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불이는 여성 혐오자라는 말이 왜 나오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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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윤(tn4994)등록 2019.11.12 17:45

여성 대상 살인사건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가해자들의 3/4가 남성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것을 남자들이 신체적인 우위를 차지하기 때문이라고 간단히 치부해서는 안된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는 까불이라는 연쇄 살인범이 나온다. 몇 년 전부터 작은 시골 마을에서 여성들을 살해하고도 흔적도 남기지 않는 잔인하고 똑똑한 살인범이다. 드라마에서는 분명 까불이가 살인을 즐기는 것을 보여 준다. 피해자 여성이 공포에 떠는 것을 즐기고 살인 후 핏자국을 일부러 남기는 등 대범하기까지 하다.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범인으로 추측되는 한 남자는 "여자들이 너무 시끄럽다"라며 여성을 혐오한다. 어떻게 봐도 까불이는 여성 혐오 범죄자다.

평화로운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로맨스로는 16부작을 이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2부가 더 연장되어 연쇄살인범을 잡는 비중이 늘어난 것도 이해한다. 자존감 낮고 힘들게 삶을 살아온 동백을 지켜주는 용식이의 직업이 경찰이라서, 그의 신뢰와 보호 속에서 안전함과 행복감을 느끼는 로맨스의 개연성도 잘 알겠다.

하지만 이 여성 혐오 범죄자가 단순히 여자만 골라 죽이는 나쁜 놈으로 표현되는 것에 반대한다. 살인범은 여성을 시끄러운 벽시계쯤으로, 자신을 귀찮게 했던 길고양이 한 마리 정도로 여긴다. 동백이 그 기개를 꺾고 자신에게 무릎 꿇기를 바란다. 이런 여성 혐오는 단순히 여성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을 자신과 동등한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않고 주변인 혹은 도구로 여기기 때문이다. 주변인이자 도구가 본인을 존중하지 않고 때문에 혐오하는 것이다. 여성 혐오 범죄의 기저에는 여성이 남성보다 하등하고 부족하다는 인식, 성적으로나 주변인으로서 남성을 지원하고 보조해야 한다는 더 평범한 수준의 여성 혐오가 존재한다.

나는 여자를 좋아하는데 왜 이게 여성 혐오냐고 묻는 남자들은 이 드라마를 보고 선을 그을 것이다. 여성보다 훨씬 우월하고 멋진 내가 여성을 사랑해준다는 마음속 깊은 여성 혐오가 여성 혐오 범죄의 기저가 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는 아직 너무나 많다. 

여성 혐오 범죄를 드라마에서 단순히 묻지 마 살인으로 치부해선 안된다. 남자 주인공이 여성 주인공을 보호해주는 데 필요한 간단한 극적 장치로 사용되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는 아직 무엇이 여성 혐오고 여성 혐오 범죄인지에 대한 합의도, 아니 논의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강남역 여성 살인 이후로 몇 년이 지났음에도 우리는 여성 혐오 범죄를 주제를 다루고 있는 드라마를 보면서 여성 혐오라는 단어조차 들어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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