 식민시절의 건물과 잔재들을 근대역사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이를 마냥 이국적 향취라 칭하며 좋은 시선에서만 바라봐야 할 것인가?

특히 목포근대역사관 1관이라 불리는 저 건물은 1900년부터 일본의 영사관 조선통감부 이사청 등으로 10년간 우리를 식민지 삼기 위한 교두보로 활용되다가 

1910년 이토히로부미에 의해 한일합방이 되자 바로 조선총독부 소속 목포부청이 되어 36년 동안 우리 민족을 핍박하고 인적 경제적르로 수탈했던 본산이었다. 이곳을 그저 일본영사관이라 칭하는 것 또한 문제가 있어 보인다.

목포 평화의 소녀상을 이곳에 세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말처럼" 우리의 주체적 사유를 통한 역사를 평가하여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져야만 일본제품 불매운동이나 역사적 사죄를 요구하는 것이 단순 일회성 행사로 끝나 우리의 노력이 빛바래지 않아야 때문이다.
 
이제라도 우리의 역사 인식의 틀을 갖추기 위한 민관의 노력이 절실할 때이다. 현재 목포 근대역사문화거리 일대는 개축과 신축이 붐을 이루고 있다. 대부분 카페나 음식점을 열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저 일식가옥의 이국적 정취에 취해 역사적 사실을 등한시 할 것이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우리 아픈 역사 식민지 36년의 시절을 끌어안아 저 적산가옥들에 새겨진 그 식민시절 한민족의  아픔과 슬픔을 달래고 미래 세대를 위한 역사 교육자산과 낙후된 지역발전의 오브제로의 활용에 대해 깊은 생각과 새로운 모색이 필요할 때인 것 같다.
 
평화에 소녀상의 비에 젖은 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처연하게 보이는 것은 장마 때문은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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