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정의를 가장해서 감정싸움 하지 말라!

민주-진보 진영의 분열을 보며.

검토 완료

박성수(1234yz)등록 2019.12.28 19:43

개인적으로 진중권의 문제의식 자체는 옳다고 본다. 그가 그런 문제의식을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것 자체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문제의식을 표현해 내는 어법으로 인해 민주-진보 진영을 산산해 쪼개고 끝없는 갈등의 도가니 속으로 몰고 가고 있음에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두어 달 전 쯤에도 진중권은 '진보진영이 전부 미쳤다'며 검찰 개혁과 조국 수호를 외치는 사람들을 전부 도매금으로 취급했었다. 당시 가장 큰 화두는 '정경심 교수 표창장 위조의혹'이었다. 그런데 정경심 교수 표장장 문제는 얼마 전에 검찰의 공소장 변경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검찰이 당시 정경심 교수를 무리하게 기소했음이 드러났다. 따라서 두 달 전에 '조국 수호'를 외쳤던 시민들의 목소리는 일견 타당성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 진중권은 검찰의 행패를 규탄하는 집회 풍경을 꼬집어서 '진보 진영이 전부 미쳤다'며 신랄한 비난의 화살을 퍼 부었던 것이다. 당시 상황에서는 정경심 교수를 심판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정보는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사건에 대한 정확한 내막은 아직 드러난 상태가 아니었고 진실의 여부는 정경심 교수와 신만 알 것이었다. 따라서 정경심 교수를 지지하는 사람이든, 정경심 교수를 반대하는 사람이든 그냥 각자의 입장과 기대를 세상에 투사할 따름이었다.

'정경심 교수는 유죄'라는 주장을 하든 '정경심 교수는 무죄'라는 주장을 하든 그런 주장은 각각 하더라도 자신의 판단에 절대성을 부여해서 상대를 심판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진중권이 그렇게 진보진영 전부를 싸잡아서 '미쳤다'고 규정하는 것이다. 적잖이 놀랐었다.

당시 사건의 실체가 명백히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많은 시민들은 그간 촛불을 통해 이뤄냈던 개혁의 성과가 무너지는 것이지 않은가에 대한 조바심과 두려움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하여 거리로 많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이런 시민들에 대한 이해도, 배려도 전혀 없이, 신적 권능을 가지고 광장으로 나왔던 사람들 전체를 싸잡아서 '미쳤다'는 식으로 표현을 하다니. 나는 그러한 진중권의 과한 어법이 큰 분란과 갈등을 만들어 낼 것임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국 구하기 광풍이 정 보기 싫었다면 '좀 과하다'는 말을 하면 될 일이었다. '아직 사실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절대적인 무죄 주장은 부적절하다'는 식의 자기 수준에서 할 수 있는 비판을 하면 될 것이었다. 그런데 모든 상황과 모든 시민들을 다 싸잡아서 '미쳤다'고 갈음해 버리다니.

그러자 조국 구하기에 앞장서는 사람들의 눈이 뒤집어 졌다. 하여 '최성해 총장 학력 위조 논란에도 불구하고 자기 밥그릇 챙기려고 침묵하고 있는 진중권 너나 정신 차려라.', '진중권 너는 학력위조 적폐에 동참하면서 누가 누구에게 뭐라하는 거냐?'는 규탄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진중권을 모함하고 인간쓰레기로 규정하며, 진보진영에서 퇴출시키고자 하는 엄청난 공격이 잇따랐다. 진중권의 말투도 문제였지만, 그 진중권에 대해 단박에 토사구팽하고 타도의 기치를 높이는 민주-진보진영 인사들의 반응도 가관이었다. 증오와 분노는 서로를 먹이로 먹으며 자라는 특성이 있다. 그 악순환의 고리는 겉잡을 수 없는 것이었다.

도덕성의 압박을 받고 있었던 진중권이 일주일 전 동양대에 사표를 제출했다. '진보의 도덕성'을 외치던 사람으로서 자신의 도덕성이 비판받는 상황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간 학력위조 최혜성 총장의 동양대 소속이어서, 자신의 도덕성이 싸구려로 매도되고, 벼라별 손가락질을 다 당했음에 대한 울분도 응어리 졌을 것이다. 자신을 비판했던 세력에 대해 할말 하기 위해 미련없이 사표를 내 던져야 했다.

