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은 "기본소득제"를 말하지 않았다.2

소득 하위 20%의 빈농이 읽은 교황의 부활절 편지와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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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려(ccpr)등록 2020.04.27 10:18
제국주의와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
 
이탈리아어 원문에도 교황청의 영어 번역문에도 기본소득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탈리아어로 salario universale, 영어로 universal basic wage만 존재할 뿐입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보편적 임금", "보편적 기본임금"이 될 것입니다.
있지도 않은 기본소득제의 출처는 성향이 의심스러운 미국의 The Hill의 기사입니다. The Hill 역시 제목에는 universal basic income이란 말을 썼지만 기사 본문에는 universal basic wage라고 표기하였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교황의 뜻은 자연과 환경을 파괴한 대가로 경제 성장과 고수익을 올리고, 그 수익으로 또다시 기후 위기를 초래하는 소비를 일삼는 제국주의적 행태에 대한 비판과 인간의 존엄과 노동의 가치를 바로 세우자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The Hill의 4월12일 기사 캡처(https://thehill.com/policy/international/europe/492428-pope-advocates-for-universal-basic-income-in-easter-letter) ⓒ Rebecca Klar

 
1. universal basic income
 
2016년 6월 5일. 스위스가 세계 최초로 기본소득제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였습니다.
기존의 모든 복지를 없애는 대신, 성인에게 매월 2천500 스위스프랑(한화 약 300만원), 어린이와 청소년 등 미성년자에게는 매월 650 스위스프랑(한화 약 78만원)을 지급하자는 기본소득제 안은 76.9%의 반대로 부결되었습니다.
반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는 기본소득제를 비현실적이라 생각하는 경우이고 둘째는 기존의 복지 시스템을 통해 받는 금액이 기본소득제를 통해 받는 금액보다 더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스위스에서는 국민연금, 기업의 퇴직연금, 개인의 민간연금을 통해 노후에도 과거 소득의 80%가 연금으로 나온다고 합니다.
기본소득제에 찬성한 23.1%는 1인당 GDP 8만3717달러인 나라에서 월 소득이 300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일 듯하니 스위스의 불평등도 어지간한 것으로 보입니다.
 
보편적 복지(universal welfare)의 반대말은 선별적 복지(selective welfare)이지만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의 반대말은 선택적 기본소득(selective basic income)이 아닙니다.
 
기본소득은 복지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 배상금이 시혜(施惠)나 복지가 아니듯,
열대우림의 개발을 자제시키기 위해 이미 심각한 자연 환경 파괴를 일삼은 국가들이 기금을 만들고 지원하는 것이 시혜(施惠)나 복지가 아니듯,
"세계화의 혜택에서 제외"된 채 "비양심적이고 가치 없는 쾌락을 즐기지 않지만, 항상 비양심적인 쾌락이 파생하는 해악으로부터 고통을 당하는" 빈민들을 지원하는 것 역시 시혜(施惠)나 복지가 아닙니다.
 
식민지였던 나라가 스스로의 발전의 기회를 잃어버린 채 식민 지배의 고통을 견뎌낸 대가를 정당하게 요구하듯,
열대우림을 국경 내에 두고 있는 나라가 지구 환경을 지키기 위해 개발을 포기한 대가를 정당하게 요구하듯,
"생산과 소비의 과잉, 호사스러운 사치품, 몇몇 소수의 파격적인 이윤을 허용하는 지극히 경쟁적이고,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문명 "의 그늘에서 덜 소비하고, 덜 지구를 오염시킨 빈민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대가를 요구하는 것 역시 정당합니다.
 
스위스를 비롯해 캐나다와 핀란드 등 기본소득제를 시도한 나라들 모두가 실패한 것은 보편적 복지의 차원에서 접근했기 때문입니다.
기본소득은 빈민들이 가난하기 때문에 실현할 수 있었던 가치에 대한 응당한 대가입니다.
교황이 굳이 universal basic income이란 단어를 쓰지 않은 것도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자들의 시혜나 복지로 가릴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족(蛇足) : 기본소득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부자들에 대한 이중의 차별"을 얘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부자이기 때문에 누려왔던 혜택은 무시한 채, 지금의 불평등한 구조는 유지한 채, 기본소득도 받겠다는 그들이야말로 빈민들에 대한 이중의 차별을 가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0년전 제 나라 국민을 총으로 살해하고도 참회와 처벌은커녕 자신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피해자라며 숨어버린 공수부대원들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YTN 딥터뷰코앞에 닥친 ‘기후위기’와 ‘기후악당’ 오명 쓴 우리,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 김지석

 
2. salario universale(보편적 임금) 혹은 universal basic wage(보편적 기본임금)
 
