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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 피난도 못하고 속수무책 당한 까닭은?

[참사 현장을 가다] 전직 소방공무원이 본 참사의 원인

등록 2020.05.02 11:49수정 2020.05.02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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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9일, 노동절을 이틀 앞두고 냉동물류창고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38명 숨지고 10명이 부상을 당하는 대형 화재참사가 발생했다. 놀리움을 금할 수 없는 사실은 이번 화재참사가 2008년 1월 7일 이천시 호법면에서 발생한 (주)코리아 2000의 냉동 물류 창고 화재참사(40명 사망)와 판박이라는 것이다. 

왜 이런 참사가 되풀이 되는 것일까? 사고의 실체적 원인은 무엇이며, 왜 우리는 지난 참사에서 반면교사하지 못하고 동일한 참사를 반복하는 것일까? 참사 현장을 살펴보고 그 원인과 이유를 진단해 본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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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의 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소방공무원으로 평생을 화재와 재난 현장을 누벼온 필자는 이천 화재 참사를 저녁 뉴스를 통해 듣고 이튿날 깨어나자마자 화재현장으로 차를 몰았다. 내비게이션을 보니 집에서 이천까지 200km, 2시간 반이나 소요되는 거리였다. 대형참사 현장을 직접 보는 심정이야 표현할 수 없는 비참함과 안타까움이 교차하곤 하지만 2008년 이천화재를 관심 있게 지켜 보았던 필자는 판박이 같은 이 화재참사 현장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예상했던 것처럼 화재현장은 2008년 화재 현장 모습 그대로였다. 가히 하인리히 법칙(큰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반드시 징후들이 존재한다는 법칙)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38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 당하기 위해서는 과연 몇 명의 경상자가 발생하고 또 도대체 몇 명의 잠재적 부상자가 있어야 한단 말인가. 1 : 29 : 300이라는 법칙에 공감해 온 필자의 뒷통수를 누군가 망치로 내리치는 느낌이었다.

2008년 화재는 잔인할 정도로 냉정하고 분명한 경고였지만 소방, 경찰, 그리고 산업재해를 담당하는 노동부도 건축을 주관하는 국토교통부도 이 경고음을 외면했음을 현장은 말해 주고 있었다.

경고를 외면한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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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29일 오후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A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현장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2020.4.29 [경기소방재난본부 영상 캡처] ⓒ 연합뉴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경찰과 소방 등 합동 감식기관은 발화지점과 불씨를 찾는 데 수사력을 집중할 것이라고 한다. 불씨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조사는 연소물질을 찾아야 한다. 특히 순간 폭발 또는 순간 확산 연소 화재에서는 가연성 물질이 주 원인이 되어야 한다. 건축물의 내부에서 공사중인 경우 모든 에너지원은 불씨가 된다. 시공상 필수적이고 상존하는 화재요인은 제외시키는 것이 화재조사의 원칙이다. 화재의 3요소인 불씨와 가연물, 그리고 공기 중에 상존하는 공기를 화재 원인 요소에서 제외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가연물이다. 다수의 현장 목격자 증언에 의하면 화재 초기 폭발음이 있었다고 한다. 물류창고 전체가 전소된 것으로 보아 불은 맨 아랫 층에서 시작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건물 내부에 별도의 냉동 창고가 설치되고 있었고 구획된 창고 내부에서 우레탄폼 발포 작업중이었다고 한다면 발포 과정에서 단열 보조재인 암모니아가스를 주입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 가스를 주입하는 동안 새어나온 가스가 밀폐된 공간에 체류했을 개연성이 높다. 결국 체류된 가연성 가스가 공기와 혼합하면서 폭발 범위에 이르렀고 미상의 전기적 또는 인위적 불씨와 접촉하면서 폭발한 후 우레탄 폼으로 연소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왜 방화구획은 무용지물이 되었나?  

화재가 발생한 건물은 전소 되었다. 화재건물은 철골 시멘트 슬라브 건물로 내화구조였다. 비교적 층간 방화구획이 잘 설계되고 시공된 건축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외벽에 시공된 단열재에 있었다. 샌드위치 판넬로 외벽을 마감해 판넬 내부로 연소된 화재는 상승하는 기류와 함께 건물 전층으로 확산하여 층간 방화구획이 유명무실해지고 말았다.


냉동 창고는 외벽에 설치된 창문의 넓이가 건물 전체 외벽 면적의 1/30이 안되는 무창층 구조였다. 따라서 아랫층에서 발생한 유독가스가 외기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완공되지 않은 내부 계단실을 타고 상층으로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외벽의 샌드위치 판넬이 연소하면서 창문은 흡기구 역할을 했을 개연성이 높다. 따라서 화재층이 아닌 상층에서 작업을 하던 노동자들은 피난할 엄두도 못내고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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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의 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현장에 1일 오후 한 시민단체가 기자회견 후 놓아둔 국화꽃이 놓여 있다. ⓒ 연합뉴스

 
한 마디로 사고 원인조사의 부실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원인 조사는 사고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과학적 검증 절차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모든 사고사에 초기부터 수사권이 개입한다. 수사의 사전적 의미는  "범죄의 혐의 유무를 명백히 하여 공소의 제기와 유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하여서 범인을 발견·확보하기 위한 행위"이다.

따라서 사고의 인과관계를 살피는 과학적 검증과는 별개의 사법적 과정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권위주의적인 정권에서 작용된 권력적 형벌 작용이 사고 원인조사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이와 같은 사고 조사가 아닌 수사의 개입에 의한 원인 규명은 결국 책임자 처벌로 종결된다.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도 같은 요인이었지만 원인조사는 수사권 개입에 의한 책임자 처벌로 종료되고 말았다.

우리나라는 사고 유형별 개별법에 사고 원인조사권을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 화재는 소방기본법(제29조)에, 산업재해는 산업안전보건법(제56조)에, 재난재해는 재난 및 안전관리법(제69조)에 있음에도 강력한 공권력을 가진 수사권 앞에 무력해지고 만다. 제대로 된 원인조사를 못하니 사고의 원인으로부터 정책적 피드백(feedback)이 될 리 없다. 같은 유형의 사고가 되풀이 되고 반복되는 이유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지고 있다.

모든 사고는 권한 있는 전문가에 의한 과학적인 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고 원인조사에 있어서 조사권과 수사권은 분리해 한다. 개별법에서 규정한대로 선 조사, 후 수사의 제도적 정비가 이루져야 한다. 원인 규명과 함께 형사적 책임은 전문가 그룹의 과학적 조사 과정에서 사고원인에 이르는 관계자의 중과실이나 범죄 소명이 있는 경우 수사기관에 이첩하여 수사하는 것이 이번 참사를 계기로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우레탄 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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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공무원으로 33년을 근무하고 서울소방학교 부설 소방과학연구소 소장직을 마지막으로 2014년 정년퇴직한 사람입니다. 주로 화재를 비롯한 각종 재난현장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였으며, 현재는 과거의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방전술론' '화재예방론' '화재조사론' 등을 집필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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