그리고 어제 홀가분해진 진중권이 "친문 측근들, 물 만난 고기처럼 해드셨다"는 등의 맹렬한 비난의 말들을 쏟아냈다. 뿐만 아니라, "친문 측근들은 대통령의 권력을 훔치기 위해 검찰과 언론이라는 사회의 두 '눈부터 가려 감시를 마비시켰다."고 하면서 검찰 개혁 노력 자체를 폄하하는 듯한 뉘앙스까지 보이는 말을 했다. 또한 "검찰과 언론을 공격하면서 그들은 죄를 짓고도 아무 죄가 없는 상태가 된다. 이를 통해 대중은 수조 속에 누워 뇌로 연결된 파이프로 '(김어준의) 뉴스공장'이나 '(유시민의) 알릴레오' 같은 양분을 섭취당하며 잠자는 신세가 된다"고 일반 대중을 뇌가 빠진 식물인간으로 규정 했다.

이런 신랄한 표현들 자체가 진중권이 그간 친문계열로부터 맹비난과 모함을 받아왔던 것에 대한 분풀이로 보인다. 물론 거듭 얘기하지만, 나는 진중권의 기본적인 문제의식 자체는 맞다고 여긴다. 어떤 정권이든 그 측근들이 뭐라도 해 먹으려고 달라붙는 것은 어쩔 수 없고 비판 받아야 마땅하다 '유재수 감찰 의혹 사건'도 그런 사건들 중의 하나일 수 있다.

하지만 진중권은 눈이 뒤집힌 친노계열 사람들의 공격에 의해 감정적 과잉 였던 것 같다. 문재인 측근 비위 연류 가능성이 보이는 '그러한 (유재수)사건 하나가 지금 불거진 것'하고, '친노 측근들이 물 만난 고기처럼 해 드신 것'하고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심정적으로는 이해가 가지만, 문재인 정부를 비리공화국으로 규정하는 표현은 보수정권에 짓눌리며 울분에 차 있던 민중들이 촛불혁명으로 만들어낸 희망에 재를 뿌리고 분열만 조장할 표현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어떤 친문들이 물 만난 고기처럼 해 드셨는지' 진중권은 비리에 연류된 구체적 증거를 드러내 보였어야 했다. 그런 증거가 없음에도 문재인 정부 자체가 비리 공화국인 것처럼 그렇게 막연한 불만을 표시하는 것은 친문계열의 폭발적인 반감을 불러올 것이기에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는 것이다. '유재수 사건은 명백한 비위 사건이다. 조국도 그에 가담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모면하려는 문재인 정부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친노들은 자숙해야 한다.'는 주장 쯤은 평론가로서 할 수 있는 말이다. 그 정도 주장으로 갈무리를 했어야 했다. 하지만, '친노들이 다 해먹었다. 민중들은 뇌없이 매트릭스에 갇혀 있다'고 하는 말은 전혀 다른 얘기라는 것이다.

물론 진중권이 아예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전에 친문계열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맹렬한 비난의 소리를 듣고 응어리가 쌓였겠는가?! 결국 서로 그렇게들 서로에 대한 증오를 풀어내는 것이다. 그들의 난타전 덕에 중간에 낀 선량한 민중들의 시름만 더해진다.

지금 그들은 부부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관계를 다투기 위한 엄중한 팩트 싸움을 해야 한다. 자기가 하는 주장의 외연과 내포를 명확히 구분하고, 할 수 있는 말, 해서는 안 될 말의 차이를 분명히 하며, 스스로가 하는 주장의 파장까지를 고려해야 한다. 자기 감정을 단속 못해서 쏟아내는 작은 표현이 세상의 갈등과 분열의 씨앗이 됨을 인식해야 한다. 진중권이든, 유시민이든, 그 외의 친노 성향의 '선량함'을 가장한 대중이든 자기 분풀이를 위해 민주-진보진영을 볼모로 잡고 감정싸움을 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주장만 끝까지 몰고 가려는 '투사'가 아니다. 자기 집단, 자기 진영의 논리만을 고집하면서 전체 공동체를 분열과 갈등의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그러한 투사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간의 극단적인 갈등을 조율할 수 있는 배려심 있는 '조정가'가 필요한 것이다. '나만 옳고 너는 쓰레기' '나만 정의고 너는 불의' '나만 선이고 너는 악'으로 규정해서 우리의 삶의 장을 개싸움의 도가니로 만들어내는 그런 이들이 아니라, 이 분열과 갈등의 내막을 면밀히 분석하고 조율해서 모두가 손 잡고 나아가게 할 수 있는 그런 이들이 필요하다. '진중권 타도' 주장은 안 된다! 그와 손잡고 가야 한다. '친노 타도' 주장도 안 된다. 그들과도 함께 손잡고 가야 한다. 서로 자기 주장의 극단성에만 침잠해서 상처주기 위한 말잔치를 벌이는 경쟁을 중단해야 한다.

