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청년 당원들, 조국 사태를 넘어 정의당이 나아갈 방향을 말하다

좌파 정치의 '새로운 세대'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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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인(kci900803)등록 2019.11.18 13:58
11월 11일 저녁 6시 반 정의당 중앙당사 회의실에서는 '조국 사태 이후, 정의당의 방향을 다시 묻는다'는 이름 아래 청년 당원들의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는 정의당 서울시당 학생위원회 노학연대 TF팀, 정의당 여성주의자 모임, 정의당 청년당원모임 모멘텀, 평등사회네트워크 102030모임, 정의당 내 의견그룹 민주적 사회주의자에서 한 명씩 토론자들로 참가했으며 박예휘 부대표, 강민진 대변인, 오병근 정의당 서울시당 청년위원장 역시 청년들의 의견을 청취하고자 토론회에 참석했다. 토론회는 김창인(민주적 사회주의자 대표)의 사회 아래 크게 2부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1부에서는 조국 사태에 대한 여러 청년 당원들의 평가가 이뤄졌고, 2부에서는 그 평가를 바탕으로 앞으로 정의당이 나아가야 할 구체적인 방향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조국 사태 이후, 정의당의 방향을 다시 묻는다. 청년당원 토론회 현장 ⓒ 김창인

     1부에서는 정의당 안팎에서 논란이 불거졌던 조국 사태 당시 정의당의 행보에 대한 평가가 이뤄졌다. 조국 사태 당시 정의당 지도부는 조국 법무부장관 선임을 두둔하는 입장을 내면서 당 안팎의 공격을 받았다. 보수 우파로부터는 집권여당의 인선을 엄정하게 심사하던 정의당의 '데스노트'가 이제는 집권여당 눈치를 보며 장관 후보의 허물을 쉬쉬하는 '눈치노트'로 전락했다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정의당 안팎의 좌파로부터는 조국 사태를 둘러싸고 광화문 집회나 서초동 집회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 성소수자들, 정신장애인들과 같은 '투명인간들'에게 다가가는 데 실패했다는 냉정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정의당의 지지율은 조국 사태가 한창이던 9월을 지나며 당초 8-9%에서 6-7%로 약 1-2%p 가량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토론회에 모인 토론자들과 청중들은 정의당의 조국 사태 당시 행보가 왜 실패할 수 없는지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누었다.

 청년 당원들은 대체로 조국 사태 정의당의 행보는 잠재적 지지자들이 정의당에게 기대하고 있었던 바에 반하는 행보였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정의당에게 우호적인 사람들 중에는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면서 정의당에게 시혜적인 태도로 대하는 이들도 있지만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거대 양당체제에서 대변될 수 없었던 대안적 정치세력, 특히 한국 사회에서 지금껏 충분히 대변되지 못했던 노동자나 약자와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지지하는 이들이 다수 존재한다. 그런데 조국 전 장관을 둘러싼 논란이나 조국 전 장관의 행보는 거액의 사모펀드 투자나 사학재단 운영은 꿈도 못 꾸는 서민들, '정신질환자'나 '불법체류자'로서 국가의 관리객체로만 비춰질 뿐 권리주체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정신장애인과 이주민과 같은 약자들, 여전히 사회적 합의를 운운하며 권리 보장의 후순위로 내몰리는 성소수자들에게 조국이 수행할 개혁에 대한 신뢰를 붕괴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곽명철 토론자(정의당 여성주의자 모임)는 "한국 사회 인간상의 기본 값인 시스젠더-헤테로-중년-남성-아버지-가장으로서 공직자가 가져야 할 공적·윤리적 상을 떠나 가족의 이익과 안전에 복무하기 위해서라면 편법조차도 옹호되는" 가부장적 가족주의의 맥락 속에서 그 틀 안에 포섭될 수 없는 여성들과 소수자들의 분노를 지적하기도 했다.
  