"교사의 급여는 연봉을 12개월로 나눠 받고 결코 고액 연봉자가 아니다. 필자가 중학교 교사 시절 받던 30년 차 교사 연봉이 8천만원 정도였다. 당시 다른 직종의 친구들 연봉을 보면 공고 졸업한 현대차 친구는 1억 2천, 직업군인으로 중령인 후배는 1억 1천, 공기업 차장인 친구는 1억 3천 정도 연봉을 받고 있었다. 교사의 연봉이 가장 적다.
방학 때 쉬는 건 교사의 특수한 직업 특성상 받는 혜택이다. 방학에도 연수받고 출근하고 여행도 간다. 그게 부러우면 학교 다닐 때 진로를 교사로 정하던지 더 많이 쉬는 직업을 선택하면 될 일이다. 직업별 어떤 혜택이 있는지, 연봉은 어느 정도인지 다 알면서 능력이 되지 않아 교사를 못 했으면서 그저 교사를 폄훼하고 깎아내리기에 혈안이다. 방학이 4개월 가까이 되는 교수도 방학 때 월급 받고, 조직 구성원을 폄훼하는 말을 하는 교육감도 고액연봉자다."
출처 : 천지일보2020.03.17.[최선생의 교단일기]
 
교황이 이 글을 본다면 얼마나 절망했을까요?
학력과 직업 차별로 가득 찬 짧은 글 속에서 "돈도 실력"이란 정유라의 망언이 왜 나왔는지 보여주는 것 같아 저 역시 비참한 심정을 느낍니다.
 
온라인 개학에 필수적인 영상 수업 능력이 없어서 세금을 들여 가르쳐야 하는 무능한 교사들에게
가구당 연 소득 2천만원이 안되는 소득 하위 20%의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축적하지 않고, 사람들의 필요를 착취하지 않으면서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소농과 그 가족들"
"노점상, 재활용수집자, 카니(carnies), 소규모 농민, 건설 노동자, 재봉사, 다양한 종류의 돌보미들 "
그들이 "수행하는 고귀하고 필수적인 과업을 인정하고 존엄하게 만들 <보편적 기본임금>을 고려할 때가 된 듯합니다."
라는 교황의 말은 얼마나 우습게 들렸을까요?
 
교황은 분명 복지로서의 보편적 기본소득이 아니라 노동의 대가로서의 <보편적 기본임금>을 말했습니다.
교사, 교수, 관료, 소농, 노점상, 건설 노동자, 돌봄서비스 제공 노동자 등 모든 노동에 최저 임금 (minimum wages)이 아닌 <보편적 기본임금>을 적용시킬 것을 주장한 것입니다.

"중앙정부, 지방정부, 군인 등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전체 공무원 수는 작년 6월 기준 168만여명에 달하며, 연봉과 수당 등을 합쳐 국가 예산에서 이들에게 지급되는 인건비는 올해 전체 예산의 17%에 이르는 약 8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출처 : 한국일보2019.03.11[아무도 모르는 공무원 총 인건비…]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은 "국난극복"을 슬로건으로 내걸어 승리했습니다.
"국난극복"이 구호로만 그치지 않으려면 적어도 공무원 인건비의 30%라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일회적(一回的)인 것이 아니라 교황의 <보편적 기본임금> 개념에 맞게 계속 실행되어야 합니다.
이미 지난 3월부터 대통령과 장관들 그리고 일부 선출직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실천을 했습니다.
그런데 확산될 줄 알았던 임금 반납 운동은 거기서 끝났습니다. 
도대체 공무원들은 그들의 사용자인 국가와 국민이 어렵다는데 왜 임금 반납을 하지 않는 것일까요?
공무원 인건비의 30%인 24조원이면 소득 하위 20%에 해당하는 400만가구에 월 50만원씩 1년간 줄 수 있는 돈입니다.
불로소득에 대한 중과세와 대기업 노동자들의 참여를 이끌어 낸다면 서구의 검증되지 않은 기본소득제가 아닌 교황의 <보편적 기본임금제>를 실현할 수도 있을 것 입니다.
 

JTBC 뉴스룸 손석희의 민유라 인터뷰 ⓒ JTBC

 
강아지 다섯마리 돌보는 알바만 해도 생활비와 훈련비용을 지불하고 국가대표선수로 활동했던 민유라 선수.
<보편적 기본임금제>가 실현된다면 우리는 수없이 많은 민유라를 만날수도 있을 것입니다.
 
끝으로 지난 4월 8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영국 잡지 '더 태블릿 앤 코먼웰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밝힌 말들을 소개합니다.
"이것(코로나19)이 자연의 복수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연의 대응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코로나19 발병은 생산과 소비를 낮추고, 자연에 대해 이해하며 심사숙고할 기회를 제공했다"

자연의 대응(코로나19)에 대한 인간의 대응은 순식간에 선진국의 민낯을 드러내 주었고, 인간의 탄소 배출 절감 노력이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지를 알려주었습니다.
"POST코로나19"시대에는 도박과 유흥과 향락산업에 대한 과소비라도 줄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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