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채수영1 - 사랑의 불시착, 사랑의 불씨 착

학교에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촬영을 지켜보며 사랑의 불씨를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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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영(soopool21)등록 2020.01.14 10:20
<일간 채수영1> - 사랑의 불시착, 사랑의 불씨 착.
 
'사랑의 불시착'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여주인 손예진은 남한 여자로, 남주인 현빈은 북한 남자로 나온단다. 앞으로 방영될 분량에 현빈의 십대 학창시절이 있나보다. 북한 남자니까 북한 학교가 필요했고, 그 북한학교의 촬영을 우리학교에서 했다.
 
섭외를 받은 대표교사는 교실의 나무 바닥과 화목난로가 맘에 들어서 우리학교로 결정되었다고 말해주었다. 작년에 이사 오면서 난방을 어떻게 할까하다가, 에너지 절약도 절약이지만 화목난로가 주는 특별한 온기가 좋아서 설치했었다. 아이들에게 나무를 자르고 나르는 일도 시키고, 불을 피우면 다함께 모여드는 효과도 있다. 어째든 그 덕분에 샨티학교가 티비에 나오게 생겼다.(1월 18일 방영)
 
어제 촬영이 있었다. 며칠간 이어지던 겨울비는 다행히 그쳤지만 학교가 온통 물기로 축축했다. 뭘 찍을 수나 있을까 했는데, 오후가 되자 금방 학교 여기저기에 북한식 선전문구와 표어가 붙었고, 곧바로 배우 수십 명과 스텝 수십 명이 학교 여기저기를 다니며 찍기 시작했다. 생애사를 쓰기위해 학교에 나와 있는 고3의 6명은 신기해하며 구경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결국 촬영이 없는 교실 한켠에서 생애사를 썼다.
 
생애사를 쓰다 말고 한 친구가 말했다.
"나도 사랑의 불시착 한번 해보고 싶다..."
'사랑의 불시착'이라~!
사실 대부분의 사랑은 불시착이다. 평소 마음에 그리던 이상형이나 생각한 로망대로 사랑이 이뤄지는 경우는 잘 없다. 기대치 않았던 장소나 만남에서 사랑이 싹트는 경우가 많고, 기대했던 곳이어도 예상치 않았던 사람과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사랑의 시작은 항상 불시착이다.
 
사랑은 불씨가 착하고 붙는 것이기도 하다.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누구의 마음에나 사랑의 불씨를 가지고 있다. 마치 씨앗이 적절한 온도와 습도를 만나면 싹을 틔우듯이, 사랑의 불씨도 적절한 상대를 만나면 타오른다. 다만 그 적절한 상대는 내가 그려오던 사람이 아니고, 어쩌다 그런 이상형을 만나도 그 사람은 이미 애인이 있거나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불씨를 가지고 있는 한 언제든 불시착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다.
 
'불씨 착'이든 '불시착'이든 사랑의 시작은 적절한 사람만 만나면 자연스럽게 시작된다. 하지만 사랑의 지속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지속은 시작과 달리 적절한 사람을 만났다고 자연스럽게 지속되지는 않는다. 사랑의 지속은 공부하고 노력하고 깨달아야 한다. 깨닫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해야하지만, 무엇보다 깨달아야한다.
 
내가 힘든 것을 투정부리고 사랑받기를 갈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은 상대방의 힘듦을 보듬어 주는 것이다. 설사 이해되지 않는 행동에 대해서도 보듬어 줄 수 있는 힘이 사랑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다. 따라서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은 그 사람이 아닌 다른 타인에게도 애정과 연민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다.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 사람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한 사람의 마음의 크기는 그 사람의 사랑의 크기가 된다.
당신은 한 사람을 사랑할 힘을 가졌는가...
 
* '사랑의 불시착'은 밤새 쓰다 지우고를 몇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사랑을 논할 만한 그릇이 되지도 못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바람에 힘에 겨워 낑낑거렸습니다. 앞으로는 '사랑에 대하여' 같은 무겁고 추상적인 담론 대신에, 학교에서 아이들과 연애상담 같은 가볍고 구체적인 얘기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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