박예휘 부대표, 강민진 대변인, 오병근 서울시당 청년위원장 등 당직에 있는 청년 정치인들도 토론회에 참석하여 의견을 개진하였다. ⓒ 김창인

   
 토론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정의당이 취해야 할 입장은 무조건적인 지지도, 보수적인 입장에서의 단순한 반대도 아닌 진보적인 입장에서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었어야 했다고 입을 모았다. 김현근 토론자(평등사회네트워크 102030모임)는 "정의당은 지금껏 '사이다'라는 이미지에만 집착했을 뿐 실제로 평등을 말하기 위한 공간을 점유하는 데 실패해왔으며, 그 결과 조국 사태에서 평등을 대변하는 위치를 점하는 데에도 실패했다."고 평했으며, 김민석 토론자(정의당 서울시당 학생위원회 노학연대 TF팀)은 "이제 사람들이 정의당 또한 피곤한 기성정치세력 중 하나일 뿐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결국 지역구 후보는 민주당, 비례대표는 정의당을 찍는다는 사람들의 표심을 잡으려 한 나머지 대안적 정치세력을 갈구하는 시민들을 향한 확장성을 놓치게 된 것."이라고 평했다. 정의당이 지금껏 사회운동의 현장들로부터 고립되어 소외된 목소리를 대변하는 대신 중도 우파 유권자들의 표를 쫓는 선택에 급급함으로써 평등을 지향하는 정당의 상을 구축하는 데 실패했고, 그 결과 조국 사태에서 이도저도 아닌 궁지로 내몰렸다는 것이다. 이처럼 토론자들은 정의당이 자신만의 색깔을 찾지 못한 것이 정의당의 패착이라는 데에 입을 모았다. 사회자를 맡은 김창인 민주적 사회주의자 대표 역시 "정의당은 검찰개혁을 민주당에게, 조국에게 맡기고 방임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이러한 정의당의 행보는 많은 당원들의 긍지에 상처를 줬다."고 지적했다. 조국의 사퇴 이후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위기의식에 따른 새로운 결집의 계기를 얻었고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정치적 난관을 돌파할 승리의 계기를 얻었지만, 독자적인 입장을 확립하지 못한 결과 정의당은 그 어떤 상승의 계기도 얻지 못한 채 지지율 하락이라는 쓴물만 삼키게 된 것이다.

 2부에서는 1부에서의 진단을 바탕으로 어떻게 정의당만의 색깔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루었다. 이는 과거 故 노회찬 의원이 강조했던 것처럼, 정의당이 어떻게 하면 '투명인간들'의 곁에 설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이기도 했다. 최성용 토론자(민주적 사회주의자)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사회운동정당의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의회 내의 권력 투쟁만을 정치적으로 유효한 대안으로서 고민한 나머지 점차 약화된 사회운동세력들과의 연결고리를 복원하고 당이 다양한 운동들이 서로 교차되고 연결될 수 있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또한 정의당 청년당원모임 모멘텀에서는 이러한 정당모델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직장위원회, 지역위원회 등과 같은 현장과 접촉할 수 있는 위원회들을 더욱 활성화시키고 조직해야 하며 청년들의 목소리를 단순히 '대변'할 공직을 창출하는 것을 넘어서서 실질적으로 당을 통해 현장에서의 정치가 촉진되어 중앙당으로 그 힘이 모일 수 있는 당내 정치질서의 민주적 재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다른 토론자들도 제도적인 틀로서의 당내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가부장적인 당내 문화와 관계맺음의 윤리들을 바꿔나가는 과정 역시 필요하다는 데에 뜻을 모았다.

 한 청중은 정의당의 현 상황을 두고 (정치학자 최장집의 저작 제목을 패러디한) "현장 없는 의회주의의 정치적 상처"라고 평했다. 당이 의회 내에서의 정치만을 금과옥조로 삼으며 사회운동이 벌어지는 현장과의 연결을 모색하지 못한 결과, 중앙당의 몇몇 지식인들에 의해서만 개발되는 정책은 늘 새롭게 변화하는 현장을 쫓아가지 못하고 낙후되기 시작했으며 조직은 현장에서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정치적 주체들과 연결되는 데에도 실패했다. 또한 자연적으로 이미 주어져있는 중도적 유권자들을 포섭해야 한다는 환상은 정당이 스스로 현장에서의 실천들을 통해 지지자들을 형성하고 창출하는 데 무기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정의당 내 각 청년그룹들이 패널들을 이루어 토론회를 진행했다. ⓒ 김창인

 
 이날 토론회는 당초 예정된 시간을 넘어 오후 9시 반까지 3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정의당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청년 당원들의 치열한 고민들 속에는 좌파 정치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었다. 지금까지는 서로 다른 현장들에서 각기 활동하던 당원모임들이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모여서 함께 의견을 교환하고 서로의 정치적 열정을 확인할 기회가 생겼다는 점에서 이번 토론회는 단순히 '청년 당원들'의 모임이 아닌 좌파 정치의 '새로운 세대'를 만들어나가는 첫 발걸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평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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