- 그러면 어떻게 하면 현재의 이 극단적인 진영과의 대립과 분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

진중권을 지지하는 분들은 진중권 편을 들어서 친노들을 씹어 먹어야 이 땅의 '진보 정의'가 구축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웃끼는 얘기다. 오히려 친노진영이 더 경기를 하며 나설 것이다. 반대로 친노진영 사람들은 노무현 서거의 트라우마가 소환되면서 진중권을 비롯한 문재인 정부 비판 세력들을 싸그리 '일베'로 규정해 타도의 기치를 높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 건데 그렇게들 하면 나라가 망한다. 그건 노무현 정신이 아니라 박근혜 정신다.

당신들 진영 놀이 결과로 '죽 쒀서 자유당' 주는 결과가 빚어진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 있다. 당신이 진중권을 지지하고 문재인 정부에 비판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신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 주장을 하더라도 너무 극단적인 감정싸움을 해서는 안된다.'는 언질을 줘야 한다. 당신이 친노-친문계이라면 당신 주변사람들에게 '우리만 옳고 다른 사람은 반개혁세력이라 무턱대고 공격하는 발상을 버려야 한다.'는 말을 해 줘야 한다. 남에게 손가락질 할 것이 아니라 자기 내부의 사람들의 과잉을 다둑이는데 앞장서야 한다.

물론 그랬다가는 '내로남불 주의'에 빠진 같은 편 사람들에 의해서 벼라별 비난의 소리를 다 들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렇게 욕먹으면서 그런 노력을 한다고 해서 상황이 한 번에 바뀌지도 않는다. 하여 앞서 나서기가 주저되어 분노와 증오의 분위기에 편승되어 휩쓸리는 길을 택할 것이다. 내부의 폭발되는 감정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것 만큼 청량감을 더해주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참고 중간에서 중제자 역할 하려다가는 가슴속에 화가 응어리지고 화병만 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그 반복강박의 감정 배설의 마약에 취해 사람들은 서로 갈등하고 분열하는 길을 택하곤 한다.

하지만 그 욕망을 잠시 누그러트리고 잠시 멈춰 자신이 현재 어디에 서 있는지를 가늠해야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렇게라도 멈춰서서 자신이 선 위치를 가늠하지 않으면... 중간에서 완충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민주-진보 진영의 첩첩히 쌓인 갈등은 민주-진보 진영의 기반의 약화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중간에서 그렇게라도 받아낸 우리편의 주먹이 주변의 것들을 파괴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 이 시대에는 '투사'가 아닌 '조정가'가 필요하다고 얘기했던 것이다.

자. 나의 이런 얘기의 뜻을 또 곡해하고 자기 유리한데로 해석해 또 나를 물어 뜯을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다. 예전부터 문재인지지와 반대자들 사이에 '적당히 좀 싸우자.'는 얘기를 할라치면 '불의와 타협하는 거냐?' '민중의 대변자 역할을 한다고 말만 뻔지르르하고 이제 배신하냐'며 양쪽으로부터 쌩뚱 맞은 비난의 댓글과 조리돌림을 수도 없이 당했었다. 그 비난과 조롱에 억울하고 분해서 밤에 잠을 못잔 날들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하지만 중간에서 양쪽의 주먹을 받아내며 완충 역할을 하지 않으면,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은 나 자신일 것이기에... 나 자신, 우리의 미래가 암울할 것이기에 굳이 또 이렇게 나서지 않을 수 밖에 없다.

내 주장은 단순하다. '사회 정의'를 가장해서 '감정싸움' 하지 말라는 것이다. '투쟁'을 가장해서 '자기 증오'를 세상에 퍼트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 앞뒤 돌아보지 않는 '배려없는 정의감' 때문에 맥없는 민중들의 시름만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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