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 서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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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여(62jeongkim)등록 2020.02.17 10:23
웃었다. 뒤의 걸개그림을 보면 웃을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 산책은 간만이었으므로 우리는 웃었다. 그냥 오랜만의 만남에 웃었고 그 속에 고상한 활동을 두어서 더 좋다고 웃었다.
범계역에서 만나서 지하철을 타고, 과천 현대미술관으로 갈 때까지만 하더라도,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진 몰랐다. 다만 마땅한 게 없으면 그냥 그 안에서 점심이나 먹으며 얘기하자고 간 거였다. 그런데 우리의 관람은 5시 마지막 종이 울릴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리 진지하게 오래 관람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미샘은 대공원역에서 내려 셔틀을 타고 가는 것을 예행 연습했다. 그녀는 머잖아 봄이 되면 애들을 데리고 과천으로 소풍 올 때를 대비해 필요할 것이다. 나와 명샘은 더이상 필요 없어진 그 일을.
우리는 미술관으로 가는 셔틀이 20분마다 한 대씩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나는 발렌타인 데이라고 보낸 롬의 초콜릿 조각을 한 개씩 나누어 먹었다. 기다린 지 5분도 안 되어 차가 왔다. 50대 말의 여성, 셋이 나란히 앉았다. 나이 차례로 둘이 함께 혼자서 따로 나눠진. 이것은 가장 나어린 미샘의 배려이다. 그리고 어리석고 미숙한 것은, 가장 나이 많은 나였다. 초코릿을 보냈다는 말을 말지. 이건 한 조각밖에 안 되는 것을! 생각해보니 그건 일종의 자랑이 되는 건 아닌가?
명샘은 언제나처럼 말없이 내 옆에 조용한 태도로 앉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자리에 있었던 신문을 뒤로 버리면서 나는 'ㅈ 일보는 안봐.. 딱 한군데 쓸데가 있지. 파를 쌀 때' 라고 했을 때, 울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노인이 앞으로 가서 앉는 것을 보았다. 격차를 확인함을 느낀 것은 나의 예민함일지도 모르지만 그가 가졌던 신문이 혹시나? 하는 생각이 스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차는 달리기 시작했다. 구불구불한 대공원의 오솔길에서도, 젊은 기사는 기세 좋게 잘 달렸다. 나는 이 길을 매번 내 차로 운전했구나. 어리석게.. 라고 생각했다. 왜 이리 어리석음은 많은 지.. 다시 나를 달래야 한다. 괜찮아.. 다 그렇게 살아. 너무 완벽하려, 짐 지려 하지 마. 너 자신이 편안하게 잘 사는 게 먼저 중요해. 다만 생각지 못하고 미안한 행동이 기억나거들랑 그냥 담엔 더 조심하려면 돼.
 
다시 차에서 내리고 노인은 신문을 들고 미술관 아래 광장으로 내려갔다. 우리는 반대편으로 올라갔다. 계단에서 한 컷, 사진을 찍어본다. '내 딸내미가 카메라를 생일 선물로 줬는데 나는 너무 화가 났었어. 뭘 절약치 못하고서.. 내가 스틱(등산 막대기)을 명퇴 선물로 달라고 얘기했었거든.. 나는 초기의 ㅅ 디카가 있어.' '그치 디카없는 사람이 없지.' '우리도 두 개가 있어.' 이런 얘기를 주고 받으면서 올랐다. 처음 사진은 잘 나오지 않았다. 설명서를 읽지 않고 온 내 탓이다. 어휴 또 어리석음이 두 개.. 괜찮아.. 다독이다. 후회하다를 반복하고 있다.
광장(SQUARE)전을 하고 있다. 흠 드디어.. 미술관.. 그 곳엔 기나긴 길을 지나 1900년대부터 2020년까지 흘러간 우리 역사의 맥을 종합 예술적 관점에서 조명하고 있었다. 우리는 3000원을 내고 미술관 안으로 들어갔다. 젊은 연극인들이 각자 독백으로 우리를 이끈다. 4.3의 죽창이, 서북청년단에 죽는 사람들이 보인다. 유신 독재의 핑계, 동백림 사건으로 끌려간 이응로 화백이 그린, 수많은 사람들은 펄펄 살아 뛰고 있었다. 드디어 광장이 나온다. 한열이를 살려내라고 외치는 그 현장이 광장 중심에 있다. 그 속에서 2020년 2월, 아직도 우리는 패가 갈리어 싸우고 있다. 한쪽의 외침은 같이 살자는 데 있다. 다른 쪽은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패거리들이 있다. 자유라고 외치면서 없는 이들을 구워삶아 편을 먹고 외치고 있다. 그 본격적 싸움은 6월에 벌어진다.
하지만 장엄하게 죽어간 한열이, 수많은 4.3의 사람들이 그렇게 사라졌음에도 우리는 사진을 앞에 두고 환하게 웃으며 큐레이터에게 말한다. 기념사진 한 장만 찍어주세요! 

과천미술관에 서서 과천 미술관, 광장전: 광장이 보이는 입구에서 한 컷 찍다. ⓒ 김정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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