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난 지역주의, 개탄스럽다 – 경향신문 호남은 '푸른색' 영남은 '분홍색'… 지역주의 벽 더 높아졌다 – 중앙일보 선거 결과를 두고 진보와 보수 양쪽의 언론들이 입을 모아 지역주의가 되살아났다며 개탄을 한다. 호남에서 1석을 제외한 모든 지역구를 휩쓴 민주당, 영남에서 20대 총선 당시 민주당과 진보 정당의 몫이었던 의석까지 획득하며 온통 분홍빛으로 물들인 통합당의 선거 결과를 보면 얼핏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보면 영호남 지역주의의 부활이라 쉽게 단정할 수만은 없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선거에서 지역주의란 지역별로 특정 정당의 후보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지를 보낼 때 쓰는 말이다. 난 이번 21대 총선에서 그런 지역주의에 기초한 투표행위가 영호남에서 동시에 이루어졌다고 보지 않는다. 우선 호남을 보자. 전남 광주는 민주당이 18석 모두를 석권했고, 전북은 민주당이 9석, 무소속이 1석이다. 겉으로 보면 전라도 사람들이 민주당에만 투표를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럼 지역주의에 기댄 투표란 소릴 듣지 않으려면 호남 유권자들은 누구에게 표를 줘야할까? "광주는 생산 대신 제사에 매달리는 도시". "세월호 2, 3, 4…1천 척만 만들어 침몰시키자." 광주 서구갑에 출마한 통합당 주동식 후보의 발언이다. 이런 말을 대놓고 하는 통합당 후보에게표를 줄 수 있나? 그래도 주동식 후보는 이런 막말이라도 해서 이름 석자는 기억에 남지만 호남에서 후보로 나온 다른 통합당 후보 중에는 전국적 지명도가 있는 인물이 한 명도 없다. 대구에 출마한 김부겸 후보나 부산의 김영춘 후보와 비교해 보면 통합당이 내세운 후보들은 하나같이 중량감이 떨어진다. 민주당이 거물급 후보들을 영남 지역에 후보로 내 놓고 어떻게 해서든 지역주의를 넘어서려 하는 노력이라도 보이는데 반해, 통합당이 후보를 내놓는 걸 보면 호남을 포기한 게 아닌가 싶은 정도다. 어차피 후보를 내도 안 될 게 뻔하니까? 아니다. 내 놔도 안 될 후보만 내 놓으니까 안 되는 거다. 민생당 후보? 선거를 앞두고 앞 번호를 받기 위해 이념도 정책도 다 다른 군소 정당들이 급조한 정당 후보들이 표를 얻지 못한 걸 유권자 탓으로 돌려선 안 된다. 선거 과정의 불협화음을 봤을 때 누가 봐도 투표 끝나자 마자 분당해서 뿔뿔이 찢어질 거라는 예상을 할 수 있었다. 그런 정당에 표를 몰아줄 만큼 유권자들의 수준이 낮지 않다. 호남의 대진표를 그대로 수도권에 옮겨 놓았다고 가정해 보자. 그럼에도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지역주의에 기댄 투표의 결과라고 폄훼해서는 안 되는 거다. 게다가 전라도 유권자들은 후보가 자격 미달이라고 판단 되면 민주당 후보임에도 거부해 버렸다. 도로공사 사장 하면서 수납원 노동자들과 마찰을 빚은 이강래 후보는 무소속 후보에게 졌다. 한마디로 지게 작대기만 꽂아도 민주당 깃발이면 당선되는 그런 지역이 아니었다. 이번엔 영남으로 가 보자. 이번에 국회의원이 되면 단숨에 차기 대선 후보가 될 만한 거물 김부겸 후보 마저 이번에 지역구를 옮겨 온 주호영 후보에게 큰 표 차이로 졌다. 20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됐던 홍의락 의원 역시 민주당 옷을 입고 나선 이번 선거에서는 떨어졌다. 민주당이 현역 국회의원 6명, 장·차관급 출신 5명을 후보로 내세운 부산에서도 겨우 3석 건졌다. 진보정당 후보인 여영국, 김종훈 두 현역 의원 조차도 떨어졌다. 막말과 아들의 여러 사고로 논란이 된 장제원 후보, 용산참사에 책임이 있는 김석기 후보, 국정원 댓글 사건의 김용판 후보도 영남에서 금뱃지를 달았다. (김용판 후보는 배우자의 코로나19 확진 판정으로 선거 기간 내내 자가 격리 됐음에도 큰 표 차이로 당선이 됐다.) 여기도 같은 상상을 해 보자. 영남의 대진표를 수도권으로 옮겨 투표를 했다면 지금과는 결과가 많이 다르지 않을까? 마땅히 뽑을 후보가 민주당 후보 밖에 없어서 거기에 투표한 지역의 유권자가 있다. 또 다른 한 편엔 쟁쟁한 후보들을 다 마다하고 분홍색 잠바를 걸친 신예 후보를 선택한 지역의 유권자가 있다. 그 둘을 나란히 놓고 지역주의에 기댄 투표를 했다며 싸잡아 비판하는 게 과연 옳은가. 이번 선거 결과에서 지역주의에 기댄 투표를 발견해 내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걸 영호남 지역주의라고 편하게 정의 내리면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던 호남의 유권자들은 억울할 수 밖에 없다. 진단이 정확해야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다. 이번 선거 결과는 영호남의 지역주의 부활이 아니라 영남의 폐쇄적 지역이기주의가 도드라졌을 뿐이다. 그 원인을 찾아서 해결책을 마련하는 게 앞으로 해야 할 일이다. 영호남 지역주의라며 싸잡아 욕하는 걸로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가 없다. #21대 총선 #지역주의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