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할아버지

검토 완료

이진우(ljw1019)등록 2019.07.24 15:41
책을 읽느라 처음부터 보지 못했다. 출근 시간이 조금 지나 한가해진 지하철 안.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밝은 스탠드, 엄청 밝습니다......."
짙은색 창모자 아래로 길게 자라난 새하얀 머리카락 끝이 말려 올라가 있었다. 두꺼운 검정 뿔테는 도수가 높아 보이는 안경알을 완고하게 붙잡고 있었고, 모자 창 아래로 보통 사람보다 약간 더 긴 눈꼬리가 아래로 쳐져 있었다. 조금은 구부정하고 자신 없는 발걸음처럼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지하철 승객들 사이로 묻혀버렸다. 

할아버지가 팔고 있는 물건은 3단으로 접히는 스탠드였다. 지하철 판매상들이 많이 팔았던 물건이다. 생기가 넘치는 판매상들은 먼저 승객의 양해를 구한 후 제품 홍보에 열을 올린다. 
"학생들 한테도 좋구요, 캠핑 등 야외에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물건이 단돈 XX원 !!" 보통은 이렇게 말하면서 제품을 껐다가 켰다가, 접었따 폈다가 하면서 시연을 한다. 그래야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고, 하나라도 팔 수 있다. 대부분의 지하철 판매상은  2인 1조라고 한다. 처음 지갑을 열어 사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따라서 산다고. 

 오늘 본 할아버지는 많이 달랐다. 지하철 판매상의 평균 연령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고, 누렇고 큰 종이 상자도 없었다. 마트 갈 때 끌고 가는 장바구니 같은 것에 물건을 담아 오셨다. 목소리는 작았고, 물건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셨다. 물건의 가격이 얼마인지도 말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힘겨운 걸음으로 지하철 한칸을 오가시더니 조용히 다음칸으로 가셨다. 

 마음이 짠했다. 아무도 할아버지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보던 책을 내려놓고 생각했다. 
"어떤 사정으로 할아버지는 오늘 지하철을 타셨을까? 생계를 위해서 겠지 ? 다른 일을 하실 수는 없었을까?" 많은 물음이 떠올랐지만 더 이상 생각이 나아가지 못하고 답답했다. 그저 사라져가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통계청 발표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기대수명은 남자 79.7세, 여자 85.7세로 지속적인 증가를 보여왔다. 55세에서 79세 사이의 인구는 1384만 3000명이며 이중 65%는 일을 계속해서 하고 싶어한다. 고령층 경제활동 참가율은 57.6%로 2005년 통계작성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가장 오래 일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연령인데 49.4세로 채 50세가 되지 않는다. 충분한 노후준비가 되지 않은 대부분의 국민들은 오랜 시간 불안한 저임금 일자리를 찾아 힘겨운 생계를 이어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할아버지의 불안한 뒷모습에서 우리 모두의 미래를 보았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 누구나 맞이하게 될 노인의 시기가 따스하고 평화로운 봄날 같았으면 좋겠다. 언제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겹다. 지금부터 개인과 사회가 노령화 사회를 치밀하게 준비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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